2008년 05월 15일
광우병 불안
광우병에 대한 불안은 정확히 히스테리적입니다. 미국의 소가 실제로 위험하냐는 사실판단과는 상관없이 광우병에 대한 불안은 증가됩니다. 듣고 있자면 변형 프리온은 거의 악마가 살포한 최종병기 같지 않나요?
광우병이라는 카니발리즘의 사생아와 같은 질병은 모든 인간이 자연에 대해 지고 있는 부채의식을 건드립니다. 광우병이 가지고 있는 원래의 징벌적인 성격과(그것은 자연의 섭리를 어긴 결과이다) 거대한 자본-깡패인 미국에 대한 불만, 이명박을 수뇌로한 실용정부에 대한 불신은 마치 삼위일체처럼 이 불안의 삼각형을 완성합니다. 여기에 의해 촉발된 공포는 마치 관동이나 아우슈비츠처럼 비이성적으로 확산됩니다.
이렇게 과잉한 불안과 분노의 단계에서 미국의 소가 위험하냐는 것은 실로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그것은 관동이나 아우슈비츠의 광기가 실재의 '조선인'과 '유태인'과는 무관하게 일어났다는 점과 일치합니다. 의처증을 가진 남편이 실제로 아내의 부정의 증거를 발견한다고 해도 그의 의심이 강박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의처증의 본질은 실질적인 부정의 유무가 아니라 정확히 그가 가지고 있는 과잉한 불안에 있습니다. 의처증 환자에게 아무리 논리적으로 아내의 무죄를 설명해도 쓸모가 없는 것처럼, 이렇게 전염병처럼 창궐한 괴담에 과학적인 설명은 사실 쓸모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확인했다시피, 이러한 설명은 아주 쉽게 그 과녁을 비켜갑니다. "그래도 혹시 알아?", 혹은 "미국놈들을 어떻게 믿겠어." 등등.
저는 이러한 불안이 히스테리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과잉한 불안은 외상에 의해 촉발된 불안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즉 우리의 이익(생명)추구는 실용정부에 포섭당했습니다. 우리는 어느정도 스스로의 욕망을 희생하는데, 바로 그 희생(비정규직에 대한 양보, 노동조건의 악화 등)이 고용이라고 하는 비실업의 상태를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이명박이 제시하는 환상은 매우 억압적인데, 그것은 네 이익을 (자본에게) 양보하라는 명령을 숨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겁을 주는 방식입니다. 기업이, 자본이 안 되면 너희도, 노동도 있을 수 없다. 이러한 희생의 강요는 FTA, 그리고 소고기 협상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이명박 정부가 가지고 있는 청사진. 우리의 농업시장을 개방(희생)함으로써 삼성, 현대 등이 가전제품과 자동차를 좀 더 잘 팔 수 있게 만들겠다는. 이것은 희생을 전제로 하는 미래입니다. 이번 소고기협상의 경우 실용정부는 희생의 카드를 국민의 (가능한) 위험으로 내민 것인데, 바로 여기에서 우리의 이익(생명) 추구는 포섭당함을 거부한 것입니다. 이 외상적인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이명박 실용주의의 냉정한 실체를 경험합니다. 우리의 히스테리적인 반응은, 바로 거기에 대한 결과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정확히 프로이트 식으로 억압된 것의 귀환입니다.
사실 더 흥미로운 분석은 아마 광우병 자체가 아닐까요. 광우병은 그야말로 자연의 폭동입니다. 그 자체의 법칙이 아니라 자본주의에 의해 왜곡된 '자연'이 우리에게 복수를 한다는거죠. 여기에서 우리는 더 본질적인 억압된 것의 귀환을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말 변형 프리온이 그토록 위험하고, 우리의 종말은 단지 시간문제에 불과하고, 그것이 제 3세계의 극단적인 빈곤과 무관한 몇몇 부국들의 치사스러운 식습관 때문이라면, 아아. 이는 얼마나 또 통쾌하고도 무시무시합니까. 정말 이것을 소재로 호러영화가 하나 나와도 될 것 같아요.
# by | 2008/05/15 01:03 | For society | 트랙백 | 덧글(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