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로맨서, 그리고 사이버 펑크

 
 

SF는 미래를 상상하는 충동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가끔 어떤 작가들은 예언자의 위치에 올라서게 되지요. 지금부터 얘기할 윌리엄 깁슨은 바로 그러한 경우에 속합니다.


얼마전에 뉴로맨서를 다시 읽었습니다. ‘뉴로맨서’는 사이버펑크 장르의 문을 연 작품으로 불립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이버 펑크의 완성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는 사이버펑크도, 뉴로맨서의 영향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합니다. 뉴로맨서에 대한 노골적인 오마쥬인 ‘공각기동대’를 떠올려보세요. 매트릭스는요? 안드로이드와 전뇌공간을 다루는 픽션에서 ‘뉴로맨서’의 영향을 괄호치고 생각해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모두는 ‘뉴로맨서’의 직계, 혹은 방계 혈족이에요.


그의 예언은 현대에 와서 더욱 그 불길한 힘을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가 묘사한 세계를 거의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인터넷은 이미 정보와 경제의 핵심에 근접해 있고, 그것에 침투해 이윤을 획득하는 해커 역시 존재합니다. 물론 그가 묘사한 사이버네틱스 기술이나 가상현실은 도래하지 않았지만, 어찌 알겠어요? 몇 년 후에 우리도 ‘정보’로 이루어진 완벽한 대체세계를 가지게 될지요.


하지만 뉴로맨서의 재미는, 사람들이 흔히 주장하듯 그 ‘예언’의 정확성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그 ‘예언’이라는 것의 진짜 흥미로운 부분은 오히려 다른 곳에 있으니까요.

그가 그려낸 사이버 스페이스의 성격은, 인터넷의 외피를 입은 일종의 신화적 세계입니다. 매트릭스는 모험과 경이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그곳엔 초인간적인 영웅들과 그들을 막아서는, 마찬가지로 초인간적인 장애물로 가득하죠. 카우보이의 능력을 잃은 케이스에게서 너무 높이 날다가 날개를 녹여버린 이카로스의 이미지를 읽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사자의 세상이었던 뉴로맨서의 세계나 사이버 스페이스의 범신론과도 같은 인터뮤트의 결말을 생각해보세요. ‘뉴로맨서’가 단순히 미래적인 텍스트가 아님을 눈치챌 수 있을 것입니다.


요컨대, 그의 예언이란 일종의 신탁입니다. 그는 사이버네틱스 용어로 흥건한 신화를 써내련 갔던 것이지요. 미래의 언어로 씌어진 신화랄까요. ‘뉴로맨서’의 진정한 장점은 저 두 언어가 놀랄만큼 잘 어울리게 합쳐졌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사이버펑크와 SF라는 장르가 지니는 진정한 매력인지도 모르겠어요.




by 이녘 | 2006/03/09 20:41 | For fiction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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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어둠의왼손 at 2006/03/09 22:29
윌리엄깁슨의 뉴로맨서는 미래의 기술에 대한 '예언' 이라기보단 미래의 기술이 그의 '비전'에 영향을 받은 경우라 생각합니다. 글 재미있게 잘보았습니다. ^^
Commented by Jay_n at 2006/03/14 12:04
호오 오래간만에 보니 반가운 책이네요. 새로 나온 번역으로는 못봤는데, 역시 재미있겠지요? ^^ 웹브라우저도 별반 없던 시대에 이런 책을 쓰다니 참 대단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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