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3월 10일
르귄의 SF들.
얼마전부터 황금가지에서 르귄의 책들을 번역해내기 시작했습니다. 어스시 시리즈는 정말 끔찍했지만 김수현씨가 번역하고 있는 헤인 시리즈는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오랜만에 SF에 빠지는 충족감을 즐기고 있으니까요.
르귄의 책은 SF소설이 가질 수 있는 거의 모든 미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미래기술를 예측하고, 미래 사회의 모델을 상상합니다. 그녀의 ‘헤인’시리즈는 얼마나 더 다채로운 세계를 상상할 수 있나에 대한 일련의 보고서 같은 기분도 들어요. 르귄이 상상, 혹은 고안해낸 세계는 굉장히 세련되고 또한 생생해서, 오히려 미국이나 제 3세계국가의 정치적 특성을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명백하고 그럴 듯 해 보입니다.
‘어둠의 왼손’은 남성과 여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사는 행성에 관한 이야기였죠. 그 신체적 특성에 기인하여 겨울행성의 사람들은 독특한 이원론적 일원론을 발전시킵니다. ‘빼앗긴 자들’은 아나키스트들의 국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소유와 지배권력을 벗어난 자들이 고안하고 완성해낸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지요. 르귄은 정치권력이라는 것이 없는(혹은 거부하는) 세계에 대해 거의 완벽하게 그려내었습니다. 그것의 모순까지도요. 르귄은 동시성이라는 물리학적 개념으로 윤리적인 상상을 전개합니다. 그것은 바로 공존이지요. 저는 공존에 관해 이렇게 우아한 이야기를 하는 작가를 맹세코 본 적이 없습니다.
르귄의 헤인시리즈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예외없이 연맹에 가입한, 혹은 가입하려는 행성에 관한 이야기이지요. 주인공들은 그 행성에서 고립되어 있고, 그것을 탈출하려 하는 도정의 끝에는 필연적으로 ‘헤인’이 있습니다. 헤인은 모든 인류의 필연적인 미래, 완성, 그리고 귀환에 관한 다층적인 상징인 것이지요. 이러한 일련의 패턴은 르귄의 SF에 강한 신화적인 색채를 부여합니다. 전체성을 향해 회귀해가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그 디테일에 상관없이 늘 서사시적인 후광을 부여받는 것입니다.
그녀는 과학과 진리가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믿는 몇 안 되는 작가중 하나입니다. 그녀의 단편집 ‘바람의 열두 방향’에는 그러한 애정들로 가득해요. ‘명인들’에 나오는 이런 대목을 보세요. “그 사람은 이 세상과 신 사이의 거리를 측정하려고 했다.” 그는 과학기술에 낭만적인 색채를 즐겨 부여합니다. 그녀가 밝혔듯 르귄 소설의 과학자들은 ‘외롭고 모험심 강하고 고립되어 있으며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겉도는 인물’들이지요. 그들은 비극과 서사시의 영웅들을 반반씩 섞어 놓은 모습인 것입니다.
언젠가 말했듯 SF는 미래를 상상하며 과거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르귄에 있어서도 그것은 굉장한 매력이에요. 르귄은 종종 그것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구요. 제가 어스시 시리즈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위의 특징에서 나오는 긴장 같은 것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by | 2006/03/10 11:51 | For fiction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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