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3월 15일
백민석의 '목화밭 엽기전'
백민석의 첫 장편 ‘목화밭 엽기전’이 저에게 던져준 충격은 거대한 것이었습니다. 이 피와 정액이 흥건한 이야기는 제가 읽어온 어떤 작가의 소설보다도 훨씬 자극적이고 답답하며 저질스러운 것이었으니까요. 그래요. 이 소설은 굉장히 저질스러웠습니다. 그의 선배인 장정일이 의도적으로 포르노그래피를 카피한 소설을 썼다면 백민석은 자신의 징그러울만치 계산적인 주제를 B급 호러의 정서로 채색해 내놓았습니다.
이 소설의 주목할만한 점은, 기가 질릴만큼 넘쳐나는 B급 호러적인 장면들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답답한 느낌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차용한 호러의 장치들이, 세계의 견고한 벽을 강조하는 데에 쓰이고 있기 때문이에요.
백민석 소설속의 괴물들은, 자신이 어떤 짓을 저지르더라도 궁극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백민석은,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소설을 쓰던, 이 세상은 조금도 바뀌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 채로 글을 쓰는 것이지요. 그는 바위를 향해 계란을 던지듯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비록 이 계란으로 너를 깨트릴 수는 없지만 더럽게 할 수는 있어!” 정도의 장난기인거죠.
이러한 한계속에서 나오는 스타일의 과잉은, 굉장히 답답한 불쾌감을 우리에게 전하게 됩니다. 그것은 공포영화를 보며 우리가 느끼게 되는 감정의 폭발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 속한 효과이지요. 즉 백민석은 B급 호러의 장치들을 이용하지만, B급 호러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에요. 어떤 비평가는, 그가 굉장히 새로운 작가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가 호러의 관습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결코 새로운 작가가 아닐 것이라는 얘기를 했지요. 물론 그럴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그것은 호러 장르의 팬들을 정확하게 이해한 이야기도 아니고, 백민석을 정확하게 이해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우선 백민석의 글은, 일반적인 호러 팬들을 대상으로 쓰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호러 관습에 익숙한 저같은 독자에게도 굉장히 의미있는 이야기입니다. 호러의 소재들을 차용해서 나오는 매끈한 소설을 보는 재미는, 그리 심심한 것은 아니지요.
결론적으로 그의 소설의 매력은 그 특유의 과잉하는 스타일 보다는, 그 스타일과 절망적인 현실인식 사이에서 빚어지는 긴장 사이에 존재합니다. 세상이 정말 끔찍하게 마음에 안들기는 한데, 그것을 바꿀 힘이 없으니, 그저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드는 것입니다. 굉장히 진지한 마음으로, 마치 장난을 치듯.
제가 백민석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그래서 입니다.
# by | 2006/03/15 22:10 | For fiction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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