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3월 22일
문학의 파업
개강 첫 주, 제 학교생활은 예상치 못한 복병에게 습격 당했습니다. 바로 지하철 파업이었죠. 출근시간대의 지하철 사호선은 정말이지 끔찍합니다. 하지만 충분히 더 끔찍해 질 수 있었다는 것이 정말 끔찍한 거죠. 세상은 얼마나 더 나빠질 수 있는 걸까요. 사람이란, 얼마나 더 나쁜 환경을 견디어 낼 수 있는 걸까요.
여하튼, 사태는 곧 진정되었고 저는 여전히 만원의 지하철을 타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얻었고, 우리의 무엇이 나아졌는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 철도청의 노조원들이 참 부러웠습니다. 그들에게는 시민을 담보로 협박을 벌일 만큼의 힘이 있고 의지가 있고, 획득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니까요. 그것은 결국, 그들은 이 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존재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용감할 수 있는거에요.
얼마전, 저는 '문학의 파업'이라는 것을 상상해보았습니다. 어느날 문학인들이 처우개선과 기타등등의 권익신장을 주장하며 파업을 벌인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도 시를 발표하지 않고, 소설을 쓰지 않습니다. 더 이상 어떤 책도 나오지 않고 어떠한 평도 실리지 않아요. 무기한의 파업으로 인해, 이 사회에서 문학이 정지해버립니다. 자아, 어떨까요?
저는 아쉽게도, 그것이 출근시간 만원의 지하철보다 끔찍하다고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동물원이나 놀이동산이 사라진 세계를 상상해보는 것만큼 무미건조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조금 범위를 넓혀 볼까요? 문학가들의 영향을 받아 영화인과 방송연예국, 음악인조합들이 연이어 파업을 벌입니다. 더 이상 어떤 영화나 드라마, 뮤지컬, 연극, 콘서트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세상은 불편해지지 않습니다. 다만 조금 무미건조해질 뿐이지요. 그래요. 다만, 조금 더 무미건조해질 뿐입니다.
저는 가끔 문학이 왜 필요할까를 질문해봅니다. 문학은 왜 필요할까요? 필요하기는 한걸까요? 물론 세상은 필요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최신유행의 패션이 엄밀한 의미에서 '필요'치 않은 것처럼, 문학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얘기도 있잖아요? 그렇다면 결국 문학은, 스스로의 생명을 이어나가기 위해 사람들에게 욕망을 투사하고, 시장을 만들고, 그것으로부터 이윤을 취하고, 그 이윤으로 다시 상품을 생산하여 공급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최근 들어 논술교육이 강화되고 저연령학생들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책읽기열풍이 부는 것을 보며,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문학이라는, 거대한 권력구조를 살짝 엿본 것 같아서 말이지요. 어쩌면 그 본신은 철도청만큼이나 크고, 힘있고, 실질적인 구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그런 것은 제 불길한 비젼일 뿐이죠. 냉정하게 생각하면 여전히 문학은 이미 수십년간 이어지고 있는 '위기'를 지나고 있고, 버티고 있고, 설령 버티지 못해 내일 바로 죽어버린다고 해도 아무도 불편해하지는 않을 그런 존재입니다. 조금 더 무미건조해 질 뿐이에요. 조금 더.
저는 그래서 철도청의 노조원들이 부럽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그들이 파업을 벌이면 사람들이 다칠 수 있으니까요. 그래요. 그들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여하튼, 사태는 곧 진정되었고 저는 여전히 만원의 지하철을 타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얻었고, 우리의 무엇이 나아졌는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 철도청의 노조원들이 참 부러웠습니다. 그들에게는 시민을 담보로 협박을 벌일 만큼의 힘이 있고 의지가 있고, 획득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니까요. 그것은 결국, 그들은 이 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존재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용감할 수 있는거에요.
얼마전, 저는 '문학의 파업'이라는 것을 상상해보았습니다. 어느날 문학인들이 처우개선과 기타등등의 권익신장을 주장하며 파업을 벌인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도 시를 발표하지 않고, 소설을 쓰지 않습니다. 더 이상 어떤 책도 나오지 않고 어떠한 평도 실리지 않아요. 무기한의 파업으로 인해, 이 사회에서 문학이 정지해버립니다. 자아, 어떨까요?
저는 아쉽게도, 그것이 출근시간 만원의 지하철보다 끔찍하다고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동물원이나 놀이동산이 사라진 세계를 상상해보는 것만큼 무미건조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조금 범위를 넓혀 볼까요? 문학가들의 영향을 받아 영화인과 방송연예국, 음악인조합들이 연이어 파업을 벌입니다. 더 이상 어떤 영화나 드라마, 뮤지컬, 연극, 콘서트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세상은 불편해지지 않습니다. 다만 조금 무미건조해질 뿐이지요. 그래요. 다만, 조금 더 무미건조해질 뿐입니다.
저는 가끔 문학이 왜 필요할까를 질문해봅니다. 문학은 왜 필요할까요? 필요하기는 한걸까요? 물론 세상은 필요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최신유행의 패션이 엄밀한 의미에서 '필요'치 않은 것처럼, 문학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얘기도 있잖아요? 그렇다면 결국 문학은, 스스로의 생명을 이어나가기 위해 사람들에게 욕망을 투사하고, 시장을 만들고, 그것으로부터 이윤을 취하고, 그 이윤으로 다시 상품을 생산하여 공급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최근 들어 논술교육이 강화되고 저연령학생들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책읽기열풍이 부는 것을 보며,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문학이라는, 거대한 권력구조를 살짝 엿본 것 같아서 말이지요. 어쩌면 그 본신은 철도청만큼이나 크고, 힘있고, 실질적인 구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그런 것은 제 불길한 비젼일 뿐이죠. 냉정하게 생각하면 여전히 문학은 이미 수십년간 이어지고 있는 '위기'를 지나고 있고, 버티고 있고, 설령 버티지 못해 내일 바로 죽어버린다고 해도 아무도 불편해하지는 않을 그런 존재입니다. 조금 더 무미건조해 질 뿐이에요. 조금 더.
저는 그래서 철도청의 노조원들이 부럽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그들이 파업을 벌이면 사람들이 다칠 수 있으니까요. 그래요. 그들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 by | 2006/03/22 21:38 | For society | 트랙백 | 덧글(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