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4월 07일
데이빗 린치의 이레이져 헤드

글쎄요. 데이빗 린치의 영화에 대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우선 저는 지금까지 두편의 데이빗 린치 영화를 보았습니다. 가장 최근에 개봉한 <멀홀랜드 드라이브>와 지금 감상한 <이레이져 헤드>가 바로 그것이죠. <블루 벨벳>은 DVD에 문제가 있어서, <트윈 픽스>는 구할 길이 없어서 보류하고 있는 중입니다. 물론, 구하려고 애를 쓰면 구해지겠지만, 제가 린치 영화에 느끼는 애정은 굳이 발걸음을 할만치 큰 것은 아니라서요.
이 두편의 영화로도, 저는 그에 대해 적당한 수식어 하나를 붙일 수 있을 거에요. 바로 스타일리스트라는 호칭이지요. 그의 영화에는 그만의 스타일이 차고 넘쳐 흐릅니다. 기억과 현실이 섞이고 악몽이 삶 속으로 그 실체를 들이밀죠. 어딘지 흔해 보이면서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주인공은, 정말이지 악취미입니다.
거기에, 또 이런 말을 할 수 있겠군요. 이 사람의 영화는 도대체 줄거리를 요약할 수가 없습니다. 각각의 시퀀스들은 서로 독립적인 것 같기도 하고 또 의존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어찌보면 굉장히 논리적이지만, 그것은 현실의 논리가 아니라 꿈의 논리, 악몽의 논리에 기초해 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
이 영화는 도저히 가족을 사랑할 수가 없는 한 백인 남성의 불만을 끔찍하게 과장해놓은 것 같아요. 속도위반을 해서, 원치 않는 아이를 갖게 되고, 결국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부인은 애보기가 끔찍해 집을 나가고, 애는 뒤꼭지만 봐도 밉고, 마침 바로 앞에 관심가는 멋진 여자가 있는데 애는 주책맞게 울어대고, 알고보니 그 여자는 다른 애인도 있고, 이놈의 괴물같은 아이는 속절없이 계속, 계속 울어대기만 하고. 미칠지경인거죠. 그래서 헨리는 '아기'를 죽이며 어떤 구원 비슷한 것을 얻게 됩니다.
헨리는 자신이 어마어마하게 착취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내가 도망가고, 아이를 홀로 돌보다가 헨리는 악몽을 꿉니다. 자신의 머리가 잘려나가고, 그 잘려진 머리에서 뇌를 파내어 연필 위에 꽂는 지우개를 만드는 꿈이었지요. 아마 헨리는, 자신의 뇌와, 목숨과, 영혼까지 어딘가에 팔려나가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헨리는 사생활은 극히 단조롭고, 취미생활이라는 것은 없는것 같으며, 그 도시에서 그는 평생 공장 노동자로 살아가야합니다. 그런 억압을 가질만 한거죠.
이런 일상적인 공포증들을 기괴하게 과장해놓으면, 바로, 짜잔. <이레이져헤드>가 나옵니다. 헨리의 현실은 헨리의 악몽만큼이나 비현실적입니다. 어쩌면 이 영화 전체가 하나의 악몽일 수도 있겠어요. 이 느릿느릿하고 건조한 화법의 영화는, 사람을 놀래키는 요소는 없지만, 정말 소름이 끼치도록 불쾌하게 만듭니다. 가령, 이 영화가 끝날 때 까지, 줄기차게 울어대는 저 아기를 보세요. 그 '아기'는 자신이 나오지 않는 시간 빼고는 계속 울고 있습니다. 스크린 바깥에 있는 저까지 미치는 것 같아요.
<이레이져헤드>는 호러영화일까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몇몇 장면들은 정말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워요. 그리고 불쾌합니다. 그것은 이 영화가, 그 스타일과는 반대로 정말로 현실적인 논리를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비논리적이고,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장면들도 곰곰이 생각하면 정말 그럴듯해요. 그것은 정말 '악몽'같습니다. 그것은 귀신이나 연쇄살인마에게 쫒기는 꿈보다도 훨씬 '진짜' 악몽을 닮아있지요. 악몽이라는게 그렇잖아요? 깨어나서 꿈의 내용을 생각하면 도저히 말도 안되고 엉뚱한 전개인데, 정말이지 순수하게 기분이 나쁜.
생각해보면 <이레이져헤드>는 단어들만 엉뚱하게 바꾸어 놓은 평범한 문장같은 영화입니다. "나는 내 아기를 죽였다" 를 "나는 내 괴물을 죽였다"로 바꿔났달까요. 이 단어들이, 기호들이, 영상의 차원에서 치환되자 어마어마하게 끔찍해지는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끔찍한 비전을 가능케합니다. 일상의 차원이었다면, 헨리는 절대 아기를 죽일 수 없었겠죠. 하지만 헨리는 '괴물'을, 그러니까 아기의 배를 가위로 가르고 자유로워집니다. 바로 단어가 바뀐 세계, 즉 일상에서 정확히 반보 평행으로 옮아간 세계에서요.
물론 지금까지의 해석은 순전히 저의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린치 영화의 옳은 감상법이라는 생각은 안들어요. 해석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린치 영화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불쾌감을 가지고 엔딩크레딧을 봤을 때, 영화가 줄 수 있는 것을 다 받아들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난해한 형식을 굳이 설명하고 이해해보려 애쓰지만, 꼭 그럴 필요 있나요? 이 영화는 메타포를 찾지 않고도 충분히 재미있고, 의미있고, 또 불쾌한 영화입니다. 주인공의 구원이 공감가면 공감갈수록 불쾌해지는. 그런 영화입니다.
# by | 2006/04/07 23:51 | For movie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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