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나의 <스크린 앞에서 투덜대기>

 
저는 듀나라는 필자를 매우 좋아합니다. 듀나를 필자라고 지칭하는 이유는, 그 사람의 글쓰기가 꽤 여러 방면에 걸처져 있기 때문이지요. 듀나는 썩 능숙한 SF작가이며 영화평론가이고, 칼럼니스트입니다. 이 사람을 작가, 라거나 평론가와 같은 고정된 영역에 국한시키는 것은 매우 심심한 결론입니다.

이 사람의 스타일은 그가 유행시킨 문체의 특성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듀나의 문체는 구어체와 문어체가 반반씩, 혹은 조금더 미묘한 비율로 섞여 있지요. 그는 반은 전문성의 영역에, 반은 아마추어적 애호가의 영역에 자신의 글쓰기를 위치시키고 있어요. 이 사람은 절대 이론적이거나 사상적인 주장을 하는 일이 없습니다. 노골적으로 자신의 학문적인 배경을 노출시키는 심영섭같은 평론가나, 어떻게든 영화를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끌어올리려고 하는 김영진 같은 평론가와는 대조적이지요. 듀나는 어떤 이론에 도움받기를 꺼려하며, 영화는 영화라는 어떤 동어반복적인 주장을 즐겨합니다. 듀나의 영화평은 영화 자체에서 멀리 벗어나는 일이 드물죠. 하지만 영화 내적으로, 보기드물게 풍요로운 평론을 보여줍니다.

결론적으로 그의 평론은 영화애호가의, 또한 장르팬의 글쓰기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듀나는, 딱 절반만큼 전문성의 영역에 스스로를 위치시키고 있는데, 그것은 듀나가 끌어다쓰는 꽤 폭넓은 문화적 인유와, 스스로 가지고 있는 영화나 장르에 대한 깊은 자의식에 기인합니다. 듀나는 영화나 장르를, 자체적인 법칙과 계보를 지닌 실체로서 간주하는데, 이런식의 태도에 의해 생산된 글쓰기들은 바르트적인 냄새를 풍기기 까지 합니다.


<스크린 앞에서 투덜대기>를 오랜만에 다시 읽고 있습니다. 듀나의 글쓰기의 재미는, 대개 이 사람의 다양한 취미와 노골적으로 애호가적인 태도에 있어요. 하지만 애호에 의해서 쓰여진 이 사람의 글은, 놀라울만치 이론적인 그림자를 떨어뜨릴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아무나 획득할 수 없는, 듀나만의 지점일 것입니다.


by 이녘 | 2006/04/18 22:42 | For others | 트랙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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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빗방울이 모여드는 at 2007/01/27 18:21

제목 : 사악한 독자
듀나의 &lt;스크린 앞에서 투덜대기&gt; 내가 듀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 사람의 평론가로서 글쓰기 방식때문이다. 소설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내가 파악하는 이 사람의 특징은 크게 두가지인데, 첫째, 야심이 거의 없다. 장르에 대해서도, 자신에 대해서도, 거의 모든 것에 대해서. 심각한 단점이다. 둘째, 정치적 공정성을 선호하다 못해 강박된다. 역시 심각한 단점이다. 그렇지만 ......more

Commented by 언에일리언 at 2006/04/19 09:00
음..전 이녘님의 글을 읽으면서 듀나의 문체랑 상당히 닮았다고 느꼈었는데 과히 틀린건 아니었나 보군요. 평상시 덧글 안달고 눈팅만 하다 첨으로 글 남깁니다.
Commented by 이녘 at 2006/04/19 19:56
반갑습니다, 언에일리언님. 자주자주 들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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