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슐러 르 귄, 바람의 열두 방향

 
 저는 르귄의 어스시 시리즈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녀 특유의 낭만적이고 영지적인 분위기 속으로 너무 함몰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SF를 쓸 때의 그녀에게선, SF라는 장르가 가지는 어떤 미래에 대한 비전과 함께 아득한 과거와 원형, 신화속으로 회귀하는 모호한 아우라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스시 시리즈에 이르면 완전히 르귄이 만들어놓은 꿈 속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았어요.

이 책 안에서도 저는 <이름의 법칙> 이나 <해제의 주문>과 같은 어스시 시리즈의 연장선에 있는 단편들에 별 호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어둠 상자>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같은 경우엔 꽤 만족하는데 말이지요. 그런것을 보면 단순히 처음 얘기한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르귄의 어스시 시리즈를 싫어하는 데는 더 복잡하고 설명 불가능한 어떤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여기에서도 제 눈을 끄는 단편들은 <명인들>이나 <샘레이의 목걸이> <아홉생명>과 같은 작품들입니다. 아홉생명을 제외하면 노골적으로 환상적인 분위기와 SF가 섞여드는 것들이에요. 제 취향은 아무래도 그런 것인 모양입니다.

 

by 이녘 | 2006/04/21 13:31 | For fiction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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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어둠의왼손 at 2006/05/08 15:29
저와는 완전 반대되는 취향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나름 즐기기는 하지만 르귄의 '사변소설'들은 제자신이 논리보다는 직관에 많이 의존을 하고 디테일한 설정에 기반을둔 비젼을 이해할만한 지적수준도 치밀함도 부족한지라 내면으로 침잠하는 성향이 강한 어스시 시리즈 쪽이 더 감성적으로 와닿더라고요.
특히 '이름의 법칙' 같은 경우는 이 아줌마의 여타의 작품에서는 찾아보긴 힘든 잰척하는 유머가 재미있잖아요 ? ^^
Commented by 이녘 at 2006/05/08 16:38
저는 어스시 시리즈가 더 지적노동을 요구하는 글처럼 느껴져요. 으음. '이름의 법칙'은 정말 유쾌한 소설이었지요. 정말 동화같은 단편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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