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5월 03일
천상의 피조물

오늘 재미동에서 <천상의 피조물>을 보았습니다. 이걸로 저는 국내에 개봉한 모든 잭슨 영화를 보았습니다. 순서는 뒤죽박죽이지만, 잭슨의 영화는 모두 재미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혹평을 아끼지 않았던 <프라이트너> 까지요.
<천상의 피조물>은 뉴질랜드에서 일어난 끔찍한 살인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절친한 친구였던 폴린 파커와 줄리엣 흄은, 자신들의 사이를 방해한다고 생각하는 폴린의 어머니를 사고로 가장해 살해하지요. 하지만 폴린의 일기가 발견되면서 두 소녀는 친족살해범과 그 공범으로 구속되게 됩니다. 그 일기에는 폴린과 줄리엣의 우정, 그 신경질적인 애정과 그 둘을 갈라놓는 어머니에 대한 증오, 그 결과가 낱낱히 적혀 있던 거죠.
영화는 대체로 아이러니한데, 관객은 결코 편한 마음으로 폴린이 어머니를 죽이는 것을 감상할 수가 없습니다. 잭슨 영화에서의 살인이 불편하게 느껴지다니. 거기에 딱 한사람 밖에 안죽는다니!! 이런 아이러니가 또 어디있을까요? 저는 <프라이트너>같은 영화보다는 이 <천상의 피조물>이야말로 잭슨의 필모그래피에서 이례적인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영화는 대체로 잭슨적인 비전으로 가득합니다. 잭슨은 여전히 자신의 솜씨를 마구 자랑하고 있고, 초기 영화에서 보여지는 어마어마하게 과장된 등장인물들도 여전하지요. 케이트 윈슬렛이 연기한 줄리엣의 영어 엑센트는 거의 독일어처럼 들릴 정도에요.
이 영화는 단순히, 동성애에 빠진 나머지 어머니를 살해하는 두 십대소녀의 이야기로 환원되는 것은 아닙니다.
폴린이 줄리엣에게 반한 나머지, 그리고 줄리엣의 가족이 되고 싶어서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다는 이야기는 사회계급에 대한 노골적인 메시지를 뿌립니다. 흄집안과 리퍼 집안의 대비를 보세요. 잭슨은 폴린이 자신의 환경을 부끄러워하고, 흄 집안의 딸이 되고 싶어하는 환상을 계속 강조하는데 이는 영화를 통틀어 가장 거슬리고 불쾌한 상상중 하나입니다. 폴린이 모르고 있거나 의식적으로 생각치 않으려하는 흄 집안의 실상은 얼마나 아슬아슬한가요? 이러한 설정은 쉽게 상류층 가정과 일반 가정의 이분법적 대비로 녹아듭니다.
잭슨은 그런식의 읽기가 가능해지리라는 것을 눈딱감고 허용하고 있지요. 언젠가 말했듯, 잭슨은 자신이 말하려는 것을 숨기지 않는 뻔뻔한 이야기꾼입니다. 그의 영화가 그리 정치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메시지 위를 덮고 있는 어마어마한 스타일 때문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영화는 잭슨답지 않은 꼰대의식이 가득 비치는 영화입니다. 줄리엣과 폴린의 관계는 굉장히 매력적인 놀이이지만 얼마나 철없이 보이던가요? 잭슨은 그들의 사랑을 시치미 뚝 떼고 미화시키면서 한편으로는 꼰대처럼 한마디 하는걸 잊지 않습니다. "누가 그런걸 돈주고 사려 하겠니!" 어른들의 세계는 냉정하거든요.
전체적으로 잭슨의 시선은 호의적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공감을 보내고 있는건 아니에요. 당연하지요. 그건 정말 끔찍한 친족살해였는걸요. 사람은 누구나, 매일 죽어가고 있다고 중얼거리는 폴린은, 제가 본 중 가장 끔찍한 호러괴물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덧. 잭슨의 어머니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그가 영화에서 '어머니 죽이기'를 두번이나, 그것도 중심적인 소재로 써먹은게 결코 우연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덧 둘. 줄리엣과 폴린이 마리오 란자의 공연을 보고 나서 줄리엣이 껴안았던 검은 머리의 남자, 피터 잭슨 아니었나요?
이글루스 가든 - 내맘대로 영화해석
# by | 2006/05/03 15:23 | For movi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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