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5월 05일
대추리의 '그들'
3년전 어머니께서는 자전거 한 대를 받는 조건으로 약 2년간 보아오던 중앙일보를 동아일보로 바꾸셨지요. 그 전에는 경향신문이었고, 그 전에는 세계일보였을 겁니다. 아무렴 어때요?
오늘자 동아일보 1면에는 대추리 사건이 실려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사, 조금 묘하네요. 슬슬 '대추리'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미군'에 대한 이야기가 채워지고 있어요. 이것은 발빠르게 대추리 문제에 참가한 일부 '시민단체'와 무관하지 않은 흐름일 것인데, 저는 이 '시민단체'나 '동아일보'나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우선 시민단체에 대한 얘기할께요. 저는 세상에서 진심으로 불쾌하게 생각하는 집단이 몇몇개 있는데 문제의 '시민단체'는 그 중 하나입니다. 아마도 'X총련'계열의 학생단체일거라 생각하는데...
그들의 못된 버릇 중 하나는 어떤 문제든 '미군철수'와 연관시키려 한다는 거에요. '미선이와 효순이'도 그랬고 '부안'도 그랬으며 대추리도 마찬가지인거죠. 그들은, 진심으로 피해자들과 연대하고 있다기보다는 그들의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기 위해 피해자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풍깁니다. 저는 그들이 정말 싫어요. 불쾌합니다. 저는 그들의 정치적 주장이 딱히 올바르지 않다고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 어리석지 않은 슬로건이 몇개나 되겠어요? 하지만 여기저기 지싯지싯 붙어서, 남의 싸움을 이용하려고 하는건 안되죠. 그건 비겁합니다.
그리고 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 '동아일보'라는 언론. 대추리의 주민이 "남북이 분단된 현실을 감안할 때 주안미군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네요. 뭐, 그랬을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거에요? '시민단체'가 핵심에 어긋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그들도 핵심을 벗어나 있습니다. 대추리의 주민들은 '주한미군'에 대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에요.
중요한 것은 미군 때문에 대추리의 주민들이 쫒겨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구체적인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정부가 충분한 의견조율 없이 일방적으로 힘을 행사하고 있다는 거에요. 유혈사태가 벌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밀어붙이는 그 무식함이 문제인 것입니다.
대추리의 주민들이 자기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밥그릇 싸움만큼 중요한 것이 또 어디에 있나요? 대추리는 평생을 걸쳐 그들의 밥그릇이 되어준 땅입니다. 그 땅을 두고 협상을 벌이는 것은 당연한 거에요. 더 많은 보상을 얻으려 하는 것도 당연한 거구요. 그런데 정부는, 그 협상테이블에 앉는 대신 '거절 못할 제안' 따위나 던지고 있는 겁니다.
이런 싸움에 눈치없이 끼어드는 '그들'이 저는 정말 얄밉습니다. 대추리의 핵심에서 조금 벗어난 결론이지요? 하지만 기사들을 보며 제가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대추리에 대한 동정이나, 정부에 대한 분노가 아닌 '그들'에 대한 불쾌함입니다. 그들의 참전이 대추리 주민들에게 결코 이롭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대추리 문제에 대한 핵심을, 그들이 왜곡시키면 왜곡시킬수록 대추리 문제의 진정한 해결은 계속 유보될 것입니다. 언론은 주한미군 얘기를 하느라, 정부와 대추리가 하는 말의 어디까지가 참이며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밝혀내는데 게을러지겠지요. 그리고 어느샌가 우리는 대추리를 잊게 될 것입니다.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요.
언젠가 제 밥그릇을 두고 싸우고 있을 때를 상상하게 됩니다. 옆에 '그들'이 있는건 아닐까요? 억울함을 호소하는 제 마이크를 빼앗아 '양키고홈' 따위나 외치는 건 아닐까요? 생각하면 할 수록 저는 그들이 불쾌합니다.
# by | 2006/05/05 18:47 | For society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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