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전기톱 살인마

 
아시다시피, 이 영화는 두개의 버전이 있습니다. 토비 후퍼가 감독한 옛 버젼과 작년 여름에 개봉한 리메이크 판이지요.

사실, 두번째 영화는 시작부터 불리한 지점에 서 있었습니다. 토비 후퍼의 첫번째 '전기톱'은 호러영화의 한 전환점을 마련한 작품이었지요. 공정히 대결하기엔, 너무 어마어마하게 위대한 아버지를 둔 셈이에요. 이렇게 핑계부터 대며 시작하는 이유는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이 이룬 너무 보잘것 없는 성취 때문입니다.  마커스 니스펠의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은 그냥저냥한 여름용 영화의 수준에서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은 결과를 보여줍니다. 토비 후퍼의 영화를 떼어놓고 생각하면요.

두 영화는 어떻게 다를까요? 우선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는 의외로 역겨운 장면에 의존하지 않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진짜로 관객을 몸서리치게 만드는 것은, 죽어라고 클로즈업되는 여주인공의 눈이지요. 화면 가득히 담긴 핏발서린 눈은, 이 광기서린 살인현장에 처한 캐릭터의 혼돈을 인상적으로 포착해냅니다. 또한 살인이 일어나는 순간을 도저히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관객은 주인공과 똑같은 긴장과 공포를 체험해야만 합니다. 도저히 이유도 알 수 없고, 영화가 끝나는 내내 해명되어지지 않는 살인은, 이 영화의 진짜 재미였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는 사람들을 찍으며 영문도 모른채 무서워하는 관객을 만들어낸 영화입니다. 그 영문도 모르는 재미가,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이었던거죠.

하지만 마커스 니스펠은 이 영화에 그 영문을 부여하려 했습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선택이에요. 이 뚜렷히 도드라지는 특징을 가진 영화를 그대로 카피했다간 어떤 비난을 들을지 별로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거죠. 하지만 그는 조금만 더 머리를 굴렸어야 했을 것입니다. 나름대로 갑작스러웠던 살인은, 이미 기대를 머금은 관객에 의해 포착된지 오래이고 새로 주어진 설정은 별로 흥미를 못끌었지요. 우리는 '가죽얼굴'의 가족들이 겪었던 수난 따위, 조금도 궁금해지지 않는단 말예요.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은 원작의, 최고로 매력적인 부분을 의도적으로 제외하고 카피한 영화로까지 보입니다. 1974년도와는 달리, 이제 슬래셔 무비는 미개척장르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오래 씹어 단맛이 느껴지지 않는 껌처럼 익숙해졌죠. 이제 대충 잔인하게 만든다고 먹히던 시절은, 아주 예전에 지났단 말예요.

이 영화는 <새벽의 저주>와 그 목적이 크게 다른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옛 고전을 멀끔한 오락영화로 다시 만든다는 것이었지요. 그것을 위해, 이 영화들은 원작의 아우라를 어느정도 의도적으로 지우고 평이한 문법으로 다시 썼지요. 하지만 <새벽의 저주>가 대충 그 정도에서 만족했던 반면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은 원작의 가장 큰 매력 위에 덧칠을 하려고 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이 두 영화의 차이인지도 모르겠어요. 어줍잖은 야심이 영화를 참을 수 없이 거슬리게 만든거죠.

하지만, 이 모두가 너무 잘난 아버지를 둔 탓입니다. 사실 원작은 카피하기 매우 힘든 작품이에요. 이 작품이 주는 공포와 혼돈, 긴장은 '낯선 혼란'을 기초로 한 것이었으니까요. 영화가 익숙해지는 순간, 이 영화의 힘은 가라앉습니다. 애초에 리메이크하기 힘든 작품이었어요. 하지만 그것이 핑계가 되어주지는 않겠지요. 그 모든 것을 알고 도전한 것이니, 그것을 뛰어넘는 힘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사실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아니면, <새벽의 저주>처럼 얌전해지던가요.

by 이녘 | 2006/05/10 20:25 | For horror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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