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5월 13일
조지 로메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저는 로메로의 버전보다, 톰 새비니가 1990년에 리메이크한 버전을 먼저 보았습니다. 사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것은 톰 새비니의 영화이기보다는, 다분히 로메로 영화이지요. 로메로 자신이 옛 영화를 돌아보며, 미처 건드리지 못했던 여러 가능성들을 변주해서 만든 느낌이거든요. 그래서 리메이크 버전에는 원작과의 공통점만큼이나 풍요로운 차이점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 둘을 비교해보면서 감상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겠지만, 1968년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살펴보는 것에, 저는 일단 만족해보려고 합니다.
우선 이 영화는, 시체 삼부작, 이제는 사부작이 된 로메로의 시체 시리즈 중 가장 작은 영화입니다. 노골적인 풍자와 분노로 가득한 이후 작품에 비해,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가장 솔직하게 호러의 문법대로 써가는 영화이지요. 여기에는 로메로가 어렴풋이 보기 시작한 '좀비'의 가능성이 가공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나이먹고 조금은 아마추어적인 허술함이 보이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아주 흥미롭게 감상했습니다. 이 영화에는 후기 로메로에게서 보이는 모든 농담과 절망이 섞여서 부글부글 끓고 있거든요.
우선 이 영화가 갇힌 공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겠지요. 로메로의 영화들은 제한된 공간을 점유하기 위해 좀비들과 투쟁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빈집, 쇼핑센터, 연구소. 이러한 폐쇄된 공간은, 그 안에서 인간적인 드라마가 이루어지는 계기를 마련해줍니다. 일단 좀비는 바깥에 있고, 직접 얼굴을 맞대고 있는 것은 꼴보기 싫은 동료들이거든요. 로메로의 영화에서, 인간 상호의 갈등은 좀비와의 투쟁보다 훨씬 묵직한 무게감을 가지고 다뤄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로메로의 영화는 끔찍하고 공포를 자극하는 비쥬얼이 주는 감각에서 벗어나, 어떤 불편함을 전하게 됩니다. 로메로의 영화에서 진짜 파국의 이유는 '좀비'가 아니라 여러가지 이유로 반목하고 갈등하는 인간관계 자체거든요. 다가오는 파국 앞에서, 사람들은 점점 패닉 상태로 빠지고, 이기심을 드러내며, 살아남기 위해 서로와 싸우죠.
벤과 후퍼의 대립은, 생존방식에 대한 의견대립이기 이전에 제한된 공동체 내에서의 헤게모니 싸움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이 둘의 다툼을 바라보는 시선은 정말이지 냉정하지요. 후퍼는 명백히, 지독히 이기적이고 아집이 강해 고집을 꺾지 못하 백인 가부장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의 방법은 옳았으며, 벤은 나름대로 냉정히 사태를 파악하고 생존을 위해 사람들을 독려하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 사람들을 조금 더 파국에 가깝게 몰아가는 역할이었지요. 가장 헌신적이고 희생정신으로 가득한 톰은 그 숭고한 정신 덕에 제일 먼저 죽게 됩니다. 톰이 쥬디에게 해주는 길고 지루한 연설은 이 영화의 가장 악의적인 농담이었지요.
이 영화는 정말로 불쾌해집니다. 이미 위기는 임박했고, 그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사람들은 대립하지요. 그리고, 결국 그 대립이, '위기'보다 먼저 사람들을 파멸시킵니다. 똑바로 정신박힌 사람들은 가장 먼저 희생되구요. 여기에 이르면, 모든 것은 절망적이 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련이라는 것은, 그것을 헤쳐나가려고 하는 과정 자체에 주어진 것이기도 했던거에요. 그리고 그 노력을 바라보는 로메로의 시선은 극히 차갑고 비관적입니다.
또한 로메로가 언뜻언뜻 보여주며 지나가는 많은 장면들은 관객들을 정말이지 불쾌하게 자극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벤이 백인들에게 '사냥'당하는 마지막 장면은 인종차별에 대한 차가운 농담을 던졌지요. 좀비를 사냥하며, 마치 사육제 같은 축제분위기에 젖어들어가는 사냥꾼들의 모습은, 폭력과 전쟁에 대해 무심할 수 없었던 1968년의 사람들에게 어떤 불편함을 가득 안겨주었습니다.
후퍼와 후퍼부인의 죽음은 어떤가요? 자신의 딸에게 뜯어먹히고 살해당하는 모습은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장 끔찍한 파토스 중 하나였습니다. 바바라는 결국 자신의 오빠인 조니에게 잡혀 좀비들에게 끌려가고 말지요. 이런식의 이야기들은 어쩔 수 없이 가족해체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것은 아무 가족도 없었던 벤이었잖아요. 이렇게 아무 연대의식없이 모인 공동체의 파멸을 그리는 이야기를, 미합중국의 특성과 연관시켜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 입니다. 그저 그 자리에 그 집이 있었기에 모인 사람들. 그들은 다가오는 위기 앞에서 싸우고 상처입히고, 결국 파멸하지요. 그 와중에 그들의 가장 작은 결속 가족마저 해체됩니다.
아까, 이 영화를 가장 작은 영화라고 소개했지만, 그것은 이 영화의 주제가 작다거나 쾌감이 적다고 투덜대는 소리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로메로의 정치적 야심이 가장 개입하지 않은 영화였습니다. 사실, 로메로의 정치적인 야심이 아직 충분히 자각되지 않았던 시기의 작품이라고 표현하는게 더 옳을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그 덕에 이 영화는 더 풍부한 상징들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더 노골적이 되고, 더 읽기 쉬워진 로메로의 나머지 영화들이 주는 쾌감에 비해 분명 흥미롭고 의미있는 부분들입니다.
우선 이 영화는, 시체 삼부작, 이제는 사부작이 된 로메로의 시체 시리즈 중 가장 작은 영화입니다. 노골적인 풍자와 분노로 가득한 이후 작품에 비해,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가장 솔직하게 호러의 문법대로 써가는 영화이지요. 여기에는 로메로가 어렴풋이 보기 시작한 '좀비'의 가능성이 가공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나이먹고 조금은 아마추어적인 허술함이 보이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아주 흥미롭게 감상했습니다. 이 영화에는 후기 로메로에게서 보이는 모든 농담과 절망이 섞여서 부글부글 끓고 있거든요.
우선 이 영화가 갇힌 공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겠지요. 로메로의 영화들은 제한된 공간을 점유하기 위해 좀비들과 투쟁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빈집, 쇼핑센터, 연구소. 이러한 폐쇄된 공간은, 그 안에서 인간적인 드라마가 이루어지는 계기를 마련해줍니다. 일단 좀비는 바깥에 있고, 직접 얼굴을 맞대고 있는 것은 꼴보기 싫은 동료들이거든요. 로메로의 영화에서, 인간 상호의 갈등은 좀비와의 투쟁보다 훨씬 묵직한 무게감을 가지고 다뤄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로메로의 영화는 끔찍하고 공포를 자극하는 비쥬얼이 주는 감각에서 벗어나, 어떤 불편함을 전하게 됩니다. 로메로의 영화에서 진짜 파국의 이유는 '좀비'가 아니라 여러가지 이유로 반목하고 갈등하는 인간관계 자체거든요. 다가오는 파국 앞에서, 사람들은 점점 패닉 상태로 빠지고, 이기심을 드러내며, 살아남기 위해 서로와 싸우죠.
벤과 후퍼의 대립은, 생존방식에 대한 의견대립이기 이전에 제한된 공동체 내에서의 헤게모니 싸움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이 둘의 다툼을 바라보는 시선은 정말이지 냉정하지요. 후퍼는 명백히, 지독히 이기적이고 아집이 강해 고집을 꺾지 못하 백인 가부장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의 방법은 옳았으며, 벤은 나름대로 냉정히 사태를 파악하고 생존을 위해 사람들을 독려하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 사람들을 조금 더 파국에 가깝게 몰아가는 역할이었지요. 가장 헌신적이고 희생정신으로 가득한 톰은 그 숭고한 정신 덕에 제일 먼저 죽게 됩니다. 톰이 쥬디에게 해주는 길고 지루한 연설은 이 영화의 가장 악의적인 농담이었지요.
이 영화는 정말로 불쾌해집니다. 이미 위기는 임박했고, 그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사람들은 대립하지요. 그리고, 결국 그 대립이, '위기'보다 먼저 사람들을 파멸시킵니다. 똑바로 정신박힌 사람들은 가장 먼저 희생되구요. 여기에 이르면, 모든 것은 절망적이 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련이라는 것은, 그것을 헤쳐나가려고 하는 과정 자체에 주어진 것이기도 했던거에요. 그리고 그 노력을 바라보는 로메로의 시선은 극히 차갑고 비관적입니다.
또한 로메로가 언뜻언뜻 보여주며 지나가는 많은 장면들은 관객들을 정말이지 불쾌하게 자극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벤이 백인들에게 '사냥'당하는 마지막 장면은 인종차별에 대한 차가운 농담을 던졌지요. 좀비를 사냥하며, 마치 사육제 같은 축제분위기에 젖어들어가는 사냥꾼들의 모습은, 폭력과 전쟁에 대해 무심할 수 없었던 1968년의 사람들에게 어떤 불편함을 가득 안겨주었습니다.
후퍼와 후퍼부인의 죽음은 어떤가요? 자신의 딸에게 뜯어먹히고 살해당하는 모습은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장 끔찍한 파토스 중 하나였습니다. 바바라는 결국 자신의 오빠인 조니에게 잡혀 좀비들에게 끌려가고 말지요. 이런식의 이야기들은 어쩔 수 없이 가족해체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것은 아무 가족도 없었던 벤이었잖아요. 이렇게 아무 연대의식없이 모인 공동체의 파멸을 그리는 이야기를, 미합중국의 특성과 연관시켜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 입니다. 그저 그 자리에 그 집이 있었기에 모인 사람들. 그들은 다가오는 위기 앞에서 싸우고 상처입히고, 결국 파멸하지요. 그 와중에 그들의 가장 작은 결속 가족마저 해체됩니다.
아까, 이 영화를 가장 작은 영화라고 소개했지만, 그것은 이 영화의 주제가 작다거나 쾌감이 적다고 투덜대는 소리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로메로의 정치적 야심이 가장 개입하지 않은 영화였습니다. 사실, 로메로의 정치적인 야심이 아직 충분히 자각되지 않았던 시기의 작품이라고 표현하는게 더 옳을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그 덕에 이 영화는 더 풍부한 상징들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더 노골적이 되고, 더 읽기 쉬워진 로메로의 나머지 영화들이 주는 쾌감에 비해 분명 흥미롭고 의미있는 부분들입니다.
# by | 2006/05/13 18:56 | For horror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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