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잭슨, 피블스를 만나요

 
저는 정말 몰랐습니다. <피블스를 만나요>가 DVD로 출시되어 있는지를요. 오늘 재미동에 가니, 떡하니 자리잡고 있더라구요. 원래는 <블루 벨벳>을 보려고 했지만, 미뤄버렸습니다.

<피블스를 만나요>는 성인인형극입니다. 마약, 섹스, 부패한 언론, 포르노 산업 등 느와르의 클리셰가 덕지덕지 뭉쳐서 화면안에 펼쳐져요. 그 한물간 소재들이, 정말이지 더러운 모습으로 제작된 인형들을 이용해 연출되자 그럴듯한 분위기를 풍기게 되었습니다. 다른 잭슨 영화처럼 <피블스를 만나요>는 장난스럽고 불쾌한 영화입니다. 잭슨 특유의 과잉한 유머가 구역질나는 조잡한 특수효과와 더불어 러닝타임을 채우고 있지요.

<피블스를 만나요>에는 그럴듯한 비판의 목소리가 보이기도 합니다. 저널리즘의 가차없는 반인본주의적인 성격이라든가, 베트남에 관한 아주 불쾌한 농담, "Show must go on!" 이라는, 정말이지 폭력적인 논리같은 것은 <피블스를 만나요>를 단순히 잔인하고 저질스러운 인형극으로 취급하지 않게 하는 알리바이가 되어줍니다.

하지만 심각하게 생각할 것도 없죠. <피블스를 만나요>는 클리셰들의 브리콜라쥬를 통해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기자'나 '사장'의 모습들은 영화를 찍던 1990년 당시의 모습이 아니라, 헐리우드 영화에서 형성된 '기자'나 '악덕사장' 의 개념 따위를 모방한 거에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야유 또한 지루한 주제이구요. 하지만 그 지루한 주제를 시원할 정도로 과장한 블랙유머와 인형극이라는 형식으로 표현해내자 어마어마하게 신선해집니다.

그게 바로 피터잭슨이라는 감독의 장기인거죠. 그 사람은, 신선한 기성품을 만들어냅니다. 그는 비록 개척자가 아니지만, 그의 실험은 늘 창조적인 장난기로 가득합니다. 그는 지루하고 낡은 영화는 찍지 않았어요. 그가 기회 있을 때마다 풍자해 마지않는 이 영화산업 속에서, 그것은 아주 큰 재능입니다.



덧. DVD 품질 자체는 좋지 않습니다. 필름 복원을 어떻게 했는지 화질도 그리 좋지 않고, 드문드문 연결이 매끄럽지 않은 부분도 많아요. 대부분의 노래 가사는 번역해주지 않았구요. 놔 참-_-

by 이녘 | 2006/05/17 19:21 | For horror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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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5/17 22:54
이녘님 말씀대로 그는 개척자가 아닙니다.
기존의 것들을 이리저리 가지고 노는 장난꾸러기인게죠.
그 악랄한 장난질은 그래도 물을 건너면서 조금 줄어든 듯 합니다. 확실히.

Commented by 이녘 at 2006/05/18 00:38
arborday님// 자유의 땅이 그의 상상력을 길들인 걸까요. 지금의 피터잭슨도 마음에 들지만, 그래도 짓궂은 그의 영화를 다시 한번 보고 싶네요.
Commented by 아레나스 at 2006/09/28 18:16
미국판도 화질 떡인 걸로 악명 높았습니다. 아마 그 미국판을 리핑한 버전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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