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5월 20일
시계태엽 오렌지

저는 다섯편의 큐브릭 영화를 보았습니다. 연대순으로 늘어놓자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계태엽오렌지> <샤이닝> <풀 메탈 자켓> <아이즈 와이드 셧>이 되겠네요. <풀 메탈 자켓>을 제외하면 모두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입니다. 또 다들, 큐브릭의 차가운 기이함으로 가득한 영화이지요. 바꿔 말하자면 저것들은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들이 아니라, 그냥 큐브릭의 영화입니다. 큐브릭의 스타일은, 어느샌가 원작과 동떨어진 세계를 만들어버렸거든요.
앤서니 버지스의 <시계태엽 오렌지>는 대체로 아이러니 기법을 쓰고 있는 교훈극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알렉스는 패거리들과 함께 강간, 폭행, 강도 등을 일삼는 불량청소년입니다. 알렉스는 살인을 저지르고 17년형을 언도받고 복역하던 중, 단 2주만에 사람을 교화시켜 사회로 내보내준다는 '루도비코 프로그램'에 자원해서, 치료받게 되지요.
버지스의 이야기는 윤리적인 주제에 충실합니다. 그는 두개의 폭력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어요. 우선 알렉스와 같은 분명한 '악마'들이 일으키는 끔찍한 악행들. 또 그것을 통제하는 권력의 관료제적인 폭력입니다.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두번째 폭력은, 오히려 알렉스의 악행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할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로 다가오게 됩니다. 알렉스의 악행이, 어쨋거나 인간적인 폭력이었다면 두번째 것은 아예 인간을 지워버리는 폭력이기 때문이지요.
"현대 사회의 두 희생자"라는 대사는 버지스가 어떤 주제를 염두에 두고 있었나를 확실히 드러내줍니다. 두 폭력 모두, 이 '땅의 질서'가 사라져버린 현대 사회의 사생아 같은 존재라는 것인데, 이런 인식은 어느 순간엔가 우리를 거대한 혼돈 속으로 집어던집니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악을 행하고, 그 악에 대한 규제 또한 악이라면 대체 이 세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 걸까요? 여기서 버지스는 성 아우구스투스 적인 입장으로 돌아가버립니다. 악 대신 선을 택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옹호해야한다는 것이죠. 그는 그 믿음을 소설속에서 구현시키는데, 루드비코 프로그램에서 치유된 알렉스는 어느 순간엔가, 자신의 철없음을 깨닫고 건실한 사회의 시민이 될 것을 다짐하게 됩니다. 그 악마가 말이에요.
그렇다면 큐브릭은 어떨까요?
큐브릭이 묘사하는 세계는 앤서니 버지스의 소설과 미묘하게 다릅니다. 이야기 자체를 가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에서 말하지 않은 부분을 과장하거나 또는 생략하는 방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시계태엽 오렌지>를 바꿔가지요.
우선, 영화속의 알렉스는 더 악마에 가깝습니다. 의도적으로 성기를 강조한 가면과 의상은, 원작에서 묘사된 알렉스의 모습과 많이 다르지요. 어딘지 모르게 현실과 괴리감이 느껴지는 알렉스의 부모님이나, 성기-_-예술로 가득한 '고양이 할머니'의 집, 과장스러운 교도관의 행동, 루도비코 프로그램의 괴기스러운 구속구들은 명백한 큐브릭 소품들입니다.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는 루드비코 프로그램에서 치유된 알렉스가, 사람들이 박수를 치는 가운데 늘씬한 미녀와 섹스를 벌이는 환상을 보여주며 끝을 맺습니다. 어떤 도덕적인 결말도, 전망도 없지요. 알렉스는, 풀려났고 다시 악마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순간, 명백히 기이한 어떤 순간에 도착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바로 큐브릭의 세계이지요.
여기서 <시계태엽 오렌지>는 원작이 가지고 있었던 도덕적인 비전에서 해방되어버립니다. 그 결과 남아버린 것은 두가지 폭력이 모두 공존하고 있는 이 끔찍하게 무서운 세상 자체이지요. 악마는 풀려났고, 악마를 용서해준 것은 권력입니다. 큐브릭은, 원작이 한발짝 물러섰던 바로 그 지점을 주시합니다. 성 아우구스투스로 회귀하거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대신 그는 그저 보여주는 것이지요. 이 기괴한 세계를.
이 기괴한 세계는, 버지스의 비전과는 다른 울림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단순히 영화와 소설이라는 매체의 차이가 불러일으킨 결과는 아니에요. 큐브릭은 원작이 가지고 있는, 하지만 눈치채지 못한, 혹은 일부러 외면한 가능성을 발견해내고, 그것을 과장시킵니다. <샤이닝>에서도 마찬가지였지요. <롤리타>는 영화를 보지 못했고, <아이즈 와이드 셧>은 소설을 보지 못했지만, 두 작품 모두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아마, 큐브릭 스타일이라 부를 만한 특징일 거에요.
# by | 2006/05/20 21:26 | For movie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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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브릭의 영화들의 호평은 상당부분 좋은 원작들의 공헌이라 생각합니다만..
저는 그의 작품중 <시계태엽 오렌지>와 <스트레인지 러브 박사> 를 가장 좋아하는데 아마도 그의 다른 작품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시니컬한 유머를 제대로 구사한다는 점 때문인거 같습니다.
어쩌면 냉철하고 지적인 사유보다는 유머쪽에 더욱 재능이 있었던 감독이 아닐까 싶어요..
큐브릭의 영화는 아직까지 실망한 적이 없어서 너무 좋습니다. 어마어마하게 힘든 영화는 있지만요.(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