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 여우계단

 



한국형 호러란 어떤 것일까요? 여고괴담은 그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을까요? 그 대답을 하기에는 아직 일러 보입니다. 적어도 진저스냅 시리즈 처럼 어떤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기획물이 될 수는 있었지만요.

여고괴담을 추진시키는 아이디어는 굉장히 생산적입니다. 학교라는 공간은, 우리가 경험했다시피 억눌린 긴장과 폭력으로 가득한 곳이니까요. 거기에 아이들의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정치적입니다. 우정과 경쟁이라는 요소가 이리저리 교차하는 가운데 다양한 파워게임을 만들어가요. 그리고 그 게임은 어른들보다 훨씬 뾰족하고 격렬할 때가 있습니다. 그건 냉정하고 효율적인 어른들의 게임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성격이지요.

거기에 닫힌 공간은 인간의 공포와 불안을 자극합니다. 왜 군대나 병원,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괴담이 그렇게나 많겠어요? 답답할 정도로 꽉 짜여진 질서와 폐쇄적 공간은 사람들을 불안으로 내몹니다. 거기에 위 경험들은 굉장히 보편적이에요. 우리는 학교라는 경험을 피해갈 수가 없잖아요? 이야기만 그럴듯하게 풀어준다면, 사람들은 거기서 늘 자신의 일면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것은 아이디어가 가지는 굉장히 큰 이점이지요.

세번째 이야기에는 썩 괜찮은 아이디어가 많습니다. 예전에 유행했던 학교괴담류의 이야기를 적당히 변주하는 와중에, 동성애 코드를 살짝 집어넣어주고, 억압 당한 아이의 복수심을 포착하며, 외모에 대한 공포증을 묘사합니다. 혜주의 캐릭터는 작정하고 만든 호러주인공인데, 거식증과 관련한 부분은 나쁘지 않았어요. 진부하지만 그래도 힘이 있었죠.

하지만 혜주의 인형취미 같은 것은 도무지 왜 삽입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혜주가 조형미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좀 더 나아가 피그말리온 컴플렉스를 집어넣어줬으면 꽤 재밌었을텐데요. 단지 음침한 아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서 인형을 끌어왔다면, 감독의 고민이 부족했다는 거죠. 하다못해 아주 진부한 롤플레잉 장면 하나 변변하게 나오지 않았잖아요? 즉, 쓸모없는 소품이었다는 것입니다.

대체로 이 영화는 혜주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구연동화 속의 아기돼지 처럼 발성하는 뚱뚱한 혜주나, 차분하게 또박또박 대사를 치는 검은 머리의 혜주나 저는 상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대단한 연기는 아니고, 피부로 느껴질만큼 노골적이지만 다행히 그게 어울려요. 게다가 여고괴담은 대단한 연기가 필요한 시리즈는 아니니까요. 이 배우의 <소름>에서의 연기도 나쁘지 않았었습니다. 갸냘프게 불안한 얼굴은, 꽤 매력적인 호러스타일인 것 같아요.

이 영화의 문제는, 아이들의 뻔하디 뻔한 갈등을 묘사할 때보다 무서운 장면을 묘사할 때 힘이 떨어진다는 거에요. 티비대신 창문으로 넘어오는 사다코는 거의 웃기기 까지 했어요. 역시 공포영화라면 사람을 조마조마하게 만들면서 차라리 리모콘으로 빨리감기를 해버리고 싶어지는 그 아슬아슬함이 있어야 하는데. 이 영화에는 그런 기교가 많이 부족합니다. '앞을 가로막는' 클리셰도 어찌나 뻔한지. 학교안을 도망치는 장면은 너무 싱숭생숭합니다. 그냥 대충 댕겅댕겅 편집한 티가 너무 나요.


앞으로 얼마나 더 만들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여고괴담 시리즈는 이미 상당한 수확을 거두웠습니다. 신인감독과 신인배우의 등용문이 되었고, 꾸준히 생산되는 거의 유일한 호러 타이틀이지요.

개인적으로 다음 여고괴담은 좀비물이 되었으면 합니다. 교복을 입은채 교정을 배회하는 좀비의 모습은 정말이지 멋질거에요. 그렇지 않나요?^-^

by 이녘 | 2006/05/26 22:02 | For horror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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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메텔 at 2006/05/29 23:26
학교라는 공간이 억눌린 긴장과 폭력으로 가득한 곳이니만큼 여고괴담 시리즈는 계속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가 가장 맘에 드네요.
Commented by 이녘 at 2006/05/29 23:41
예. 저도 두번째 이야기가 제일 마음에 들어요. 정말 예쁘고 세련된 영화였죠. 지금 첫번째 이야기를 보면 조금 낡았다 싶은데, 두번째 이야기는 여전히 재미있고 예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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