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카우프만, 외계의 침입자

 
저는 돈 시겔의 <인베이션 오브 바디스내쳐>를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필립 카우프만의 이 작품이 얼마나 원작에 빚지고 있는지 알 수 없어요. 바디스내쳐의 원작 소설에 이르면 더욱 그렇겠지요. 하지만 이 <외계의 침입자>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재밌는 작품이었습니다. 정말 가슴 서릿한 공포와 절망이 스며드는 영화이지요.

줄거리를 말해 볼까요? 어느날, 하늘로부터 어떤 식물의 씨앗이 가득 살포됩니다. 그 꽃들은 샌프란시스코 여기저기에 뿌리를 내리고, 곧 꽃으로 발아하지요. 그리고 그 꽃은 인간을 숙주로 그 모습을 복제하고, 그 인간을 대체하기 시작합니다. 복제당한 인간은 말라 죽어버리구요. 보건위생국 직원은 매튜는, 어느날 자신의 남편이 바뀌어버린 것 같다는 엘리자베스의 호소를 듣게 되는데.....

바디스내쳐 시리즈에는 흥미로운 공포증 몇몇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우선, 어느날 내 자신이 나 아닌 것으로 대체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입니다. 또, 다소 억지를 부리자면 이는 냉전체제하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매카시즘적인 공포증과 연계되어 있었습니다. 극도로 통제된 외계인들의 모습에서, 딱딱한 그들의 얼굴에서, 헐리우드가 쉽게 묘사하는 소련의 모습을 떠올리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결국, 바디스내쳐 시리즈는 가차없이 진행되는 전체주의적 세계 속에서 불안을 느끼는 현대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불안은 극히 과장된 것이긴 하지만 결코 낯선 감정은 아니에요. 이 괴물 같은 세상 속에서, 언제나 우리는 세상 혹은 우리 둘 중 하나는 미쳤을 거란 의심속에 빠져들게 됩니다. 사실, 둘 다 얼마쯤은 미쳐있지요.

세상 모두가 외계인이 되어 버렸고, 마지막 남은 인간이 카오스상태로 빠지며 끝나는 이 영화의 결말은, 조금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절망적입니다. 종말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어느날 갑자기 찾아와버렸고, 우리는 끔찍한 카오스 속에서 다가오는 결말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는거죠.

외계의 침입자는 아벨 페라라에 의해 바디 스내처 (국내명 바디 에일리언-_-) 로 다시 리메이크 되었습니다. 기본적인 바디스내처 아이디어만 공유하고 있는 이 영화는, 그나마 미래에 대한 소극적인 희망을 남기며 끝났지요. 저는 그 결말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요-_-

이 대책없는 혼돈으로 종결되는 끔찍한 절망은, 비극이 주는 카타르시스와 얼마간 비슷했습니다. 나도 어찌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혼돈, 공포, 절망 말이에요.

그것이 빠져버린 바디스내쳐 시리즈는, 상상력이 빈곤한 표현이지만, 정말 김 빠진 콜라 같습니다. 이번에 다시 나올 바디스내쳐는 어떨 지 모르겠어요. 니콜 키드만 때문이라도, 저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by 이녘 | 2006/05/30 15:42 | For horror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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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191970 at 2006/05/30 15:57
나 자신 외에도, 내가 사랑하는 내 주위사람이 모르는 새에 바뀌어버린다는 공포는 매우 익숙한데도, 인상적이죠. 소설도 재밌어요.
Commented by hermes at 2006/05/30 16:12
저는 리메이크된 바디 '에일리언'만 봤군요. 가브리엘 앤워가 예쁘다는 감상만 남긴 채...
'나는 전설이다'와 같은 좀비 이야기도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비슷한 것 같아요.
Commented by 이녘 at 2006/05/30 16:18
1919170님// 예. 맞아요. 익숙한데, 인상적인 공포. 그게 이 영화의 매력 같습니다. 소설도 꼭 한번 봐야겠어요^^

hermes님// 가브리엘 앤워는 정말 예뻤죠+_+ 그러고보니 '나는 전설이다'의 마지막도 이 영화의 엔딩과 비슷한데가 있네요. 음음.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5/30 16:23
돈시겔의 작품 아주 좋죠.
저 개인적으로는 돈시겔>필립카우프만>아벨페라라 순으로 좋아한답니다. ^^
어찌 되었건 신체강탈자의 내가 내가 아닌 것이 될 수도 있다 혹은 아무도 믿을 수 없다라는 컨셉은 너무 멋진 것 같아요. 어지간히만 만들면 이런 컨셉의 변주는 늘 재미있더라구요.
Commented by 이녘 at 2006/05/31 01:52
Arborday님. 점점 선호도가 줄어드는거군요. 이번 리메이크는 어떠려나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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