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후, 대니보일

 
28일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선 그것은 정확한 4주의 시간입니다. 또한 이상적인 여성의 생리주기라고도 하네요. 인간의 몸에 지워진 가장 기초적인 굴레 중 하나이니, 이 숫자는 퍽 재밌는 상징성을 지닐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까지 적극적으로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며 이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요.

<28일 후>에는 로메로의 영화들과는 구별되는 흥미로운 공포증 하나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바로 섬나라라고 하는 영국의 특수한 지형적 국면이 일으킨 어떤 고립감이지요. 우리는 로메로를 보며, 모두 조금씩 조금씩 고립된채 파멸되어가는 세계를 느꼈습니다. <28일 후>에서, 좀비의 창궐은 훨씬 국지적인 재난입니다. 덕분에 이 영화는 거의 재난영화처럼 보여요. 어딘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바깥세상이 있지만 사람들은 고립되어 있고 미쳐가고 있습니다. 이 고립은, 구원을 내밀 수 있는 바깥세상이 일부러 그들을 무시한 결과이기도 하거든요.

영화는 간단하면서도 힘이 있습니다. 아마, 뛰는 좀비가 나온 것은 아마 이 영화로부터 시작된 것일 거에요. 로메로의 느릿느릿한 좀비들이 뻣뻣한 비극을 연기하는 희극배우처럼 보였다면, 대니보일의 좀비들은 한결 더 어엿한 괴물 같습니다. 빠르고, 강하고, 날렵해요! 괜찮은 호러 괴물입니다. 후에 나온 <새벽의 저주>의 좀비들도 이에 영향을 받았는지 다들 뛰고 있죠. 이건 나름대로, 좀비의 진화인거에요.

아, 그리고 동정심을 유발시키는 좀비의 비쥬얼은, 정말이지 최고였습니다. 한참을 웃었어요.

by 이녘 | 2006/06/02 02:06 | For horror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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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戮屍 at 2006/06/02 10:08
새벽의 저주는 하도 쉣스럽게 리메이크해놔서 로메로가 싫어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도 짜증나서 데드오브랜드를 만들었다는 설도 있고.. 28일후에서는 분노바이러스라는 개념이 맘에 들었습니다. 인트로에 우리나라 전경들도 출연한다는 것도...낄낄.
Commented by 이녘 at 2006/06/02 10:54
戮屍님. 새벽의 저주는 퍽 재밌게 보았습니다. 로메로의 영화를 리메이크 했다고 로메로처럼 화를 내서야 안되겠죠. 그리고 인트로의 그 전경은... 제 3세계의 폭력적인 공권력 정도로 보였으려나요. 영국에선. ㅋㅋㅋ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6/02 11:53
요즘의 영국 좀비영화의 변주는 무척 마음에 듭니다.
저 역시 새벽의 저주도 28일후도 정말 좋아합니다.
물론 shaun of the dead도 말이죠. ^^
Commented by 이녘 at 2006/06/02 14:51
Arborday님. "새벽의 황당한 저주" ㅋㅋㅋ. 그 영화도 퍽 재밌게 봤어요. 제 리스트가 좀만 더 많았어도 훨씬 재밌었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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