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닐 조단

 
제 추억속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지금보다 훨씬 좋은 영화였습니다. 그것을 먼저 밝혀두고 싶네요. 시간은, 변변치 않았던 영화의 녹을 벗겨주기도 하지만, 마찬가지로 입히기도 하는 것 같아요. 지금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많이 거슬립니다.

우선, 이 불만을 안할 수가 없겠죠. 이 화려한 미스캐스팅이라니. 장신의 레스타는 할리우드 최단신이라는 톰 크루즈가 맡았고, 두 나이의 격차가 가장 큰 매력이었던 아르망은 느끼한 안토니오 반데라스 아저씨가 맡았습니다. 루이 역의 브래드 피트도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둘의 캐스팅이 너무 압도적이어서 말이 안나올 지경이에요. 거의 농담같은 캐스팅이지요.

뭐, 원작을 떼어놓고 생각하자면 나름대로 어울리는 캐스팅이기도 합니다. 톰 크루즈의 예쁘장한 얼굴은, 레스타의 파리지엥 이미지를 그럭저럭 잘 표현해주었지요. 허영심 많고, 예민하며, 다소 무능한,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레스타요. 연기의 표정은 결코 다양한 편이 아니었지만, 레스타의 캐릭터 자체가 그리 다양한 표정이 필요하지는 않았습니다. 원래 거만하게 루이를 끌고 다니다가, 이것저것 자기 마음대로 어리석은 짓을 저질러 원성을 사고, 하지만 가끔씩 깜짝 놀랄만큼 매력적인 웃음을 지어 무마하는게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의 레스타잖아요.

아르망은, 역시 '뱀파이어 극장'에서의 카리스마를 위해 디자인된 것 같은데... 뭐 영화에서는 나쁘지 않았다고 해두죠. 저는 역시 소년이 연기했으면 좋았다고 생각하지만요. 그래야 아르망의 그 모순된 지혜가, 매력이, 섹시함이 돋보이지 않았을까요?

키어스틴 던스트의 캐스팅은 아주 마음에 듭니다. 그녀의 클라우디아는 정말 좋았어요. 왜 클라우디아는 그렇게 잘 써먹어놓고 아르망은 그리 쉽게 포기했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자본이 많으니, 제한된 등장인물 안에서 한명이라도 더 스타를 써먹어 보려는 생각이었을까요.

전체적으로 영화는 앤 라이스의 원작을 충실히 따라가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카피한다고 해서, 그 안에 흐르는 정서를 카피할 수는 없는거죠. 앤라이스의 원작에는 고독과 절망에 대한 어마어마한 도취가 느껴졌습니다. 끔찍할 정도로 아름답게 묘사된 뱀파이어의 세계, 너무 예민하고 섬세한 남자가 그 세계의 고통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이야기는 앤 라이스 특유의 과장되고 유려한 문체 안에서 거의 생명을 얻기 까지 했었습니다. 그 시각은 기본적으로 탐미적인 것이었죠.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의 절망은 탐미적인 대상이었습니다. 거의 낭만주의적인거죠.

영화는 어떨까요? 닐 조단이 애쓴 티는 많이 납니다. 하지만 레스타의 오만이, 루이의 섬세함이, 클라우디아의 성숙함이, 아르망의 모순이 잘 느껴지지 않아요. 물론, 절망도. 물론 아름다움도. 또는 책 안에 가득했던 동성애적인 긴장도요.


하지만 책과 원작의 비교는 좀 불공평하기도 합니다.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그녀의 재능이 거의 모두 들어간 작품이었습니다. 그녀의 다른 책들을 읽어보아도,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그녀다운 글은 찾기 힘들어요. 끔찍할 정도로 낭만적이고, 어마어마하게 도취적인.

이런 작품을 온전히 영화로 옮긴다는 것은 불가능할 꺼에요. 문자언어와 영상언어의 차이가, 우선 그러하겠고. 이야기는 옮길 수 있어도 결코 아우라는 카피되지 않는 법이니까요. 원작만큼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면, 원작을 훼손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앤 라이스와 그녀의 팬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겠지만요.

by 이녘 | 2006/06/03 11:56 | For horror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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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스카이워커 at 2006/06/03 12:40
어젯밤, 케이블에서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해주길래 간만에 다시 보니 왠지 새롭더군요. 원작 필독이로군요...!
Commented by 이녘 at 2006/06/03 13:53
스카이워커님. 원작소설이 정말 재밌답니다. 낭만적이고, 아름다우며, 무엇보다도 에로틱하죠. ㅋㅋ
Commented by 카방글 at 2006/06/03 14:31
앤 쌀의 글은 에로틱한게 묘미지.
Commented by 191970 at 2006/06/03 22:06
저는 원작을 너무 좋아해서인지 영화를 실망않고 감상하기 힘들었어요. 사실 영화는 너무 별로-_- 특히 아르망 역은 최악이었죠. 그리고 전 클라우디아 조차도 워낙 소설의 이미지가 강해서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음, 원작에선 6살 쯤 아닌가요? 하여간 굉장히 실망했던 기억의 영화에요. 원작소설을 좋아할 수록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죠.
Commented by 이녘 at 2006/06/04 09:10
카방클// 사실, 요약하자면 루이 선생님의 긴 애정편력...

191970님.. 원작을 좋아할수록 실망할수 밖에 없죠. 정말. 따지고 들면 정말 다 농담같은 캐스팅같아요. 루이 역의 브래드피트도 썩 어울리는 편은 아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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