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6월 05일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는 평가가 참 극명하게 갈리는 영화였습니다. 그것은 관객들이 <여고괴담>에 걸었던 기대가 모두 배신당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영화는 전편인 <여고괴담>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은, 그럼으로써 지나치게 의식한 영화였지요. 전편에 흐르는 주된 정서는 바로 분노였습니다. 분노는 강한 감정이지요. 그 정서 속에서, 우리는 쫒기듯 영화를 감상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두번째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것은 지독한 낭만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한결 여유롭고 예쁘지요.
이것은 의도적인 결과였을 것입니다. 분노의 감정만으로, <여고괴담>이라는 기획을 끌고 나갈 수는 없는거죠. 거기에 여자고등학교라는 배경은, 단순히 분노라는 감정만을 표현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많은 아이디어의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두번째 이야기가 찾아낸 것 처럼요.
<여고괴담>이라는 브랜드가 갖게되는 숙명처럼, 두번째이야기는 사회현상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이라는 해석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주목한 것은 효신의 소외였지요. 그래요. 당시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학교문제인 바로 왕따 말이에요. 하지만 영화가 소외를 다루는 방식은, 결코 급진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보수적일 정도로 과거로 회귀하고 있어요. 효신의 모습은 거의 18세기 낭만주의 시인과 흡사합니다. 낭만주의 시인에게 유색인의 피부와 교복을 입혀놓으면 효신이라는 아이가 나오는거죠. 예쁘고, 감수성이 예민하며, 자기세계로의 지나친 함몰로 인해 타인과의 단절을 경험하는 아가씨 말이에요. 이런 유형의 사람이 자신의 벗에게 느끼는 우정 이상의 감정도 결코 낯선 것이 아닙니다. 낭만주의자에게 벗이란 거의 영혼의 동반자이거든요.
이런 소외에 대한 과격하기까지한 낭만화는 이 영화의 테마가 결코 비판이 아니었음을, 혹은 비판이 될 수 없음을 뜻합니다. 과거를 돌아보는 혁명가는 가당치도 않은거죠. 영화는 훨씬 복고적입니다. 낭만적인 사랑을 나누고 있는 두 벗, 조숙한 제자와 여리고 상처받은 남성이라는 관계. 이건 아주 상투적인 설정이에요.
재미있는 것은 이 설정이, 노골적인 퀴어 러브스토리와 합쳐졌다는 것입니다. 동성애 커플과 그 사이에 끼어든 스트레이트 남성 이야기가, 이 어마어마하게 낭만주의적인 주인공들과 합쳐지고, 그들을 감싸는 공간이 20세기의 대한민국 고등학교로 주어지게 되자, 이게 재밌어집니다. 학교라는 곳은 정말 그럴 수도 있는 곳이거든요. 다수는 소수를 핍박하고 있으며, 단지 타인보다 조금 더 예민한 감수성만으로도 충분히 소수가 될 수 있지요. 선생님의 특별한 애정이 다수의 질투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고, 진짜 동성애적인 감수성이 싹틀수도 있습니다. 신체검사와 같은 에피소드는, 생각보다 많은 서브텍스트를 끌어내구요. 거기에는 페미니즘 적인 해석의 가능성이 썩 풍부하게 도사리고 있습니다. 육체의 성장에 예민할 수 밖에 없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의미있는 시선이지요.
이 영화는 노골적으로 낭만적인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정말 예쁜 그림이 나오는 영화에요. 학교 옥상에서 효신과 시은이 보내는 한 때 라든가, 수영장 청소를 하는 그녀들은, 쉽게 잊지 못할 그림을 만들어냅니다. 정말 예뻐요. 물론 배우들을 포함해서. <여고괴담> 시리즈를 통틀어 두번째 이야기는 가장 좋은 캐스팅을 보여주었습니다. 중성적인 매력이 풀풀 풍겨나오는 시은의 모습도 정말 좋고, 공효진의 페르조나도 재밌어요. 연안 역의 배우도, 짧은 등장마다 퍽 재미있는 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캐릭터가 비치는 불안은 꽤 설득력 있었거든요. 김민선은 정말이지 적당한 주인공이었지요. 마지막, 효신역의 박예진은, 잘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박예진의 얼굴은 너무 어른스러워서 효신이라는 캐릭터가 가지는 매력을 다 전하지 못하는 듯 했습니다. 아직 어린 육체에, 너무 예민한 정신을 가진, 어른이 되지는 못한 아가씨 말이에요.
저는 네편의 여고괴담 이야기 중 이 두번째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듭니다. 흥행에 있어서는 가장 큰 실패를 겪은 영화이지만, 적어도 이 영화가 뒤에 올 후배들에게 한가지 방법을 제시해주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바로 첫번째 <여고괴담>을 의식하지 않고도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거지요. 두번째 이야기는 학교라는 공간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아이디어로 가득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자기 몫을 다 한 거에요.
마지막으로, 사족처럼 덧붙이고 싶은데, 이 영화에서 효신과 시은의 사랑이 그리도 예뻐보이는 것은, 우선 이들이 십대이고, 또 동성이기 때문입니다. 저 정도의 관심, 저 정도의 집착을 보여주는 성인 이성을 생각해보세요. 그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호러적인 캐릭터일 것입니다.
이것은 의도적인 결과였을 것입니다. 분노의 감정만으로, <여고괴담>이라는 기획을 끌고 나갈 수는 없는거죠. 거기에 여자고등학교라는 배경은, 단순히 분노라는 감정만을 표현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많은 아이디어의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두번째 이야기가 찾아낸 것 처럼요.
<여고괴담>이라는 브랜드가 갖게되는 숙명처럼, 두번째이야기는 사회현상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이라는 해석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주목한 것은 효신의 소외였지요. 그래요. 당시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학교문제인 바로 왕따 말이에요. 하지만 영화가 소외를 다루는 방식은, 결코 급진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보수적일 정도로 과거로 회귀하고 있어요. 효신의 모습은 거의 18세기 낭만주의 시인과 흡사합니다. 낭만주의 시인에게 유색인의 피부와 교복을 입혀놓으면 효신이라는 아이가 나오는거죠. 예쁘고, 감수성이 예민하며, 자기세계로의 지나친 함몰로 인해 타인과의 단절을 경험하는 아가씨 말이에요. 이런 유형의 사람이 자신의 벗에게 느끼는 우정 이상의 감정도 결코 낯선 것이 아닙니다. 낭만주의자에게 벗이란 거의 영혼의 동반자이거든요.
이런 소외에 대한 과격하기까지한 낭만화는 이 영화의 테마가 결코 비판이 아니었음을, 혹은 비판이 될 수 없음을 뜻합니다. 과거를 돌아보는 혁명가는 가당치도 않은거죠. 영화는 훨씬 복고적입니다. 낭만적인 사랑을 나누고 있는 두 벗, 조숙한 제자와 여리고 상처받은 남성이라는 관계. 이건 아주 상투적인 설정이에요.
재미있는 것은 이 설정이, 노골적인 퀴어 러브스토리와 합쳐졌다는 것입니다. 동성애 커플과 그 사이에 끼어든 스트레이트 남성 이야기가, 이 어마어마하게 낭만주의적인 주인공들과 합쳐지고, 그들을 감싸는 공간이 20세기의 대한민국 고등학교로 주어지게 되자, 이게 재밌어집니다. 학교라는 곳은 정말 그럴 수도 있는 곳이거든요. 다수는 소수를 핍박하고 있으며, 단지 타인보다 조금 더 예민한 감수성만으로도 충분히 소수가 될 수 있지요. 선생님의 특별한 애정이 다수의 질투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고, 진짜 동성애적인 감수성이 싹틀수도 있습니다. 신체검사와 같은 에피소드는, 생각보다 많은 서브텍스트를 끌어내구요. 거기에는 페미니즘 적인 해석의 가능성이 썩 풍부하게 도사리고 있습니다. 육체의 성장에 예민할 수 밖에 없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의미있는 시선이지요.
이 영화는 노골적으로 낭만적인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정말 예쁜 그림이 나오는 영화에요. 학교 옥상에서 효신과 시은이 보내는 한 때 라든가, 수영장 청소를 하는 그녀들은, 쉽게 잊지 못할 그림을 만들어냅니다. 정말 예뻐요. 물론 배우들을 포함해서. <여고괴담> 시리즈를 통틀어 두번째 이야기는 가장 좋은 캐스팅을 보여주었습니다. 중성적인 매력이 풀풀 풍겨나오는 시은의 모습도 정말 좋고, 공효진의 페르조나도 재밌어요. 연안 역의 배우도, 짧은 등장마다 퍽 재미있는 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캐릭터가 비치는 불안은 꽤 설득력 있었거든요. 김민선은 정말이지 적당한 주인공이었지요. 마지막, 효신역의 박예진은, 잘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박예진의 얼굴은 너무 어른스러워서 효신이라는 캐릭터가 가지는 매력을 다 전하지 못하는 듯 했습니다. 아직 어린 육체에, 너무 예민한 정신을 가진, 어른이 되지는 못한 아가씨 말이에요.
저는 네편의 여고괴담 이야기 중 이 두번째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듭니다. 흥행에 있어서는 가장 큰 실패를 겪은 영화이지만, 적어도 이 영화가 뒤에 올 후배들에게 한가지 방법을 제시해주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바로 첫번째 <여고괴담>을 의식하지 않고도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거지요. 두번째 이야기는 학교라는 공간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아이디어로 가득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자기 몫을 다 한 거에요.
마지막으로, 사족처럼 덧붙이고 싶은데, 이 영화에서 효신과 시은의 사랑이 그리도 예뻐보이는 것은, 우선 이들이 십대이고, 또 동성이기 때문입니다. 저 정도의 관심, 저 정도의 집착을 보여주는 성인 이성을 생각해보세요. 그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호러적인 캐릭터일 것입니다.
# by | 2006/06/05 17:33 | For horror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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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를 굉장히 좋아해서 밸리에 뜬 제목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여고괴담 1편이 괴담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두 번째는 여고에 초점을 맞춘영화라 생각해요. 지금도 생각날때면 비디오를 꺼내 보곤 하는데(무척 좋아해서 비디오도 샀었거든요^^;) 그때마다 들곤 하는 생각이 이 영화가 요즘 나왔다면 흥행면에서도 성공하지 않았을까 하는 겁니다. 풋풋하지만 세련된 영화라고 생각하거든요. 당시에 다수의 사람들에게 어필하기엔 조금 이른 감이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거든요; 영화 OST도 참 좋아서 요즘도 자주 들어요.(앗, 글이 많이 길어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