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6월 18일
26년, 강풀.
광주에 관하여 많은 작품이 만들어졌습니다. 임철우를 필두로한 소설들, 모래시계와 같은 티비 드라마, 꽃잎에서 박하사탕으로 이어지는 영화들. 광주가 잊혀지고 있다는 위기의식과는 상관없이 광주에 관한 이야기는 꾸준히 만들어져왔습니다. 마치 홀로코스트 영화가 계속 만들어지는 것처럼, 광주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질 것입니다. 예전에 말했듯, 광주는 하나의 신화가 되었거든요.
강풀의 26년은 두가지 아이디어로부터 시작합니다. 우선, 문민정부 출범 당시 과거로부터 사면당한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있어요. 그리고, 분명 그를 린치하려는 시도가 있을 거라는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이 두 생각은 아주 흥미롭게 결합하고 있습니다. 분명, 그런 생각을 해보았을거에요. 그 해 죽어간 사람이 수백이고, 그로인해 망가진 인생을 살아간 사람은 수천에 이를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분명 자신의 인생을 보상받으려 하지 않겠어요? 거기에 지금은 유세중의 후보가 린치를 당하는 세상이란 말예요.
강풀은 더 늦기전에 광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만화는, 딱 26년이 지난 지금에야 탄생할 수 있었을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리고 그 안에 흐르고 있는 분노의 정서도 26년의 세월이 아니고서는 성숙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응당한 복수가 26년이나 미뤄져왔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미결된 악행이, 어찌 전두환 하나 뿐이겠어요.
제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26년을 이끌어가는 복수의 주체가 바로 광주의 '자식들'이라는 점입니다. 홀로코스트에 대해 그토록 외쳐대었던 것이 홀로코스트 이후의 사람들이듯, 광주에 대해 더 아픈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정작 광주를 겪었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일본을 그토록 미워하는 것이 식민지 조선을 살아갔던 사람들이 아니라 해방 이후 반일교육을 받았던 우리들인것처럼, 광주의 죄의식에 직접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도, 오히려 우리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절대 광주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데, 광주 세대의 사람들은 그 시절을 '청산'할 수 있지만 우리의 경우 그럴 방법이 애초에 없기 때문입니다. 광주는 원죄와 같습니다. 우리는 광주를 겪지 못했지만, 광주를 잊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식민지 시절을 겪지 못했지만, 결코 식민지 조선을 잊을 수 없는 것 처럼요.
<26년>은 이러한 사정에서 출발합니다. 26년이 다루는 이야기는, 시간이 더 지나가기 전에,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시민의 양심을 일깨우고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매순간 다시 태어나고 앞으로도 다시 만들어져 우리에게 다가올 광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홀로코스트가 매 해 다시 태어나듯, 광주도 매 해 다시 태어나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저는 언젠가 이런식의 신화화가 오히려 우파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글을 썼었지요.
물론 저는 이 만화에 대해 얼마든지 혹평을 할 수 있습니다. <26년>이 보여주는 정치적 공정성에 대한 의무감은, 종종 굉장히 긴 연설이 되어 이야기 자체의 속도감을 엉망으로 만들어요. 거기에 <26년>의 캐릭터들은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죠. 하지만 웹툰이라는 형식, 그리고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이야기라는 점이 대체로 이러한 단점에 면죄부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서 정치적으로 담백한 날씬한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오히려 심심하겠죠.
그리고 이런식의 산뜻한 이분법, 선과 악의 노골적인 대립이 불러일으키는 위험도 분명 있지만, 예전에 이야기했으므로 건너 뛰기로 하겠습니다. 다만 이런 식의 이야기 속에서 일어나는 이른바 '민중'에 대한 어마어마한 이상화가 사실은 또 다른 환상이고 기만이라는 점만 말해두고 싶어요. '민중'은 없습니다. 그런건 언제나 좌파신화이거나 우파신화에요.
이쯤에서 대책없이 결론을 내려보자면, <26년>은 매우 의미있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전재산 29만원의 연금생활자 전두환 씨는, 우리 사회의 치부 자체거든요. 수백명을 학살한 살인자가 멀쩡히 호화생활을 즐기고, 독재자의 딸이 향수라는 이름으로 집권하는 것을 보면, 용케 이 나라가 굴러가는구나 싶어요.
강풀의 26년은 두가지 아이디어로부터 시작합니다. 우선, 문민정부 출범 당시 과거로부터 사면당한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있어요. 그리고, 분명 그를 린치하려는 시도가 있을 거라는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이 두 생각은 아주 흥미롭게 결합하고 있습니다. 분명, 그런 생각을 해보았을거에요. 그 해 죽어간 사람이 수백이고, 그로인해 망가진 인생을 살아간 사람은 수천에 이를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분명 자신의 인생을 보상받으려 하지 않겠어요? 거기에 지금은 유세중의 후보가 린치를 당하는 세상이란 말예요.
강풀은 더 늦기전에 광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만화는, 딱 26년이 지난 지금에야 탄생할 수 있었을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리고 그 안에 흐르고 있는 분노의 정서도 26년의 세월이 아니고서는 성숙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응당한 복수가 26년이나 미뤄져왔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미결된 악행이, 어찌 전두환 하나 뿐이겠어요.
제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26년을 이끌어가는 복수의 주체가 바로 광주의 '자식들'이라는 점입니다. 홀로코스트에 대해 그토록 외쳐대었던 것이 홀로코스트 이후의 사람들이듯, 광주에 대해 더 아픈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정작 광주를 겪었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일본을 그토록 미워하는 것이 식민지 조선을 살아갔던 사람들이 아니라 해방 이후 반일교육을 받았던 우리들인것처럼, 광주의 죄의식에 직접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도, 오히려 우리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절대 광주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데, 광주 세대의 사람들은 그 시절을 '청산'할 수 있지만 우리의 경우 그럴 방법이 애초에 없기 때문입니다. 광주는 원죄와 같습니다. 우리는 광주를 겪지 못했지만, 광주를 잊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식민지 시절을 겪지 못했지만, 결코 식민지 조선을 잊을 수 없는 것 처럼요.
<26년>은 이러한 사정에서 출발합니다. 26년이 다루는 이야기는, 시간이 더 지나가기 전에,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시민의 양심을 일깨우고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매순간 다시 태어나고 앞으로도 다시 만들어져 우리에게 다가올 광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홀로코스트가 매 해 다시 태어나듯, 광주도 매 해 다시 태어나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저는 언젠가 이런식의 신화화가 오히려 우파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글을 썼었지요.
물론 저는 이 만화에 대해 얼마든지 혹평을 할 수 있습니다. <26년>이 보여주는 정치적 공정성에 대한 의무감은, 종종 굉장히 긴 연설이 되어 이야기 자체의 속도감을 엉망으로 만들어요. 거기에 <26년>의 캐릭터들은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죠. 하지만 웹툰이라는 형식, 그리고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이야기라는 점이 대체로 이러한 단점에 면죄부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서 정치적으로 담백한 날씬한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오히려 심심하겠죠.
그리고 이런식의 산뜻한 이분법, 선과 악의 노골적인 대립이 불러일으키는 위험도 분명 있지만, 예전에 이야기했으므로 건너 뛰기로 하겠습니다. 다만 이런 식의 이야기 속에서 일어나는 이른바 '민중'에 대한 어마어마한 이상화가 사실은 또 다른 환상이고 기만이라는 점만 말해두고 싶어요. '민중'은 없습니다. 그런건 언제나 좌파신화이거나 우파신화에요.
이쯤에서 대책없이 결론을 내려보자면, <26년>은 매우 의미있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전재산 29만원의 연금생활자 전두환 씨는, 우리 사회의 치부 자체거든요. 수백명을 학살한 살인자가 멀쩡히 호화생활을 즐기고, 독재자의 딸이 향수라는 이름으로 집권하는 것을 보면, 용케 이 나라가 굴러가는구나 싶어요.
# by | 2006/06/18 18:55 | For comic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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