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벨벳, 데이빗 린치

 



데이빗 린치의 영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 '설명'이라는 단어와 린치의 영화는 유난히 어울리지 않게 느껴지는데, 그의 영화들은 대부분 명확한 설명을 거부하고 있는 작품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뇌로 지우개를 만드는 사나이에 관한 긴 악몽인 <이레이져 헤드>나, 구분되지 않는 두 개의 꿈의 세계를 그린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생각한다면, 이 사람의 영화는 논리적인 인과성을 기초로 감상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요. 우리가 꿈을 꿀 때, 논리적인 인과성과는 상관없는 '즐김'속에 있듯, 린치 영화의 트리거 포인트도 일반적인 서사문법의 바깥에 있는거죠. 린치영화는 거의 악몽처럼 보여집니다. 느닷없이 기괴하며, 종잡을 수 없고, 묘하게 그럴듯한 이야기는 바로 꿈의 구조 그 자체이지요. 이러한 이야기는 늘 즉각적인 독서를 요구합니다. 린치 영화를 쪼개고 쪼개면 어떤 이야기로 환원될수 있는지와 상관없이, 그의 영화는 늘 우리에게 느닷없는 이미지를 제공하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요.

블루 벨벳은, 아버지가 쓰러진 후 자기 집 뒤 정원에서 잘려진 귀를 줍게된 제프리의 무시무시한 모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형사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는 듯한 제프리는 자신이 발견한 사건을 나름대로 수사하고 싶어하고, 샌디의 도움을 받아 도로시라는 가수를 관찰하기 시작하지요.
여기서부터 영화는 매우 불편한 관음증과 페티시즘, 새디즘과 매조히즘, 폭력의 세계를 질주합니다. 제프리가 머물러 있었던 단아한 일상의 세계는 붕괴하고, 그는 스스로에게도 이 기괴한 세계의 자질이 있음을 깨닫게 되죠.
영화는 언제나 경계선 이쪽 저쪽을 오갑니다. 샌디가 있는 일상적인 세계와 도로시가 있는 기괴하게 비틀린 세계. 제프리는 도로시에게 매료되고, 그녀와 섹스를 하고 그녀를 괴롭히는 세계와 맞서지만 결국 샌디에게 돌아갑니다. 그러나, 샌디를 중심으로 묘사되고 있는 일상의 세계는, 마찬가지로 현실이기 보다는 또 하나의 환상처럼 보여지는데, '울새'에 관한 샌디의 꿈의 은근한 기괴함은, 제프리가 산뜻한 일상의 세계로 복귀했다고 말하기 주저하게 만들어요. 도로시의 세계가 실재이상으로 일그러진 곳이듯, 샌디가 품고 있는 꿈도 어마어마하게 과장된 이미지이니까요. 이 두 세계는 모두 이미지가 실재를 넘어서버린 공간입니다. 그것은 두 세계의 모사이기보다는, 오히려  일상의 모델, 그리고 폭력의 모델입니다. 다소 진부하고, 더 끔찍하며, 그래서 기괴한 모델이지요.

간단히 이야기하면, <블루 벨벳>은 아버지가 없는 사이 아직 철이 덜 든 청년이 겪게 되는 끔찍한 혼란과, 그 극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가장이 사라진 후, 이 세계는 느닷없이 더 끔찍하게 보이고 일상은 연약하게 느껴지지요. 제프리는 위험한 세계에 매료되고 몸을 던지고, 다시 돌아옵니다. 아버지도 돌아오지요. 이런 일상적인 이야기를 극단적으로 과장하면, 바로 짜잔! 데이빗 린치의 세계입니다. <이레이져 헤드>가 한 청년노동자의 생활을 기괴하게 과장한 것이고,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어느 실직 연기자의 욕망을 끔찍하게 과장한 것이듯 <블루 벨벳>은 아버지 없는 하늘아래, 한 청년이 겪게 되는 심리적 공황을 과장한 것이에요.

저는 이러한 린치식의 과장이 썩 마음에 듭니다. 린치 세계의 매력은, 극 중의 도로시의 매력과 거의 일치합니다. 기괴하고, 불안하며 또한 야해요. 이제 <트윈픽스>만 보면, 린치를 향한 제 여행은 어느정도 끝나게 되는데... 티비판과 극장판 모두 DVD로 나와있네요. 동네 비디오가게 뒤지는 것은 그만두고, 돈이나 벌어야 겠습니다.

by 이녘 | 2006/06/28 08:53 | For movie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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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piri at 2006/06/28 09:31
트윈픽스 티비판은 DVD로 나오다 말았습니다. 낡은 비디오가게를 뒤져서라도 완결을 보시는 편을 추천해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6/28 11:07
트윈픽스 TV판은 아마 반쪽짜리인채로 완결을 국내출시해주지 않을 것 같습니다. ^^;;
블루벨벳은 아버지 없는 하늘 아래 한 청년이 겪게 되는 심리적 공황을 가장한 것이라. 참 멋진 해석이네요.
Commented by 이녘 at 2006/06/28 18:40
piri님. 얼마전, 동네에 있는 마지막 비디오 가게가 철수했어요. 이제 대여점도 사양산업인걸까요;ㅁ; 영화마을이 없는 동네가 있다니. GS 25시가 없는 동네만큼 이상해요.

Arborday님. 아무래도 영화쪽 버젼만 감상해야겠네요. 트윈 픽스의 TV쪽 버젼이 괜찮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ㅁ;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6/29 21:15
TV가 죽이죠. 이런건 어쩔 수 없습니다. 어둠의 경로를 뒤벼야해요!!
Commented by 이녘 at 2006/06/30 15:58
으음. 어둠의 경로로군요. 짧은 저의 영어로는, 자막없이 완상하기가 힘들어서 아쉽습니다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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