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저 스냅 3, The beginning

 




늑대인간과 십대소녀라는 소재를 뒤섞을 생각을, 누가 제일 먼저했을까요? 이 털이 숭숭 솟아난 거친 짐승과, 뽀얀 피부의 소녀들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저 스냅 시리즈는 뻔뻔한 영화였습니다. 시리즈의 첫편에서는, 십대 소녀의 성장이라는 소재를 끼워넣었고 두번째 시리즈는 일종의 정신병원에 브리짓을 집어넣고는 아주 가학적인 농담을 퍼부었죠. 두 시리즈의 성격은 판이하게 다르지만, 거기에는 내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변하게 된다는 공포증이 삽입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공포증이 이 현대적인 배경과, 고딕적인 옛 아이디어를 무리없이 조화시켜주었지요.

3편은 어떨까요? 우선 이 영화는 시리즈 세편 중 가장 늑대인간 이야기 같습니다. 고립된 사람들, 습격하는 괴물들, 비밀을 간직한 리더, 우연한 방문자. 끝도 없이 튀어나오는 괴수영화의 공식에, <진저 스냅 3>는 아주 잘 들어맞아요. 곧장 <에일리언2>가 떠오르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제법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북미에 이주한 유럽인들과 원주민들의 갈등, 기독교가 보여주는 여성과 유색인들에 대한 무시무시한 차별, 변해가는 가까운 사람을 지켜보아야 하는 아픔 등 이 영화에는 괜찮은 설정들이 많아요. 거기에 19세기 시대극에서 방금 튀어나온 것처럼 차려입은 진저와 브리짓을 보는 쾌감도 크죠. 브리짓 역의 에밀리 퍼킨스는 정말이지 예뻐졌습니다. 시리즈가 더해져 갈수록 예뻐지는게, 아주 죽겠어요(__)

문제는 감독이 이 두 자매에게로 눈길을 돌릴 때마다, 이야기가 아주 힘을 잃는다는거에요. 두 자매의 밑도 끝도 없는 자매애에 관한 이야기와, 캐나다 이주민의 역사는 껄끄럽게 겉돕니다. 늑대인간은 그냥 우연히 주어진 재앙처럼 느껴지구요. 1편에서 늑대인간으로 변해간다는 사실과 진저와 브리짓의 자매애는 훨씬 적극적인 이유에서 결합하고 있었습니다. 늑대인간이 되어가는 저주는, 단순히 두 자매에게 내려진 사고가 아니라, 세상을 단 둘이서 사라가는 외톨이의 세계에 주어진 시련이었어요. 진저를 향한 브리짓의 감정은, 소유욕과 애증, 홀로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복합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3편의 진저와 브리짓에게는 전작들을 통과해온 굴절된 자매애의 자취만 남아있습니다.

이는 진저스냅 3편의 독특한 성격과 관련이 있을거에요. 3편은, 어떻게 유럽의 늑대인간 전설이 캐나다로 이식되었나에 대한 대답같은 것입니다. 그 설명은 제법 재미있었으며, 진저와 브리짓 자매가 등장하는 것도 어색하지만 나쁘지 않았어요. 하지만, 3편의 감독은 1편을 너무 의식하고 있습니다. '고스트'라는 새로운 파트너를 내세워 1편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데 성공한 2편에 비해, 3편은 1편의 자매 이미지에 너무 집착하고 있어요. 차라리 캐나다 이주민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두 자매에게 인디언 전설대신 더 그럴듯한 배경을 갖춰주었더라면 훨씬 괜찮은 드라마가 나왔을거에요. 저는 퍽 아쉽습니다.

더 이상의 진저스냅 시리즈는 나오지 않을 지 궁금합니다. 전 정말 2편의 브리짓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단 말이에요.

by 이녘 | 2006/06/29 15:05 | For horror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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