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7월 17일
월야환담, 홍정훈
얼마전 홍정훈의 <월야환담 창월야>가 완결되었습니다. 비록 전작인 <월야환담 채월야>만큼의 매력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이대로라면 다음 월야환담을 기대해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가 써왔던 소설들의 주인공은 하나같이 강한 힘과 고결한 숙명을 부여받은 남성들입니다. 설사 스스로 혐오에 가득차 방백을 던질 때에도, 그들의 숙명은 고뇌로 빛나고 있습니다. 좋게 말하면 연극적인 태도이고, 나쁘게 말하면 찌질한거죠. 네. 홍정훈의 인물들은 찌질합니다. 쿨한 화자의 태도와는 다르게, 그들은 스스로의 고뇌와 숙명, 힘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는 적이 단 한순간도 없습니다. 이것은 주인공의 고뇌이기보다는 화자의 관념적인 고뇌로 비칠 때가 많은데, 이러한 스타일은 홍정훈의 악명높은 '주인공 괴롭히기'로 장점과 단점을 넘어선 하나의 스타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점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국 이 '찌질함'은 홍정훈의 스타일 자체가 되어버린거죠.
하지만 제가 홍정훈을 좋아하는 것은 비단 그런 이유에서만은 아닙니다. 이 사람은 우리나라의 판타지 시장에서 가장 폭넓은 인용과 브리콜라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체로 자신의 관념적 세계를 묘사하는 것에 만족하는 이영도나, 인용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뒤덮어 버리는 전동조같은 사람과는 달리, 홍정훈은 갖가지 하위문화의 소재들을 짜집으면서도 나름대로의 일관성을 유지하는데 성공합니다. D&D풍의 세계관과, 저패니메이션, 스페이스 오페라 풍의 이야기들을 근사하게 짜집는 홍정훈의 솜씨는, 그 특유의 '괴롭고 유쾌한 주인공'과 섞이며 독특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해요. 월야환담 시리즈는 그러한 매력의 정점에 서있었습니다. 흡혈귀라는 소재와, 갱스터 무비 풍의 음울한 분위기, 오토바이의 질주와 총격이 범벅된 서울이라는 공간은 우리가 쉽게 체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액션의 지평이었어요. 홍정훈의 인물들 중에서, 유쾌함을 거세시킨 인물인 '한세건'과 '실베스테르'는 오히려 날렵한 캐릭터가 되어 우리에게 다가왔지요. 그들은 페르아하브나 카이레스가 짊어지고 있었던 유머에 대한 숙명에서 어느정도 자유로웠고, 그 결과 <월야환담 채월야>는 산만한 홍정훈의 세계에서는 이례적으로 날씬한 분위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송곳처럼 날카롭달까요. 이리저리 가고 싶은대로 훨훨 날아가는 듯한 분위기의 다른 작품에 비하여, <월야환담 채월야>는 끝없이 이어지는 도로를 질주하는 오토바이를 연상케했어요.
하지만 이 사람의 가벼움을 향한 욕망은 <월야환담 창월야>를 만들어내었습니다. 고뇌하는 한세건의 균형을 맞춰줄 '서린'이라는 인물이 나타났죠. 이 페어는 가장 재미없는 홍정훈 파티였는데, 홍정훈의 인물을 정확히 양분해놓은 듯한 캐릭터였기 때문이에요. 홍정훈의 인물들은 원맨쇼를 할 때 가장 어울려요. 고뇌와 가벼움을 따로따로 가지고 있는 두 주인공이라니. 그런건 절름발이입니다. 홍정훈 특유의 냉소적인 개그가 덧붙여지고, 액션의 강도가 더 커지고 화려해졌지만 창월야는 채월야가 가지고 있던 매력을 야금야금 깎아먹는 소설입니다. 덩치커진 속편이랄까요. 헐리우드 액션영화 속편의 악습을 제대로 재현하고 있는거죠. 더 화려해졌으나, 본래의 미덕은 상당히 잃어버린.
한 블로거 분의 코멘트에 따르면 스케일이 커지고 다루는 인물들이 드러나자 이 글은 홍정훈이 가지고 있던 본래의 단점들이 더 눈에 잘 뜨이는 것 같답니다. 저도 동의해요. 채월야의 어떤 날씬함이 사라지고 나자, 이야기는 자유롭게 산만해지고 설정은 뒤엉키기 시작합니다. 체인배틀류의 만화책의 후반부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평균적인 재미를 제공해주는 홍정훈 소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가끔 안타까워요. 이 소설이 일본에서 발표되었으면 지금쯤 월야환담의 이름을 딴 애니나 만화책, 게임 등등이 만들어졌을것 같단 말이에요. 왜 또 모르죠. 어디선가 '월야환담 온라인'같은 것이 기획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가 써왔던 소설들의 주인공은 하나같이 강한 힘과 고결한 숙명을 부여받은 남성들입니다. 설사 스스로 혐오에 가득차 방백을 던질 때에도, 그들의 숙명은 고뇌로 빛나고 있습니다. 좋게 말하면 연극적인 태도이고, 나쁘게 말하면 찌질한거죠. 네. 홍정훈의 인물들은 찌질합니다. 쿨한 화자의 태도와는 다르게, 그들은 스스로의 고뇌와 숙명, 힘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는 적이 단 한순간도 없습니다. 이것은 주인공의 고뇌이기보다는 화자의 관념적인 고뇌로 비칠 때가 많은데, 이러한 스타일은 홍정훈의 악명높은 '주인공 괴롭히기'로 장점과 단점을 넘어선 하나의 스타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점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국 이 '찌질함'은 홍정훈의 스타일 자체가 되어버린거죠.
하지만 제가 홍정훈을 좋아하는 것은 비단 그런 이유에서만은 아닙니다. 이 사람은 우리나라의 판타지 시장에서 가장 폭넓은 인용과 브리콜라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체로 자신의 관념적 세계를 묘사하는 것에 만족하는 이영도나, 인용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뒤덮어 버리는 전동조같은 사람과는 달리, 홍정훈은 갖가지 하위문화의 소재들을 짜집으면서도 나름대로의 일관성을 유지하는데 성공합니다. D&D풍의 세계관과, 저패니메이션, 스페이스 오페라 풍의 이야기들을 근사하게 짜집는 홍정훈의 솜씨는, 그 특유의 '괴롭고 유쾌한 주인공'과 섞이며 독특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해요. 월야환담 시리즈는 그러한 매력의 정점에 서있었습니다. 흡혈귀라는 소재와, 갱스터 무비 풍의 음울한 분위기, 오토바이의 질주와 총격이 범벅된 서울이라는 공간은 우리가 쉽게 체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액션의 지평이었어요. 홍정훈의 인물들 중에서, 유쾌함을 거세시킨 인물인 '한세건'과 '실베스테르'는 오히려 날렵한 캐릭터가 되어 우리에게 다가왔지요. 그들은 페르아하브나 카이레스가 짊어지고 있었던 유머에 대한 숙명에서 어느정도 자유로웠고, 그 결과 <월야환담 채월야>는 산만한 홍정훈의 세계에서는 이례적으로 날씬한 분위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송곳처럼 날카롭달까요. 이리저리 가고 싶은대로 훨훨 날아가는 듯한 분위기의 다른 작품에 비하여, <월야환담 채월야>는 끝없이 이어지는 도로를 질주하는 오토바이를 연상케했어요.
하지만 이 사람의 가벼움을 향한 욕망은 <월야환담 창월야>를 만들어내었습니다. 고뇌하는 한세건의 균형을 맞춰줄 '서린'이라는 인물이 나타났죠. 이 페어는 가장 재미없는 홍정훈 파티였는데, 홍정훈의 인물을 정확히 양분해놓은 듯한 캐릭터였기 때문이에요. 홍정훈의 인물들은 원맨쇼를 할 때 가장 어울려요. 고뇌와 가벼움을 따로따로 가지고 있는 두 주인공이라니. 그런건 절름발이입니다. 홍정훈 특유의 냉소적인 개그가 덧붙여지고, 액션의 강도가 더 커지고 화려해졌지만 창월야는 채월야가 가지고 있던 매력을 야금야금 깎아먹는 소설입니다. 덩치커진 속편이랄까요. 헐리우드 액션영화 속편의 악습을 제대로 재현하고 있는거죠. 더 화려해졌으나, 본래의 미덕은 상당히 잃어버린.
한 블로거 분의 코멘트에 따르면 스케일이 커지고 다루는 인물들이 드러나자 이 글은 홍정훈이 가지고 있던 본래의 단점들이 더 눈에 잘 뜨이는 것 같답니다. 저도 동의해요. 채월야의 어떤 날씬함이 사라지고 나자, 이야기는 자유롭게 산만해지고 설정은 뒤엉키기 시작합니다. 체인배틀류의 만화책의 후반부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평균적인 재미를 제공해주는 홍정훈 소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가끔 안타까워요. 이 소설이 일본에서 발표되었으면 지금쯤 월야환담의 이름을 딴 애니나 만화책, 게임 등등이 만들어졌을것 같단 말이에요. 왜 또 모르죠. 어디선가 '월야환담 온라인'같은 것이 기획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 by | 2006/07/17 14:04 | For fiction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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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타번씨 100대 판타지 소설 작가가 된 걸 축하해요. (!)
진짜 게임이 될지도 몰라요 기말 작품으로 만드는 중인데;;; 됬으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