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단편극장, 서울아트시네마

 
어제 다녀왔습니다. 이벤트를 놓쳐버려서 당당히 입장료를 치루고 들어갔지요. 분명 100명 대상의 이벤트였을텐데, 생각보다 훨씬 사람이 적었습니다. 확실히 백명은 안 됐어요.-_-

"금요단편극장"에는 지난 미쟝센 영화제에서 수상한 세 편의 단편영화가 올라왔습니다. <탈고>와 <신당동 전기톱 부부싸움>, <핵분열 가족> 이에요.

<탈고>는 마감을 앞둔 만화작가가, 한 밤중 시달리는 환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마감을 지키고 싶지만 일은 하기 귀찮은 만화가의 극단적인 도피증이랄까요. 환상은 만화가를 방해하기도 하고, 유혹하기도 합니다. 전체적으로 칙칙한 화면에서, 갑자기 빨간 원색이 튀어나올 때의 느낌은 생각보다 좋았어요. 큰 재미가 있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괜찮았습니다. 짧았거든요. 이러한 경우, 짧다는 것은 미덕이죠.

<신당동 전기톱 부부싸움>이라는 제목은, 노골적으로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이 떠올리게 합니다. 사실 전기톱이 등장한다는 것 빼고는 두 영화에 큰 공통점이란 없지만요. 영화는 '텍사스'보다는, 여러모로 <저수지의 개들>이 떠올라요. 의자에 묶어놓고 린치를 가하는 장면이라든가, 특히 귀를 자르는 장면에서 그러합니다. 제 동행은 박찬욱의 <컷>을 얘기하더군요.

이 터무니없이 웃겨보이는 제목 때문에 보러간거였는데, 정작 영화는 다소 심심한 편입니다. 저는 더 짖궂고 막나가는 유머를 바랐었거든요. 감독은 페미니즘을 의도하고 만든 영화였다고 설명했지만, 글쎄요. 차라리 이 영화는, 페미니즘에 대한 맥빠진 농담처럼 느껴집니다. 후에 감독은 남편역의 배우가 피가 묻는 연기를 극도로 싫어했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는데...예. 아쉽습니다. 피 없이도 꽉 짜인 긴장을 줄 수 있을만큼 노련하다면 모를까. 이런 영화에선 시원시원하게 잘라대면 그럭저럭 먹힌단 말이에요.

<핵분열 가족>은 세 영화중, 기술적으로 가장 안정된 작품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매끄럽고, 설정에는 힘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재미있어요. 정말 웃깁니다. 두 감독의 말에 따르면 일본에서 만들어진 <역분사 가족>을 많이 참고(...)했다고 하는데... 기본적인 설정을 따온 것이라면 정말 일본에서 만들어질만한 이야기입니다. 일본은 북한에서 발사한 미사일에 대해서, 우리처럼 복잡한 정치적인 의미를 집어넣지 않아도 되니까요. <핵분열 가족>에서도 북한과 핵폭탄은 그냥 하나의 농담입니다. 하지만 그 농담이 찝찝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요.

하지만, 영화는 훨씬 재미있는 농담을 던집니다. 어느 순종적이고 자애로운 중산층 주부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옵니다. 바로 30분 후, 서울에 핵폭탄이 떨어지니 어서 대피하라는 거죠. 그리고 이 삼십분동안, 이 평범한 중산층 주부의 산문적인 세계가 깨어져나갑니다.  딸은 어머니 패물을 훔쳐 남자친구와 함께 오토바이로 도망갈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고, 아들은 자기 혼자 들어가 몸을 피할 벙커를 파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치매 걸린 어머니는 혼자 발작을 하다가 유리차에 목을 박고 죽어버리고, 교수인 남편은 한 집에 기거하고 있던 제자와 동반자살을 하겠다고 법석을 떨죠. 이러한 상황속에서, 혼자서는 바퀴벌레도 못잡을 것 같은 이 가련한 아주머니는, 어느순간부턴가 온 가족을 죽이고 돌아다니는 괴물이 되어버립니다. 피칠갑을 한 그녀의 넋나간 피로한 모습은, 정말이지 뒷맛이 나쁜 유머입니다.

감독은 가정 안에서의 어머니가 홀대받는 것에 대한 불만 때문에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뻔한 소개에서부터, 제목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가족해체에 관한 온갖 뻔뻔한 은유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뻔뻔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으니, 이 영화는 하나의 농담이 되어버려요. 저는 그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by 이녘 | 2006/07/29 12:02 | For movie | 트랙백 | 덧글(2)

트랙백 주소 : http://damul83.egloos.com/tb/2313793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7/29 12:06
핵분열가족은 정말 보고 싶었는데, 하필 시간이 안되더라구요. 쩝. 또 기회가 있어야 할텐데.
Commented by 이녘 at 2006/07/30 10:35
소개하는 말로는, 올 해 하반기의 영화제에 올린다고 하네요. 참 재미있었어요. 정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