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The Host

 



괴물을 보고왔습니다. 지금까지 되도록 밸리에 들르지 않으려 노력했었는데, 그게 온통 게시판에 <괴물 >뿐이었으니까요. 되도록이면 아무런 정보 없는 상태에서 영화를 보고 싶었습니다. 그게 쉽지는 않았지만요.

괴물은 어떤 영화일까요? 우선 이 영화의 기본적인 틀은 괴수재난영화입니다. 정체불명의 괴물에게 위협당하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니까요. 하지만 이 도시적인 재난에 대한 공권력의 대응은 멍청하고 굼뜨기 짝이 없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오히려 사태를 오도하고, 진실을 매장하고 있지요. 이것도 재난영화의 공식에서 크게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재난영화들은 대개 공권력이 부재하는 상태에서의 소시민영웅을 다루지 않던가요?
하지만 봉준호는 조금 더 나아갑니다. 아니. <괴물>은 좀 더 나아갑니다. 이러한 영화에서 원망받게 되는 것은 늦장을 부리거나 다른 꿍꿍이가 이는 관료제 사회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괴물들이 활개치는 동안 가장 큰 아군은 다름아닌 관료제 정부입니다. 그들은 이 거대한 재난 앞에서 자신의 잇속을 채우거나 책임을 회피하거나, 아니면 무기로 만들 생각에 바쁘지요. 이기적인 관료제 사회와 소시민 사회의 대립은 재난영화의 큰 틀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의 충돌이었어요. 일종의 내부고발입니다. 관료 권력을 대신하여 사태를 해결하는 것은 소시민들이지요. 이러한 재난영화는 불신받는 정부에 대한 위약이자 대리보충물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애매한 타자인 미국이 끼어들며 드라마는 흥미롭게 변합니다. 관료제 사회는 무능한 한국정부와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미국으로 양분해요. 이러한 설정이 노리는 효과는 소박하고 단순합니다. 하지만 확실하지요. 예. <괴물>은 어느정도 반미영화입니다. 하지만 온전한 반미영화는 될 수 없어요. 그러기에, 여기에 나오는 미국은 너무 추상적이고 소박한 캐리커쳐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미국이라는 거대하고 진짜 이기적인 실체를 표현하기에, 싱크대에 독극물을 뿌리는 미국의 모습이나 입 싼 과학자는 너무 가벼워요. 아마 반미코드는 봉준호가 생각했던 여러 영화적 가능성의 한 부분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작영화를 그렇게만 끌어가기에는 곤란하지요. 이제는 농담같은 수사이기는 하지만, 여기에 스필버그식 휴머니즘과 가족애가 끼어들며 영화는 제 갈길을 잡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터치는 봉준호의 느낌이 물씬 나요. 우스꽝스럽고 처연하지만 정감이 넘치는 그 터치는, <살인의 추억>에서 보여준 바로 그것 입니다. 이 네명의 가족이 좌충우돌하며 괴물을 잡으러가는 이야기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처연하고, 또한 처절합니다. 무능하고 이기적인 정부는 여기에 흥미로운 대위법을 제공하구요. 아마 지금쯤, 이 영화의 반미코드는 가족애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견이 돌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예. 이 영화는 그런 것도 같습니다. 이 네명의 액션히어로를 가로막고 있는 적들의 모습은 너무 투박하고 서툴러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있는지도 모르는 병원에는 변변한 경호세력조차 없고, 한강에서 총을 그렇게 쏘아대는데 출동하는 인원은 놀랄만큼 적습니다. 한강은 그렇게 까지 확실하게 통제되고 있지도 않아요. 이 영화에서 정부의 무능함은, 이들이 대항할 적이자 이들을 활개칠 무대를 마련해주는 근사한 보조이기도 합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정말 좋았습니다. 모두 나무랄 데 없는 연기를 보여주었어요. 손사래를 치던 변희봉의 모습이나, 시계태엽오렌지에 나올 듯한 기괴한 의료기구 사이에서 울부짖는 송강호의 모습은 정말이지 좋았습니다. 박해일이나 배두나도 자기몫을 했구요. 고아성의 아역연기는 너무 침착한 느낌이랄까요. 아이가 불안하거나 패닉에 빠지지는 않고 그냥 야무지기만 해요. 하지만, 딱히 다른 대안이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소리만 빽빽 질러대는 아이도 매력이 있을 것 같지는 않네요.

제 나름의 평을 내리자면,  이 영화는 운동권 출신 청년의 끔찍한 백일몽 같습니다. 사람들은 툭하면 반미반미 외쳐대는 시민단체에 지겨워하고 있지만, 웬걸. 사실 진짜 모든 만악의 원흉은 미국이었어요. 권력은 적당히 사악하고 적당히 무능합니다. 그리고 이 총체적인 위기를 '우리끼리' 해결하는 거에요. 남일은 이 나라 민주화를 위해 던졌던 화염병을 괴물에게 투척하는 것입니다. 이 장면이 주는 울림은 정말 컸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 영화가 주는 쾌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는 평을 하고 싶네요. 이 영화가 보여주는 액션은 조금은 충분치 않은 느낌이며 괴물의 움직임은 조금 단조롭습니다. 거기에 사회적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던 서브텍스트들도 충분히 표현되지는 못했지요. 여름에 볼만한 오락영화라는 느낌이었습니다. 너무 자극적이지도, 너무 불편하지도 않은.

by 이녘 | 2006/08/07 15:43 | For movie | 트랙백(2) | 덧글(3)

트랙백 주소 : http://damul83.egloos.com/tb/235404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Tracked from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블로그 at 2006/08/07 15:51

제목 : 괴물은 죽지 않았다 - 괴물
&lt;스포일러 있습니다&gt; 영화 '괴물'에서 괴물은 단지 조연에 그치고 있습니다. 괴물은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진짜 괴물 - 부조리한 사회, 연구자, 경찰, 386세대를 포함한 대부분의 현실 - 에게 관객을 끌고가는 역할 이상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장르영화, 특히 괴수물에서 괴수의 탄생원인을 규명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괴수를 만들어낸 이유가,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자 비판의 대상이 ......more

Tracked from 딸기밭은 영원히! at 2006/08/08 15:32

제목 : 괴물. 몇 가지만.
마음잡고 괴물에 대한 포스팅을 하려다가 주제를 못 잡고 늘어지는 느낌만 가득하여 접어버렸어요. :( 어쨌든, 봉준호 감독의 이 영화는 하나의 현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 이름만으로도 뉴스 거리가 되고, 보지 않은 이들을 소외시켜가는(혹은 그렇게 느끼도록 만드는) 괴물같은 영화가 되고 말았죠. 하도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다 보니 제가 한 마디 붙여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저는 이 영화를 정말 재밌고, 슬프게 봤으......more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8/07 15:50
괴물에게 던진 화염병은 실상 본질을 겉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개구리 역시 희생자였기 때문이죠.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강두가 개구리를 찔렀던 장면에서, "너 착한 것 안다."가 떠올랐어요. 게다가 그 화염병을 마무리하는 것은 운동권이 아닌 '양궁선수'죠.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던 운동권에 대한 이야기였을지도 모릅니다.
장르가 장르이다보니 너무 거창해졌고, 진정한 괴물이 '미국'과 '정부' 수준이 되다보니 이건 해결책을 제시할 정도를 넘어서버렸어요. 그래서 결말이 몹시 찝찝한건 어쩔 수 없었나봅니다.
어찌 되었건, 괴물은 충분히 괴물스러운 영화였다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8/07 15:52
어쨌거나 이제 더 이상 밸리를 외면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
축하드립니다.
Commented by 이녘 at 2006/08/08 11:18
저는 이런 영화에서의 진짜 적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해서요. 그냥 무난하게 장르공식을 따라간 작품처럼 느껴져요. 하여간 마구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