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8월 12일
오즈의 마법사

아무래도 <오즈의 마법사>는 뮤지컬로서의 쾌감이 적은 편입니다. 불후의 명곡 'OVER THE RAINBOW'를 제외하면 우리를 추억에 잠기게 할 만한 마땅한 무기도 없어요. 극 안에서 이루어지는 아기자기한 마법의 세계와 군무들도, 충분한 쾌감을 전달하지는 못합니다.
사람들은 곧잘 웃음을 터뜨리지만, 그것은 너무 낡고 고리타분해진 클리셰들이 노골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오히려 생소해 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스꽝스러운 마녀의 모습이나 80년대 <뽀뽀뽀>보다 노골적인 인형극 연기들은 오히려 독특한 냄새를 풍기거든요. 거기에 한없이 얌전하고 지나치게 착한 오즈의 이야기들은 어른이 되어 다시 보게되니 조금 기괴해보이기 까지 합니다. 가장 좋은 곳은 집이라고 되뇌이고 있는 도로시를 보며, 아련한 불쾌감에 젖은 사람이 저 뿐만은 아닐거에요. 어떤 인격의 죽음에, 마냥 환호할 수 있는 세계를 바라보는 것도 꼭 편한 것 만은 아닙니다. 그것이 아무리 마녀의 죽음이라고 할 지라도 말이지요.
원작 오즈 이야기에서, 허수아비나 양철인간, 사자와의 대화는 동화 특유의 단순성으로 인해 거의 철학적으로 보이기 까지 했습니다. 수수께끼들은 명쾌하지만 동시에 오묘하고 신비했어요. 오즈 이야기들은 어른이 읽어도 충분한 쾌감을 전달하는 소설이었습니다. 그게 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메마른 시선이라 할 지라도요. 하지만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는 그렇게 대역폭이 넓지 않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그저 편하고 재미있는 심정으로 이 영화를 감상할 수가 없단 말이에요.
물론 이것은, 분명한 단점은 아닙니다. 저는 분명 어린 시절, 오즈의 세계를 경이롭게 바라보았었습니다. 먼치킨들의 도시는 아기자기했고 에메랄드 시티는 황홀했어요. 저는 그 때 분명 도로시의 재난에 마음을 졸였을 것입니다. 그녀가 집에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하고, 그녀가 눈을 떴을 때 같이 안도했을거에요. 어찌되었든, 저는 다시 그 당시로 돌아가 오즈를 감상할 수는 없습니다. <오즈의 마법사>가 낡아버린 것인지, 아니면 제가 나이가 들어버린 것인지 저로서는 지금 당장 판단할 수가 없지만 말이에요. 다만 제 기억속의 오즈 원작은 훨씬 다채롭고 아기자기한 이미지로 남아있습니다. 트랜스젠더가 나오는 동화라니. 그런것을 쉽게 잊기란 불가능하죠.
# by | 2006/08/12 01:29 | For movie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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