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8월 25일
공포의 휴가길

'물을 건너온' 문화들을 이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친다고해도 저 영국인들과 같이 <록키호러픽쳐쇼>를 즐기지는 못할 것이며, <쉰들러 리스트>와 같은 영화를 보는 독일인의 심정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베트남전쟁 전후에 미국인들이 <영원한 전쟁>이나 <스타쉽 트루퍼스>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추측하기 힘이 듭니다. 너무 먼 이야기들만 했나요? 마스터스 오브 호러의 한 에피소드인 <병사들의 귀환>이나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들은 어떨까요? 그것들은 고유의 문화와 관습, 공감대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만이 온전히 받아들이고 혹은 싫어할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우리는 문화를 대하며 시시때때로 단절을 경험합니다. 어떤 단절은 시간으로부터 오고, 어떤 단절은 거리로부터 다가오지요. 그 단절을 어떻게든 극복해내는 작품에 대하여, 우리는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합니다.
서론이 너무 장황하고 길었군요. <공포의 휴가길>과 상관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은 것은 제가 이 영화를 보며 느꼈던 , 하지만 결코 확인할 수 없는 몇몇 인상들 때문입니다. 1977년, <공포의 휴가길>이 만들어질 때 사람들은 이 영화를 단순한 슬래셔 무비로 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 영화에 가득 뿌려진 해체된 가족의 이미지와 폭력적인, 그러나 정확히 보이지 않는 군대, 부재하는 공권력의 모습은 지금보다 뚜렷하고 불쾌한 무언가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우리가 <알포인트>를 보며 어쩔 수 없이 이라크로 파병되고 있는 우리의 젊은이들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것 처럼요. 하지만 우리는 1977년의 미국이라는 특별한 시공간적 배경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어요. 이 영화를 오롯하게 즐길 수 있는 길은, 어쩌면 처음부터 막혀있는 것이지요.
그 한계를 인정하고 감상을 시작해보자면, 말했다시피 이 영화는 해체되고 충돌하는 가족에 관한 영화입니다. 버림받은 아이는 나름의 가족을 이루어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의 영역에 다가오는 다른 가족을 파괴하고 괴롭힙니다. 부재하는 공권력속에서, 부모와 아내를 잃은 자녀들은, 마찬가지로 피를 뿌리는 복수에 나서지요. 여기에 소닉붐 폭격을 가하는 공군기지의 존재가 은근슬쩍 영화에 불쾌감을 더합니다. 국가는 자신만의 사업에 골몰해있고, 바로 그 변경에서 무법과 폭력은 자생하고 있어요. 가족은 해체되고, 절름발이가 된 가족이 또 다시 무법과 폭력을 일으킵니다.
저는 카터 가족이 딱히 불쌍하다거나 약해보이지는 않았는데, 그들은 단지 먼저 공격받았을 뿐 충분한 무기를 지니고 있었고, 또 충분한 폭력을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두 가족들은 모두 디테일한 부분에서 차이가 날 뿐 전형적인 가부장 권위로 움직이는 시스템이란 말이에요. 카터가족이 위선적인 교양을 내세우는 중산층 가정의 느낌이라면, '로마신'가족은 억척스러운 슬럼가의 분위기를 풍깁니다. 두 가족의 모습 모두, 호감을 부르기엔 무리가 있어요. 저는 잔혹한 구경거리를 보는 느낌으로, 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이 영화는 <엑스텐션>의 감독 알렉산더 아자에 의해 리메이크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꽤 재미있게 <엑스텐션>을 보았던 저로서는 기대를 하고 있지만,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처럼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또한 걱정이 됩니다. 단절을 경험하는 것은 비단, 우리뿐만은 아니니까요. 전작의 아우라를 베낄 수 없다는 것은 수많은 리메이크들의 실패가 증명하고 있지 않나요. 부디 다른 느낌의, 하지만 재미있는 <The hills have eyes>를 기대해봅니다.
덧. <왼편 마지막 집>이 보고 싶어요 ;ㅁ;
# by | 2006/08/25 22:33 | For horror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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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ri님. 어릴 때 라니. 대체 언제인 거에요? ㅋㅋ
전 이거 어눌한 자막에다 공윤의 가위질까지 되어 있는 비디오 테잎으로 가지고 있어요.
블로그 재밌네요. 덤성덤성 보긴했지만 3월의 시작지점까지 다 읽었습니다. 링크 신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