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I

 



저는 꽤 산만하게 드라마를 보는 편입니다. 제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러한 산만한 태도가 어느정도 허용이 되기 때문이기도 해요. 오늘 로메로를 보고, 내일 홍상수를 본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잖아요? 하지만 매 주 정해진 시간에 티비 앞에 앉아야하는 것은 저를 지치게 합니다. 꾸준히 한가지만 볼 수 있을정도로 집중력있는 시청자도 못되구요. DVD는 좋은 대안이 되어주지만, 역시 금전부담이 상당하죠.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저는 드라마를 즐겨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나라 드라마나, 일본 드라마보다 미국 드라마와의 상성이 잘 맞는 것은 이런 제 습성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대개 에피소드 형식으로 만들어지는 미국의 드라마들은 이야기 한 두개 쯤 건너 뛴다고 해서 감상하는데 방해를 미치지는 않잖아요? 거기에 한 편 한 편 완성된 구조를 그리는 시리즈들은, 집중도를 훨씬 높여줍니다. 다음 에피소드를 보아야한다는 강박에서, 어느정도 저를 자유롭게 해줘요.

어쨋든 <C.S.I>는 제가 보고 있는 몇 않되는 드라마중 하나입니다. <C.S.I 마이애미>를 보기 시작해서,  라스베가스로 옮겨간 드문 경우에 속하죠. 지금은 라스베가스만 보고 있습니다. 뉴욕의 경우 손도 대지 않았지요.

이야기는 아주 단순합니다. 환락의 도시, 라스베가스에 살인사건이 발생합니다. 경찰이 출동하여 노란색 테이프로 사건현장을 차단하면, 우리의 C.S.I가 출동하여 증거를 찾기 시작하죠. 아무리 주의깊은 범인이라도 자신도 모르게 어떤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고, 이 고도로 숙련된 집단인 C.S.I는 어떻게든 그것을 찾아냅니다. 새로운 증거가 밝혀질 때마다 용의자는 바뀌고, 처음 그렸던 밑그림은 마지막에 가서 대부분 수정됩니다. 모든 증거가 찾아지고 나면, 그리썸이이 물어요. 왜 그를 죽였냐고. 그러면 반쯤 체념한 용의자들은 마지막 퍼즐을 맞춰주는 겁니다. 간단하죠?

<C.S.I>의 이야기들은 전형적인 추리장르를 따라갑니다. 작가와 독자의 정보싸움이라는 오래된 게임의 룰을, <C.S.I>는 아주 얌전하게 지키고 있답니다. 최초의 증거가 발견되고, 또 다른 증거들이 나타나요. 충분한 동기를 지닌 여러 용의자들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동안, 계속하여 증거는 발견되고, 결국 생각치 못했던 용의자가 범인으로 밝혀집니다. 아주 고전적이죠? <C.S.I>의 트릭은 그렇게 새롭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주목하지 않을 증거를 통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방법은 <셜록 홈즈> 부터의 전통이죠. 물론 <C.S.I>는 훨씬 세련되게 그 증거들을 다루고 있습니다만, 이들이 기본적으로 명탐정의 후예라는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빠른 두뇌회전과 수읽기 대신, 예리한 관찰력과 온갖 현대과학기구들을 무기로 갖춘 명탐정들이지요.

<C.S.I>의 세계는 지금까지 미국의 공권력을 묘사하는 장르들이 그려온 세계와 사뭇 다른 점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리셀 웨폰>식의 정의감 넘치는 경찰도 없고, <로보캅>에처럼, 뚜렷한 도시악을 향해 적대감을 겨누고 있지도 않아요. 이들에게 폭력은 거의 사라진 것 처럼 보이고, 지문 채취도구나 D.N.A 검출기 따위가 완벽하게 총을 대체했습니다. 이것은 오래된 고전적 추리장르의 세계의 복귀인 동시에, 범죄라는 현상을 대하는 인식의 변화이기도 할 것입니다.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폭력이나 민완형사가 아닌, 고도의 훈련을 받은 전문가 집단이 되어버리는거죠.

C.S.I가 흥미로운 것은 어느순간, 미국사회와 공권력에 대한 꽤 폭 넓은 시각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스스로는 증거를 찾을 뿐이고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검찰이라고 우겨도, C.S.I의 증거수집은 검찰을 위주로 운영되며, 그것은 애꿎은 피해자를 낳기도 합니다. 조직 안에서의 힘겨운 줄다리기, 생활과 관련한 문제들은 이 전문가들도 엄연한 직장인이라는 사실을 들추죠. 에피소드 마다 터져나오는 미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은, 현대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여러 공포증을 일깨웁니다. 이들이 망라하는 온갖 살인의 박물지는, 그대로 훌륭한 사회학적 보고서에요. 아마 수십년 뒤의 인문학자들은, 2000년대의 미국사회를 설명하여 <C.S.I>라는 오래된 시리즈를 꺼내볼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겠지만요. 이전에 유행했던 형사장르와 <C.S.I> 를 비교하다보면 생각보다 훨씬 큰 줄기가 보일지도 모릅니다. 폭력적이기로 유명한 미국의 공권력의 이미지와 직접적인 범인검거에 참여하지 않는 C.S.I는 어떤 밀월관계에 있을까요? 제복을 입었다 뿐이지, 거칠기로 말할 것 같으면 동네 건달과 다를 것이 없었던 경찰의 이미지와 세련되고 전문적인 C.S.I의 이미지는 확실히 다른 것입니다. 이것은 미국 공권력에 대한 알리바이일 수도 있고, 반대로 시청자들이 그러한 공권력을 원한 것일 수도 있죠. 또 다른 이유도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대한민국을 떠나 본 적이 없는 제가 눈여겨 볼 만한 것은 아니죠.

저는 <C.S.I>와 우리나라의 경찰 장르와의 차이점도 퍽 흥미로워보입니다. 우리에게 비춰지는 경찰들의 이미지를 보세요. <투캅스>,<공공의 적>,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와일드 카드>,  <썸>, <살인의 추억> 등등. 또 등등. 어렴풋한 이미지가 그려지지요? 노련하고 거친, 끈질기고 독한, 어떤 비루한 인물들이요. <수사반장>이나 <사건 25시>와 같은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장르로 나아가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들의 수사방식은, 적어도 우리에게 비치는 수사방식은 탐문수사를 중점으로 하는 호흡이 긴 수단들입니다. <C.S.I>가 보여주는 공권력의 이미지나, 그들의 수단과는 확실히 다르죠. 우리나라의 경찰장르와 미국의 <C.S.I>가 왜 이리 다른 모습을 그리는지에 대한 사회학적 보고서를 작성해도 꽤 흥미로울 거에요.

 

by 이녘 | 2006/08/28 18:38 | For others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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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카방글 at 2006/08/29 04:12
그리고 일본은 춤추는 대수사선인가(......)
Commented by 이녘 at 2006/08/29 13:40
뭐, 그럴지도.
Commented by lovepool at 2006/08/30 01:05
재밌어요..이런 범인을 찾아가는 추리..두뇌싸움.
하지만 너무 띄엄띄엄 본탓에 뭔가 뒤죽박죽..-_-
춤추는 대수사선도 그렇고;;뭐 온전하게 본거 하나 없네요;;
Commented by 이녘 at 2006/08/30 08:19
저도 아무리 좋아하는 시리즈도, 온전하게 다 본 것이 없답니다. 춤추는 대수사선도 드라마는 보지 못했네요(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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