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8월 29일
LOST

최근에는 잘 보고 있지 않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12시에 저를 TV 앞으로 데려다놓던 시리즈입니다. 아무래도 첫번째 시즌이 끝난 후, 예전과 같은 충성심이 나오지가 않네요.
<로스트>는 매우 독특한 드라마입니다. <로빈슨 크루소>식의 서바이벌 생존담에, <엑스파일>식의 밑도 끝도 없는 미스테리가 뒤섞였습니다. 이야기는 아시다시피, (아마도) 호주 근처의 무인도에 불시착한 항공기의 생존자들이 겪는 기이한 나날에 관한 기록입니다. 수십명의 생존자들이 각각 서로의 차이에 기인한 갈등을 일으키는 것도 모자라, 이 섬에는 그들 이외에 또 다른 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밤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들이 포효하고,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의 과거와 관련된 환상이나 기이한 현상에 맞닥뜨리게 되요.
<로스트>가 재미있었던 것은, 무엇하나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의 과거는, 이 섬과 관련이 있는 듯도, 없는 듯도 합니다. 이 섬은 정말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도 같고, 아니면 사람들의 불안이 빚어낸 집단환상인 것도 같구요. 여기에, 처음 보는 것이나 다름 없는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환경은, 생각보다 많은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이 섬을, 그대로 미국 사회에 대한 특별한 상징으로 생각해도 생각해볼 거리는 충분해요. 동양인 부부에 관한 시선이나, 사이드가 겪게 되는 아랍인으로서의 편견, 정키보이 록스타, 가부장적 집안에서 자라난 바른생활의사 잭, 철 없는 섀넌과 분 남매 등등. 이 영화에는 미국인의 온갖 캐리커쳐로 가득합니다. 모두가 거의 노골적이기 까지한 캐리커쳐에요. 이 다양한 갈등과 가능성들을, 모호한 미스테리 한가운데에 툭툭 던져주니 그 맛이 또한 대단합니다.
아쉽게도 <로스트>의 재미는 시즌 2 에 들어서, 정체불명의 '그들'이 '달마'라는 집단으로 밝혀지며 점점 하락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리즈의 미덕은 모든것이 모호해서 어느쪽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에 있지요. <로스트>의 각본진들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점점 모호하게 연막을 치고 있지만, 이미 시즌2의 <로스트>는 처음 시작할 때의 <로스트>와 상당히 어긋난 궤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갈등은 이미 많이 써먹었기 때문에 아나루시아의 새 그룹이 들어왔고, 아직도 '그들'의 본거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시즌 1에서의 그 간지럽기 까지한 긴장감은 다시 생기지 않네요.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외계인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어떤 결정적인 단서도 주지 않았던 <엑스파일>의 마지막 시즌을 생각해보세요. 외계인의 정체는 밝혀지고, 다가오는 종말을 기다리는 멀더와 스컬리의 모습은 얼마나 맥빠지고 심심했었나요. <로스트>도 슬슬 그 단계를 밟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다가오는, 미스테리의 종말은, 미스테리의 한가운데보다 아무래도 맥빠지는 법이겠죠. 미스테리의 해결이 큰 쾌감을 가져다주는 작품들 또한 많지만, 적어도 그것이 <로스트>는 아닌 것 같습니다.
# by | 2006/08/29 13:37 | For others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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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보는건 CSI나 24밖에 없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