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9월 10일
천하장사 마돈나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이 있습니다. 성전환 수술을 위해 부두에서 노역을 하여 돈을 모으고 있는 이 소년은, 어느날 사장에게 폭력을 휘두른 아버지를 구해내기 위해, 자신이 애써 모아온 돈을 모두 합의금으로 날리고 맙니다. 실의에 빠져있던 중, 소년은 씨름과 만나게 되요. 씨름대회에서 우승을 하게되면 장학금으로 500만원을 준다는거죠. 500만원이면 똥에 오줌을 말아먹을 수도 있다는 소년은, 그래서 씨름을 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굉장히 착한 영화입니다. 주인공인 동구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바른 아이에요. 그는 자신이 여자가 되더라도 매력적인 여자는 될 수 없다는 것, 남자로 살아가는 것보다 한층 힘겨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동구는 여자가 되고 싶습니다. 이러한 강인한 결단과 추진력은 열일곱살 아이가 갖기에는 너무 단단한 것입니다. 동구는, 세상을 필요 이상으로 너무 잘 알고 있어요. 필요 이상으로 꿋꿋하구요. 이 아이의 성격이 주는 매력은 분명하지만, 저는 약간 의심이 갔답니다. 마찬가지로 착하기만한 동구의 어머니의 캐릭터도 의심가기는 마찬가지이지요. 심지어, 술을 먹고 폭력을 휘둘러대는 동구의 아버지도, 동구의 성정체성에 대해서는 크게 마음을 쓰지 않는 듯이 보입니다. 물론, 이렇게 착하지 않으면 이 영화는 착한 코메디가 될 수 없죠. 동성애에 관한 씁쓸한 농담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예민한 소재일테니까요.
이 영화가 던지는 농담들은 열일곱 소년의 여성성과, 땀내나는 씨름이라는 스포츠의 노골적인 대립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게이 캐릭터의 숙명이라 할 수 있는, '여자보다 더 여자다운' 성격을 지닌 동구는, 강인한 남성의 육체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여자가 되기 위해 그 남성의 자질을 써야만하죠. 그는 스포츠 장르의 전형적인 단계를 밟아가며, 땀내나는 남성의 세계의 가치를 체현해갑니다. 자신을 극복하고, 라이벌을 이겨내며, 성취감을 획득합니다. 자신을 싫어하는 동료의 인정을 받아내고, 넘어서죠.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그가 결국에는 거세시키고 싶어하는 남성의 세계입니다. 동구는 진실로 씨름을 하고 싶어하지 않아요. 우연히 주어진 재능을 사용하고 있지만, 결국 그것은 동구의 진실한 자아획득에 방해가 되는 것들입니다. 동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죠.
동구는 여자가 되기 위해 아버지의 세계에 들어섭니다. 정확히는 아버지가 금지한 세계이지요. 그는 늘 가드를 올리고, 상대방을 주시하는 것을 요구했지만, 자신의 아들이 진실로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을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단 하나의 금지로서 못박은거죠. 그러나 동구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그 세계를 돌파하기로 결심하고 실천합니다. 모범적인 외디푸스 컴플렉스 극복의 이야기지요? 하지만 이 노골적인 진부함의 함정은 동구의 동성애코드와 합쳐지며 대체로 피해집니다. 굉장히 영리해요.
사실 <천하장사 마돈나>는 너무 편안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너무 착하고 올곧아서 마음 졸일 부분이 별로 없어요. 동구의 성취를 막아서는 진실한 라이벌도 없고, 장애물도 없습니다. 씨름은, 애초에 동구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었고 이미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결심을 마친 동구에게는 별로 문제될 시련도 없습니다. 물론 동구는, 자신이 좋아하던 선생님으로부터 변태라는 소리를 듣고, 몽정을 한 후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육체에 흐느끼지만 이 아이는 그것을 넘어설 정도로 강인합니다. 문제랄 것이 없는거죠. 이 영화가 보여주는 코미디는 입맛이 아주 좋고, 각각의 캐릭터들도 표현이 잘 되어 있지만, 다소 심심한 느낌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어요. 이 영화는 코미디 영화인만큼 한 소년의 성장영화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소년에게는 성장통이라는 것이 없어요.
물론 동구에게 심각한 시련이 주어졌다면, <천하장사 마돈나>는 쉽게 신파조로 흘러갔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미덕인 가벼운 건강함, 착함이라내는 매력이 상당부분 잘려나갔겠지요. 저는 그래서, 아쉽기는 하지만 불만을 갖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이 영화의 '착함'은 너무 노골적이어서 오히려 무책임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주는 쾌감은 어쩔 수 없이 달콤하니까요. 마지막 동구가 당당히 하이힐을 신고 'Like a virgin'을 부르는 장면은 결코 세련되지도, 새롭지도 않았지만 참 좋았습니다. 어쩌면 이 느낌이 바로 <천하장사 마돈나>의 매력이라 할 수 있겠어요.
덧. 전 씨름부 주장이 참 불쌍했습니다. 왜 신은 재능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주지 않으셨나이까.
덧. 무의식적으로 사용한 '소년'이라는 단어는 제 성적인 편견을 드러내는 걸까나요.
# by | 2006/09/10 22:07 | For movie | 트랙백(2)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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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못 읽을수도 있는 부분이다. 몽정한 후에 변태소리 들었으니까.
그리고 도피 그만하셈. A4 100장의 세계가 널 기다려.
羽化님// 후후후. 괴물 아직 안내렸어요.^^ 평을 좀 짜게 한 것 같지만, 마돈나는 정말 재미있었답니다.^^
풀빛소녀님. 아빠의 캐릭터도 설득력이 강했지요. <천하장사 마돈나>의 미덕은 쉽게 악역을 안 만든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착한 영화인거죠. 한계이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