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9월 16일
기록영상으로 보는 근대의 풍경
오늘 한국영상자료원 고전영화관에 다녀왔습니다. <기록영상으로 보는 근대의 풍경>이라는 프로그램을 관람하기 위해서였죠. 제가 본 것은 대체로 1938년 이후에 만들어진 기록인 섹션2 입니다.
<당시의 조선>은 노골적인 정치선전영상입니다. 1930년대 후반의 승전국이었던 일본의 이미지가 나열되고 있지요. <조선>은 영어를 쓰는 외국인이 찍은 필름입니다. 서울의 곳곳을 찍어가며 아마도 자신의 목소리로 설명을 하고 있어요. 빨래터의 아가씨를 보며 예쁘다며 호들갑을 떠는 장면이 기억에 남네요. 그게 그럴것이, 그 아가씨(음!)는 정말 예쁜 얼굴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만국영화(주)-주간뉴스> 는 가마우지 낚시와 얼음낚시의 풍경을 보여줍니다. <조선- 우리의 후방>은 역시 노골적인 선전영상이에요. 점차 더 깊은 전쟁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일본의 상황을 알 수 있지요. 일본이 중국을 상대로 승전한 날, 경성에는 20만의 인파가 등불행진을 벌였다고 합니다. 전쟁자금이 모자라자, 국채를 발행하고, 부인들은 자신의 비녀를 뽑아 기부합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중년의 부인이 수십자루의 비녀가 담긴 주머니를 칼을 찬 군인에게 넘깁니다. 아직 어려보이는 아가씨들이, 상의를 벗은 소년병의 몸을 씻어주고 있습니다. 머리를 깎아주기도 하고. 아이들은 꽃을 바치고, 사람들은 일장기를 위아래로 흔들어요. 한복을 입은 사람도 있고 기모노를 입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동전을 모금함에 떨구고, 청년들은 산에 올라가 풀을 베어와 말 여물로 먹입니다. 나레이터는 직접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우리들은 각자 맡은 일에 충실하며 전방의 군인들을 응원하고 도와줘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대일본문화영화제작소'에서 제작한 <경성>은 거의 수필적이기 까지한 차분한 영상입니다. 화려하고 번화한 경성의 시가지에서 시작하여 경성의 주거지 풍경과 한강, 학교, 거리, 수공업장, 극장 등을 훑어요. 거리엔 교복을 입은 아이들과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가씨가, 기모노 차림의 여성과 함께 걸어갑니다. 쇼윈도 안에는 서양식 정장과 한복이 같이 걸려 있어요.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체조를 하고 있고, 건물 옥상에서는 배구(!)와 탁구를 즐깁니다. 어느 빌딩 옥상에 마련된 위락시설에서는 양복차림의 사내들이 다 같이 탁구를 즐기고 있지요. 야구장이 나오고, 골프를 즐기는 신사의 모습이 비춰집니다. 장기를 두는 하얀 두루마기 차림의 할아버지들, 한강 위에 띄운 배 안에는 술을 마시는 한량과 노래를 부르는 기생이 있습니다. 배 난간에 몸을 기댄 기생은 지금의 기준으로도 굉장히 아름다운 여성이에요. 카메라는 가끔, 자연의 풍광이나 건물의 측면을 느긋하게 바라보기도 해요. 이런 여유는 선전영상이나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띠고 있던 다른 작품들과는 구분되는 특징이지요. 1940년에 제작된 이 영상에는, 전쟁이 느껴지지 않아요. 아주 평화롭고 활기찬 번화한 도시의 이미지만 느껴집니다.
이 영상은 1940년대의 경성을 거의 모든 각도에서 바라보려한 의지가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경성의 시가지와 주거지를 모두 찍었고, 한복을 입은 사람과 교복을 입은 아이들, 일본 복식을 한 사람. 제복을 입은 경찰들 까지 모두 찍혀 있습니다. 남녀노소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나오고, 쉬는 사람들과 일하는 사람들이 병렬됩니다. 어떤 의도로 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 영상은 가끔 아름답기도 해요. 가끔씩 카메라가 보여주는 자기도취적인 순간은 촌스러운 만큼 즐겁습니다. 아무런 음성도 들어가지 않고, 정치적인 색채로부터 배제된 이 영상은, 보여주는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1940년대는 민족말살정책과 식민지조선의 착취가 극심화 되어, 도저히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암흑의 공간입니다. 우리는 김두한의 종로와, 독립군들의 만주, 김구의 상해, 테러리스트들의 지하실 등으로 그 시대를 상상합니다. 하지만 카메라가 비추는 1940년대의 경성은, 거의 활기차 보이기 까지해요. 기모노와 한복은, 거의 거리낌 없이 같이 거리를 거닐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영상이 가지는 독특한 장점이에요. 일본이 아직 승전에 취해있을때여서인가요. 선전의 의무를 잊은 이 영상은, 덕분에 즐겁습니다.
<일본실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마지막 영상은 군인의 하루를 묘사합니다. 신체검사에서 시작해서, 기상 나팔, 아침 점호, 검술 훈련과 제식훈련을 하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며 기미가요를 불러요. 재미있는 점은 이들이 식사하는 장면인데. 으아. 지금 밥공기로는 네그릇 정도는 될 법한 커다란 공기에 밥을 먹는군요. 대식을 하는 풍습이 사라진게 얼마 안된다더니. 사실인가 봅니다. 이래서야 웬만큼 쌀생산이 되지 않으면 당연히 배가 고프겠군요. 배고픔에 대한 이야기가 왜 이리 많은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하여간. 식민지 일본군대의 일상은, 현재 우리나라 군인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경례하는 국기가 달라지고, 외치는 언어가 다를 뿐이지요.
하여간. 의외로 정치적 선전영상이라는 것은 시대와 상관없이 비슷비슷한 모양입니다. 박통 시절의 새마을 운동 홍보영상과 1930년대 후반에 이루어진 일본의 선전영상은 양식상으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보여주는 이미지도 비슷해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체조를 하는 장면이라든가. 자발적으로 이어지는 성금과 후원의 장면들... 가끔 열을 맞춰 행진하는 군인의 모습들. 마치 낡은 옷을 물려입은 동생을 보는 느낌입니다.
오늘 본 것들을 잊지 않으려고 써보았는데, 이거 빼먹은 것들이 많은 것 같네요. 조금 더 떠올려보자면 <경성> 에는 회식자리 같은 풍경이 있었습니다. 정장 차림의 남성이 한복 차림의 여성에게 술을 따라요. 남자는 한 손으로 따르고, 여자는 한 손으로 받습니다. 여자는 두 손으로 잔을 받는다는 통념은 언제 만들어진 걸까나요. 아니면 일본식의 주도인건가.
할아버지들이 장기를 두는 장면이 꽤 많이 나옵니다. 신기하게, 거의 생각을 하지 않고 바로바로 두어요. 굉장히 속도가 빨라서, 속기하는 듯한 인상입니다.
당시의 교복은, 현재와 크게 다르지는 않더군요. 치마저고리를 입은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언뜻언뜻 비춰지는 1940년대의 아가씨들은, 참 고와요. <조선>에서 빨래하는 여인을 가리키며 감탄하던 미국인(아마도)이 떠오릅니다. 예. 동감이었어요. (__)
<당시의 조선>은 노골적인 정치선전영상입니다. 1930년대 후반의 승전국이었던 일본의 이미지가 나열되고 있지요. <조선>은 영어를 쓰는 외국인이 찍은 필름입니다. 서울의 곳곳을 찍어가며 아마도 자신의 목소리로 설명을 하고 있어요. 빨래터의 아가씨를 보며 예쁘다며 호들갑을 떠는 장면이 기억에 남네요. 그게 그럴것이, 그 아가씨(음!)는 정말 예쁜 얼굴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만국영화(주)-주간뉴스> 는 가마우지 낚시와 얼음낚시의 풍경을 보여줍니다. <조선- 우리의 후방>은 역시 노골적인 선전영상이에요. 점차 더 깊은 전쟁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일본의 상황을 알 수 있지요. 일본이 중국을 상대로 승전한 날, 경성에는 20만의 인파가 등불행진을 벌였다고 합니다. 전쟁자금이 모자라자, 국채를 발행하고, 부인들은 자신의 비녀를 뽑아 기부합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중년의 부인이 수십자루의 비녀가 담긴 주머니를 칼을 찬 군인에게 넘깁니다. 아직 어려보이는 아가씨들이, 상의를 벗은 소년병의 몸을 씻어주고 있습니다. 머리를 깎아주기도 하고. 아이들은 꽃을 바치고, 사람들은 일장기를 위아래로 흔들어요. 한복을 입은 사람도 있고 기모노를 입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동전을 모금함에 떨구고, 청년들은 산에 올라가 풀을 베어와 말 여물로 먹입니다. 나레이터는 직접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우리들은 각자 맡은 일에 충실하며 전방의 군인들을 응원하고 도와줘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대일본문화영화제작소'에서 제작한 <경성>은 거의 수필적이기 까지한 차분한 영상입니다. 화려하고 번화한 경성의 시가지에서 시작하여 경성의 주거지 풍경과 한강, 학교, 거리, 수공업장, 극장 등을 훑어요. 거리엔 교복을 입은 아이들과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가씨가, 기모노 차림의 여성과 함께 걸어갑니다. 쇼윈도 안에는 서양식 정장과 한복이 같이 걸려 있어요.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체조를 하고 있고, 건물 옥상에서는 배구(!)와 탁구를 즐깁니다. 어느 빌딩 옥상에 마련된 위락시설에서는 양복차림의 사내들이 다 같이 탁구를 즐기고 있지요. 야구장이 나오고, 골프를 즐기는 신사의 모습이 비춰집니다. 장기를 두는 하얀 두루마기 차림의 할아버지들, 한강 위에 띄운 배 안에는 술을 마시는 한량과 노래를 부르는 기생이 있습니다. 배 난간에 몸을 기댄 기생은 지금의 기준으로도 굉장히 아름다운 여성이에요. 카메라는 가끔, 자연의 풍광이나 건물의 측면을 느긋하게 바라보기도 해요. 이런 여유는 선전영상이나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띠고 있던 다른 작품들과는 구분되는 특징이지요. 1940년에 제작된 이 영상에는, 전쟁이 느껴지지 않아요. 아주 평화롭고 활기찬 번화한 도시의 이미지만 느껴집니다.
이 영상은 1940년대의 경성을 거의 모든 각도에서 바라보려한 의지가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경성의 시가지와 주거지를 모두 찍었고, 한복을 입은 사람과 교복을 입은 아이들, 일본 복식을 한 사람. 제복을 입은 경찰들 까지 모두 찍혀 있습니다. 남녀노소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나오고, 쉬는 사람들과 일하는 사람들이 병렬됩니다. 어떤 의도로 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 영상은 가끔 아름답기도 해요. 가끔씩 카메라가 보여주는 자기도취적인 순간은 촌스러운 만큼 즐겁습니다. 아무런 음성도 들어가지 않고, 정치적인 색채로부터 배제된 이 영상은, 보여주는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1940년대는 민족말살정책과 식민지조선의 착취가 극심화 되어, 도저히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암흑의 공간입니다. 우리는 김두한의 종로와, 독립군들의 만주, 김구의 상해, 테러리스트들의 지하실 등으로 그 시대를 상상합니다. 하지만 카메라가 비추는 1940년대의 경성은, 거의 활기차 보이기 까지해요. 기모노와 한복은, 거의 거리낌 없이 같이 거리를 거닐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영상이 가지는 독특한 장점이에요. 일본이 아직 승전에 취해있을때여서인가요. 선전의 의무를 잊은 이 영상은, 덕분에 즐겁습니다.
<일본실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마지막 영상은 군인의 하루를 묘사합니다. 신체검사에서 시작해서, 기상 나팔, 아침 점호, 검술 훈련과 제식훈련을 하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며 기미가요를 불러요. 재미있는 점은 이들이 식사하는 장면인데. 으아. 지금 밥공기로는 네그릇 정도는 될 법한 커다란 공기에 밥을 먹는군요. 대식을 하는 풍습이 사라진게 얼마 안된다더니. 사실인가 봅니다. 이래서야 웬만큼 쌀생산이 되지 않으면 당연히 배가 고프겠군요. 배고픔에 대한 이야기가 왜 이리 많은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하여간. 식민지 일본군대의 일상은, 현재 우리나라 군인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경례하는 국기가 달라지고, 외치는 언어가 다를 뿐이지요.
하여간. 의외로 정치적 선전영상이라는 것은 시대와 상관없이 비슷비슷한 모양입니다. 박통 시절의 새마을 운동 홍보영상과 1930년대 후반에 이루어진 일본의 선전영상은 양식상으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보여주는 이미지도 비슷해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체조를 하는 장면이라든가. 자발적으로 이어지는 성금과 후원의 장면들... 가끔 열을 맞춰 행진하는 군인의 모습들. 마치 낡은 옷을 물려입은 동생을 보는 느낌입니다.
오늘 본 것들을 잊지 않으려고 써보았는데, 이거 빼먹은 것들이 많은 것 같네요. 조금 더 떠올려보자면 <경성> 에는 회식자리 같은 풍경이 있었습니다. 정장 차림의 남성이 한복 차림의 여성에게 술을 따라요. 남자는 한 손으로 따르고, 여자는 한 손으로 받습니다. 여자는 두 손으로 잔을 받는다는 통념은 언제 만들어진 걸까나요. 아니면 일본식의 주도인건가.
할아버지들이 장기를 두는 장면이 꽤 많이 나옵니다. 신기하게, 거의 생각을 하지 않고 바로바로 두어요. 굉장히 속도가 빨라서, 속기하는 듯한 인상입니다.
당시의 교복은, 현재와 크게 다르지는 않더군요. 치마저고리를 입은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언뜻언뜻 비춰지는 1940년대의 아가씨들은, 참 고와요. <조선>에서 빨래하는 여인을 가리키며 감탄하던 미국인(아마도)이 떠오릅니다. 예. 동감이었어요. (__)
# by | 2006/09/16 00:33 | For movie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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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에 또 할지는 모르겠네요. 그래도 애써 발굴한 자료를 그냥 썩히지는 않겠죠? 다음달 일정이 나오길 기다려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