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03일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은 어떤 작가일까요? 이 물음은 SF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실려있는 8편의 단편 중 미래의 테크놀로지와 같은 일반적인 SF의 주제와 관련되어 있는 작품은 <이해>와 <네 인생의 이야기>, <인류 과학의 진화>와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 네 편 뿐입니다. 적용하는 기준에 따라 숫자는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겠네요. 어쨋거나 테드 창은 직접적으로 미래 테크놀로지에 의지하는 SF 작가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이 소설들은 SF가 될 수 있을까요? <바빌론의 탑>은 구약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환상적인 이야기이고, <영으로 나누면>은 어느 수학자의 이야기입니다. <일흔두 글자>는 호문클루스와 언어의 힘에 관한 이야기이며, <지옥은 신의 부재>는 카톨릭적인 '기적'에 관한 패러디에요. 여기에는 시간여행도, 첨단 테크놀로지도, 외계인도, 어떤 SF적 기호들도 나타나지 않아요.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성격을 설명하기 위해 사변 소설이나 대체역사물이라는 용어를 꺼내겠군요. 뭐, 아무래도 좋습니다.
테드 창은 일종의 평행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에 능한 작가인 것 같습니다. 그가 상상해내는 세계는, 우리의 과거와 미래에 있는 특정한 시공간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었던, 혹은 우리가 획득할 수 있었던 수 많은 가능성 중 하나입니다.
바빌론의 거대한 탑이 실제로 하늘에 닿았다면 어땠을까요? 그들이 탑을 쌓았던 것이 구약에서 말하는 것 처럼 신에게 도전하는 오만한 인간의 힘이 아니라, 신에게 다가가려는 신앙자들의 기도였다면? <일흔두 글자>에서 처럼,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과학체계가 발달한 세계가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옥은 신의 부재>는 신의 기적이 물리적으로 현현하는 세계에 관한 이야기이구요. 이 단편들에서 테드 창은 현재로부터 이어져나가거나 현재로 이어지는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지칭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었던 수많은 차원과 세계의 하나를 묘사합니다.
우리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세계를 엿보는 재미는 상당합니다. 저는 안전하게 SF라는 장르 안으로 들어가는 네 작품보다, 아슬아슬하게 장르의 경계에 서 있는 네 편의 단편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물론 테드 창이 <네 인생의 이야기>를 쓰며 상상해내는 외계생명체의 문명과 사고체계는 흥미롭지만, 그것이 루이즈와 앨리스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와 구체적으로 얽히는 느낌은 그리 매끄럽지 않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르귄과 비교하게 됩니다. <빼앗긴 자들>에서 쉐벡이 겪는 모험과 그의 연구는 얼마나 동질적인 고민 위에 기초해 있었던가요?
테드 창은, 장르의 경계에 있을 때 가장 그 이야기가 힘을 얻는 것 같아요. 물론 이러한 소설을 언급하며 장르의 경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지는 않겠죠. SF라는 장르를, 미래와 과학기술, 외계인과 같은 키워드들에 가둘 수 있었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버렸으니까요. 편의상 붙여주는 명명이긴 하지만, 테드 창은 사변소설을 쓸 때 훨씬 맛깔스러운 작가라는 평을 해두기로 할까요. 공학자 출신이라는 그의 이력을 생각해볼 때, 이러한 제 느낌은 상당히 아이러니한 것 같습니다. 물론 이 한 권의 책으로 테드 창을 판단할 수는 없겠죠.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실린 작품들은 대개 고른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가 호감을 느낀 <바빌론의 탑>이나 <일흔두 글자>, <지옥은 신의 부재>는 미래나 과학기술과는 큰 상관이 없는 작품이었습니다만,<이해>, <네 인생의 이야기>나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다큐멘터리>가 딱히 덜 흥미로운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구요. 완전히 수학자에 관한 단편이었던 <영으로 나누면>도 자신만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테드 창이 어느 방향으로 특화된 작가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다음 작품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이르고 나니, 지금까지 발전해온 온갖 SF의 가지들을 세련되게 다듬은 올라운드 플레이어라는 느낌이 강하네요.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다음 책의 출간을 기다려 보아야 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성격을 설명하기 위해 사변 소설이나 대체역사물이라는 용어를 꺼내겠군요. 뭐, 아무래도 좋습니다.
테드 창은 일종의 평행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에 능한 작가인 것 같습니다. 그가 상상해내는 세계는, 우리의 과거와 미래에 있는 특정한 시공간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었던, 혹은 우리가 획득할 수 있었던 수 많은 가능성 중 하나입니다.
바빌론의 거대한 탑이 실제로 하늘에 닿았다면 어땠을까요? 그들이 탑을 쌓았던 것이 구약에서 말하는 것 처럼 신에게 도전하는 오만한 인간의 힘이 아니라, 신에게 다가가려는 신앙자들의 기도였다면? <일흔두 글자>에서 처럼,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과학체계가 발달한 세계가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옥은 신의 부재>는 신의 기적이 물리적으로 현현하는 세계에 관한 이야기이구요. 이 단편들에서 테드 창은 현재로부터 이어져나가거나 현재로 이어지는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지칭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었던 수많은 차원과 세계의 하나를 묘사합니다.
우리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세계를 엿보는 재미는 상당합니다. 저는 안전하게 SF라는 장르 안으로 들어가는 네 작품보다, 아슬아슬하게 장르의 경계에 서 있는 네 편의 단편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물론 테드 창이 <네 인생의 이야기>를 쓰며 상상해내는 외계생명체의 문명과 사고체계는 흥미롭지만, 그것이 루이즈와 앨리스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와 구체적으로 얽히는 느낌은 그리 매끄럽지 않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르귄과 비교하게 됩니다. <빼앗긴 자들>에서 쉐벡이 겪는 모험과 그의 연구는 얼마나 동질적인 고민 위에 기초해 있었던가요?
테드 창은, 장르의 경계에 있을 때 가장 그 이야기가 힘을 얻는 것 같아요. 물론 이러한 소설을 언급하며 장르의 경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지는 않겠죠. SF라는 장르를, 미래와 과학기술, 외계인과 같은 키워드들에 가둘 수 있었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버렸으니까요. 편의상 붙여주는 명명이긴 하지만, 테드 창은 사변소설을 쓸 때 훨씬 맛깔스러운 작가라는 평을 해두기로 할까요. 공학자 출신이라는 그의 이력을 생각해볼 때, 이러한 제 느낌은 상당히 아이러니한 것 같습니다. 물론 이 한 권의 책으로 테드 창을 판단할 수는 없겠죠.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실린 작품들은 대개 고른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가 호감을 느낀 <바빌론의 탑>이나 <일흔두 글자>, <지옥은 신의 부재>는 미래나 과학기술과는 큰 상관이 없는 작품이었습니다만,<이해>, <네 인생의 이야기>나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다큐멘터리>가 딱히 덜 흥미로운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구요. 완전히 수학자에 관한 단편이었던 <영으로 나누면>도 자신만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테드 창이 어느 방향으로 특화된 작가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다음 작품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이르고 나니, 지금까지 발전해온 온갖 SF의 가지들을 세련되게 다듬은 올라운드 플레이어라는 느낌이 강하네요.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다음 책의 출간을 기다려 보아야 겠습니다.
# by | 2006/10/03 19:54 | For fiction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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