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를 보고 처음 드는 생각은, 이 영화가 수많은 재난영화, 혹은 전염병을 다루는 이야기들과 유사하다는 생각입니다. 새의 습격은 우리가 예측할 수도 없었고, 이유도 알 수 없는 갑작스럽고 끔찍한 재앙입니다. 마을은 고립되고 그 혼란의 중심에서 사람들은 공포에 질리고 죽어나가지요. 외부에서는 사건의 심각성을 제대로 모르고 있습니다. 확실한 유사성은 없지만, 저는 까뮈의 <페스트>가 떠오르더군요. 자그마한 징조에서 시작하여 어마어마한 재앙으로 퍼지는 호흡은 확실히 저에게 익숙한 어떤 것들이에요.

<새>는 우리 곁에 있는 '자연'으로부터 습격을 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조류학자가 영화속에서 길게 인용하고 있듯, 자연 상태의 새는 인간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새들은 단체행동을 할 만큼 두뇌가 발달하지 못했고, 하물며 서로다른 종의 새들이 모이는 일 따위는 절대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 속의 새들은 그래요. 멜라니가 캐시의 학교 앞에서 목격하는 장면을 보세요. 학교 앞의 놀이기구에 차례로 새들이 모여듭니다. 처음에는 두 마리, 그 다음은 수십 마리. 마침내 수백마리의 새가 운집한 놀이터는 당장이라도 폭발해버릴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가득합니다. 이 장면은, 맹수나 괴물의 습격과는 전혀 다른 공포와 불쾌감을 만들어 냅니다. 일상과 자연의 어긋난 상태, 있을 수 없는 초자연적인 일이 들이닥친 것입니다.

<새>의 첫 장면이 온갖 새들이 질서정연하게 전시되어 있는 펫샵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상황이 주는 느낌은 더욱 기괴해집니다. 자연상태라면 절대 어울릴 일이 없는 새들이 한군데 모아있다는 비자연적인 면모는, 샌프란시스코와 보데가 마을 둘 다  다를게 없습니다. 두 상황에 있어 다른 것이 있다면 바로 인간의 통제입니다. 인간의 통제 없이도 한군데 모인 새들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억압된 것의 귀환'이라 할 수도 있겠어요.

히치콕의 새들은 끝까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남습니다. 새들의 습격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고, 아무런 목적도 찾을 수 없습니다. 새장안에 갇혀있는 새들에게도, 세계는 이해할 수 없고 이유도 없는 폭력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 기도 하네요.

<새>의 이야기는, 멜라니가 겪는 비현실적인 모험이기도 합니다. 펫샵에서 미치와 장난스러운 만남을 한 멜라니는, 탐정물의 한 장면과도 같은 모험에 뛰어들지요. 그녀가 자신의 목적을 완수한 시점에서, 새들의 습격은 시작됩니다. 멜라니는 자신이 시작한 장난스러운 모험에서,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재앙속으로 걸음을 옮겨갑니다. 그 와중에, 멜라니는 미치의 사랑을 얻고, 캐시의 호감을 사며, 리디아를 소외의 공포에서 이끌어냅니다. 멜라니의 모험과, 그녀와 브레너 가족 사이에서 일어나는 인간적인 드라마는 별개의 것처럼 보이면서도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불안한 공생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좀더 분석을 하면 그럴듯한 대답 몇 개가 나올수도 있겠지만 그만두어야 겠습니다. 이에 대해서라면 많은 사람들이 아주 많은 이야기를 했을테니까요. 저는 전혀 다른 템포의 화음이 아슬아슬하게 어우러지는 이 재미가,아주 만족스러웠다는 점만 말하고 싶습니다.

 

by 이녘 | 2006/10/05 18:55 | For movi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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