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11일
지구를 지켜라!

병구의 아버지는 탄광사고의 후유증으로 자살했습니다. 병구의 어머니는 유제화학에서 일하던 중, 모종의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었구요. 병구가 사랑하던 여인은 공장 안에서 일어난 소요 중 공장장에게 두들겨 맞아 죽었습니다. 병구는 마침내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불행이 외계인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는 어느모로 보나 1급의 영화는 아닙니다. 이야기는 거칠고 산만하며 여기저기 삐져나갈 곳을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다소 엉성한 편집 아래 부글부글 끓고 있는 분노는 아주 강렬해요. 이 영화는 여러모로 박찬욱의 사실상 처녀작이자 신하균의 주연작이기도 한 <복수는 나의 것>을 닮았습니다. 부조리하고 더러운 시스템에 대한 분노로 미쳐가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이니까요.
영화는 코미디와 호러, 사이코 스릴러의 경계를 가볍게 넘어다닙니다. 그 조합은 결코 매끄럽지 않지만 고유의 강렬한 질감이 어디에나 살아있어요. 병구가 강사장을 고문하는 장면은 아주 짓궂은 농담처럼 느껴집니다. 눈이 질끈 감겨질 정도로 잔인한 상황이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이 웃겨요. 강사장과 병구의 심리적인 대결은 어떤가요? 영화가 끝나기 전까지, 병구는 혼란의 정중앙을 횡단해 나갑니다. 그는 자신의 세계가 진실이라는 증언을 받아내지만, 반대로 자신이 미쳐있다는 고통스러운 자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막 자신의 광기를 부정할 준비를 끝마쳤을 때, 강사장은 자신이 살아나기 위해 병구를 다시 잘 만들어진 환상 속으로 밀어 넣어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맛이 아주 더럽습니다. 내가 미쳐가고 있을 때 무엇을 하고 있었냐는 병구의 절규는 우리를 아주 불편하게 만들어요. 그 순간의 병구는 자신의 광기와 대면하고 진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병구의 거의 모든 불행의 원인인 강사장은 병구가 도피했던 세계로, 다시 병구를 집어던져요. 그리고 살아남습니다.
영화는 여기에서 끝나는 게 좋았습니다. 강사장이 정말 외계인이었음이 밝혀지고, 지구가 파괴되는 결말은 <지구를 지켜라>가 가지고 있었던 장점의 대부분을 스스로 뭉개버립니다. 강사장이 정말 외계인일수도, 아닐수도 있는 어정쩡함이야말로 병구의 분노와 불행의 핵심이었단 말이에요. 이 영화가 노골적인 사회비판영화로 보이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을까요? 아니면 SF라는 장르에 대한 작가 나름의 농담인걸까요. 어느 쪽이던지 썩 마음에 드는 선택은 아닙니다.
아까 말했듯이 <지구를 지켜라>는 1급의 영화는 아닙니다. 이 영화가 가진 고유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흥행에서는 별 재미를 보지 못한 이유는, 이 영화가 그리 매끄럽게 빠진 상품은 아니라는 점에 있을 수도 있겠어요. 특수효과는 조잡하고, 이야기의 밀도는 그리 꽉 짜여지지 못한 편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강렬한 정서는, 스타일이라는 그릇을 견디지 못하고 넘쳐 흐릅니다. 어머니가 하늘에서 뿌려주는 알약의 이미지나, 모형우산에 관자놀이가 뚫린 채 비를 맞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려보세요. 병구의 불행은 정말 고통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저는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어요.
# by | 2006/10/11 23:54 | For movie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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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는 다시봐도 귀엽더라구요 ㅋㅋ
191970님// 예. 심각한 농담이 이 영화의 재미죠. 저도 그 점에 반했는걸요.
세온님// 저는 거칠고 불편한 감정이 희석될까봐 두 번 보기 싫어해요. 확실히 이 영화도 두 번째 보니까, 여유가 생기네요. 전에는 보이지 않던 단점들도 눈에 들어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