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14일
전함 포템킨

영화가 정치적이지 않은 예술이 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닙니다. 아뇨. 이 말은 정확하지 못하네요. 영화가 정치와 상관 없어도 괜찮은 예술이 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닙니다. 영화라는 대량적인 매체의 성격은, 참으로 20세기적이었습니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손을 잡고 달려가던 20세기에 번영한 영화는, 필연적으로 저 두가지 논리를 받아들였던 거죠.
세계대전의 무기는 잠수함과 폭격기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선전하고 대변할 영화를 제작했지요. 미국은 각종 거대 영화사와 제휴하여 국책홍보영화를 제작했습니다. 이 때 만들어진 전쟁영화의 전통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스파이 영화가 만들어진 것도 이 시기였다고 합니다. 독일 나치즘의 홍보용으로 제작된 <의지의 승리>같은 작품은 아직까지 다큐멘터리의 고전 취급을 받고 있지요. 이탈리아는 아예 국내에 있는 모든 영화산업을 국유화하여 통제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명백히 러시아의 정책을 모방한 것이었죠.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이래로, 모든 영화제작은 국가의 통제 아래 이루어지고 있었으니까요. <전함 포템킨>과 같은 고전은 바로 이렇게 태어났습니다.
저는 한동안 정치적인 영화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정치와 예술은 분명히 반대되는 지점에 서 있는 두 항처럼 보였거든요. 특히 공식 이데올로기와 예술의 악수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부정을 통한 반항이라는 점에서, 좌파 이데올로기와 예술은 손을 잡을 수도 있었습니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예술적'으로 아름다운 소설입니다. 하지만 국방부 홍보영화나 청소년 성교육 드라마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거죠.
하지만 따지고 보면 예술은 늘 정치에 민감했습니다. 정치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린다면, 역사라는 단어로 바꾸어볼까요. 예술은 자신이 모방하는 역사의 순간에 언제나 민감했습니다. 우리는 한동안 브라운관을 가득 메웠던 붉은 물결과 우렁찬 응원가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이 붉은 이미지들은 정치적이지 않을까요? 축구라는 스포츠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요? 그렇다면 베를린 올림픽을 영화화 했다는 레니 리펜슈탈의 <민족의 제전>은 어떨까요?
우리가 노골적인 정치의식으로 무장한 옛 예술작품들에 생리적인 거부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 작품들이 담고 있는 정치의식들이 이제는 너무 낡았거나, 그 당시처럼 자연스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설명 없이도 자연히 느낄 수 있었던 공포와 분노, 희망들이 더 이상 선험적인 배경을 제시해주지 못하는거죠. 지금 60~70년대 반공영화를 보면서 느끼게 되는 우리의 지루함과 거부감은 바로 이러한 사정 위에 서 있을 것입니다.
<전함 포템킨>은 러시아 혁명이 시작된 제정 러시아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우리같이 오랜 세월을 반공 이데올로기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도, 이 영화의 배경은 참으로 낯선 것입니다. 그 결과, 이 영화가 원래 가지고 있는 '예술적'인 성향들은 고스란히 남습니다. 무성영화 특유의 과장된 제스쳐와 선전영화의 격앙된 감정이 합쳐지자 굉장히 에너지가 넘치는 장면들이 탄생합니다. 특히 '오데사 계단' 장면이 뿜어내는 힘은 아주 무시무시하죠.
하지만 우리가 온전히 이 영화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군인들이 민중봉기에 가담해야 한다는 영화 내의 전제는 2006년도의 한국인이 이해하기에는 이념적, 시간적인 격차가 너무 커요.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노골적인 정치의식은 모두 죽어버립니다. 남는 것은, 그 유명한 몽타쥬 기법으로 만들어진 분노와 혼돈의 표현들이에요.
정치적인 영화는 계속 만들어질 것입니다. 영화산업과 국가가 노골적인 유착관계를 드러내던 시절이 지나갔다고 해서 정치적인 영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지금도 강우석 같은 감독이 밥을 먹고 사는 것은 아직도 정치적인 영화가 먹히기 때문입니다. 아뇨. 사실 정치적인 것 만큼 재미있는 것은 없죠. 007 시리즈의 장수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니깐요. <전함 포템킨>이나 <의지의 승리>와 같은 작품들도, 만들어지던 당시에는 정치성과 대중성이 더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영화의 정치성은, 어느 부분 영화의 재미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을 부정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자신이 다루고 있는 정치성에 대해 확실히 의식하고 있는 영화를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전함 포템킨>처럼요.
# by | 2006/10/14 20:51 | For movie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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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영화라고 할 수도 있고 다르게 보면 사실주의 영화(반감상주의)라고 할 수도 있죠. 당시 만연했던 감상주의와 낭만주의의 반작용으로 탄생한 녀석이 사실주의라. 문제는 사실주의의 객관성이란게 이데올로기를 흡수할 가능성이 많았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