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일을 좋아할 수 없는 이유

 
저는 지금 정성일의 홈피에서 예전 영화평들을 뒤져보고 있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키노 시절에 올렸던 글이지요. 이 사람이 키노의 권두에 썼던 글들은 영화의 미래에 대한 소명의식과 비판정신이 철철 넘쳐흘러요. 영화의 상업논리와, 시대에 직면하는 예술로서의 소명, 자신의 정치적 입장, 그리고 영화를 진지한 예술로 다루기 위한 평론가로서의 자신의 사명에 대해서 직간접적으로 고민한 흔적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고민들은 참을 수 없이 진지해요. 제가 못견뎌하는 것은 바로 그 대목입니다.

진지하고 세련된 비평을 보고 싶다면, 저는 당장 '문학과 사회'나 '문학동네'를 펴들 것입니다. 영화연구나 영화비평의 테크닉은 문학비평의 그것을 따라오지 못하는 편이니까요. 세련된 영화연구가 보고 싶다면 슬라보예 지젝을 읽으면 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제가 즐기고 싶은 것은 예술로서의 영화나, 사명으로서의 영화가 아니라, 즐거움으로서의 영화입니다. 저는 즐거움을 말하는 비평을 보고 싶습니다.

제가 키노시절의 정성일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그래서일 것입니다. 저는 이 사람의 진지한 연설이 거의 우스꽝스러워보이기 까지 해요. 이 사람의 고민은, 이미 백여년 전 부터 우리 문학이 가져왔던 고민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혹은 파시즘 사회에서, 혹은 또한 어떤 사회에서 내가 사랑하는 예술이 나아가야할 방향은 어디인가에 대한 의문. 이것은 문학을, 혹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당연한 물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참을 수 없이 낡은 것이기도 합니다. 결론은 늘 나와 있어요. 우리는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고, 그것을 막을 수도 없습니다. 반항이란, 바로 견디는 것이지요. 그러한 절망적인 인식 사이에, 아직도 즐거움을 주고 있는 문학, 혹은 영화라는 불가사의한 현상에 대한 만족은 멀리 사라지고 맙니다.

생뚱 맞지만 듀나를 이야기해볼까요. 제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사람이 정성일이나 김영진보다 글을 잘 쓰거나, 뛰어난 해석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닙니다. 듀나에게는 야심이 없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이유일거에요. 이 사람에게는 영화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사명감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영화라는 놀이터에서, 새로 갖게 된 장난감을 예전에 가지고 놀던 장난감과 비교해가며 얼마나 재미있는가를 분석하려들죠. 듀나는 이렇게 자신이 만들어놓은 작은 놀이터에서 뛰놀고 있을 때가 가장 신나보입니다. 또 빛나고 있구요.
언뜻 들으면 이 사람에 대한 비난같아 보이지요? 하지만 아닙니다. 저는 이 사람의 작은 세계가 정말 마음에 들어요. 듀나가 자신의 세계를 벗어나 무언가 의식을 내비치려 할 때마다, 듀나의 글은 한 없이 위태로워집니다. 듀나가 겪었던 몇몇 필화들은 다 그 때문이지요.

결론적으로 제가 정성일을 좋아할 수 없는 이유는, 저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영화의 이방인이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영화의 소명과 미래와 같은 주제는, 한국 컴퓨터 게임의 소명과 미래와 같은 주제만큼이나 아득하고 심심하게 느껴지니까요. 하지만 그런만큼, 저는 즐거움을 말하고 싶습니다. 영화를 보는 즐거움. 영화평을 읽는 즐거움. 이것은 정성일이 저에게 가르쳐주지 못한 것입니다.

 

by 이녘 | 2006/10/21 10:50 | For movie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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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스바루짱 at 2006/10/21 11:09
적어도 정성일에 관심은 있으시군요. 정성일의 글은 씨네21에 실리는것만 간간히 읽는정도지만 평을 위한 평을 쓰고 있음은 늘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듀나의 야심 이야기는 예전의 듀나를 아신다면 지금의 듀나는 다른사람이 아닐까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Commented by 액션가면ケイ at 2006/10/21 11:15
그래요, 그래서 저도 정성일이 무겁고 가끔 불편하게 느껴졌더랬습니다.
듀나에 대한 이녘님의 생각, 공감이 가는군요.
문득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정영일이란 사람이 떠오릅니다.
Commented by piri at 2006/10/21 12:16
정성일이 어느 인터뷰에선가, 자신은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신봉한다고 스스로 밝혔대요. 맙소사. 영화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운명의 굴레처럼 느껴지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 이후로는 그 순수하고 진중한 열정이 좋아졌습니다. :) 예쁘고 안쓰러운 아이를 보는 기분이랄까요.
Commented by 이녘 at 2006/10/21 12:38
스바루짱님// 제가 듀나를 알게 된 것이 5년이 안 되었으니...피시통신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듀나는 잘 모르겠네요. 아님 그 이전인가요? ^^

액션가면ケイ님// 아이쿠. 저는 정영일 세대도 아니어요.^^ 사실 영화를 좋아하게 된 것도 얼마 안 되어서 옛날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참 할 말이 없답니다.

piri님// 그건 정말 맙소사네요. 성실한 좌파 비평가들은 이게 문제라니깐요(__) 그런데 정성일이 과연 좌파 비평가이려나요. 으음.
Commented by 이카루스 at 2006/10/23 16:12
그래도 평론가 정성일 님의 영화에 대한 영향력은 큽니다. 저도 그 부분은 인정합니다.
가끔은 상업성과 만나는 교차점이 있기도 하지만...
(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아무튼 정성일 님의 평론은 읽기에 너무 어려워요...ㅡㅡ"
Commented by piri at 2006/10/25 20:35
그 대답은 무슨 뜻인지 납득이 안가네요- 아무튼, 가디건은 잘 어울리실 거예요!
Commented by 스카이워커 at 2006/10/25 20:48
생각지도 못했던 삐딱선을 탄 평을 들을 때면 새로운 시선 자체가-그 방향이 아주 엉뚱한 것도 아니고 말이죠-즐겁습니다. 키노에 쓰여진 말은 무슨 말인지 몰라서 태반을 그냥 흘렸었고;; 하핫
Commented by ALEXKID at 2007/04/09 08:44
지나가다 들립니다. 공감하구요. 저는 그냥 정성일씨가 키노 시절에 말입니다. 그 말도 안되는 현학으로 치장하여 (실제로 텍스트를 진짜로 읽었는지가 가장 궁금하죠. 특히 들뢰즈 시간-이미지, 라는 식의 중간에 말 이음표 넣는 글쓰기는 가장 역겹습니다) 글을 쓸 때 말입니다. 최소한 '프랑스 문화원' 이나 '독일 문화원'에 대한 소개만 해줬으면 어땠을까 싶네요. '프랑스 문화원 100배 즐기기' 뭐 이런 식의 기획 기사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럼 아마도 그가 그렇게도 중학교 시절에 봤다고 자랑해쌓는 고다르 아저씨의 <기관총 부대>를 저도 볼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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