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28일
세번째 시선

지난 금요일, 시네큐브에서 보고왔습니다. 최근에 가는 영화관이라고는 시네큐브 밖에 없군요. 곧 <방문자>를 보러갈테니, 당분간 시네큐브와의 인연은 계속 이어질 것 같습니다.
아시겠지만 시선 시리즈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영화들입니다. 영화는 국내 인권현실에 관학 직간접적인 비판을 다루고 있어요. 이는 <세번째 시선>의 힘이자 한계입니다. 정치적 의도가 과도하게 노출된 영화는 해석의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니까요.
<잠수왕 무하마드>는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이 연출한 영화입니다. 무하마드는 유독물질로 가득한 공장에서 일하는 동남아 출신 노동자입니다. 얇은 마스크라는 허울뿐인 보호구를 벗어재낀채 일하는 무하마드는, 한국인 관리자들에게 온갖 폄하와 멸시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하마드에겐 굳이 숨기지 않은 비밀- 능력을 가지고 있었어요. 고향에서 무하마드는 특이한 능력으로 아주 유명한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물 속에 머물수 있는 어마어마한 잠수능력이 바로 그것입니다. 말도 안 되죠?
예. 말도 안됩니다. <잠수왕 무하마드>는 말도 안 되는 현실을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뚫고 나가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단속을 피해 도망간 무하마드가, 목욕탕 아래에서 마주치게 되는 바다의 환상은 이 영화가 주고 있는 위약입니다. 늘 바다를 꿈꾸고, 바다의 생물을 사랑하는 무하마드는 잠시 도망친 곳에서 그 환상의 끄트머리를 거머쥘 수 있을 뿐입니다.
<소녀가 사라졌다>의 선희는 소녀가장입니다. 그녀는 짝사랑하는 오빠가 미국으로 유학에 가게되자, 영상편지를 받기 위해 캠코더를 선물할 생각을 하게됩니다. 선희는 매일매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돈을 모아가게되요. 하지만 캠코더는 너무 비싸고 돈은 모으기 힘겹습니다. 선희는 원조교제라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생각해내지만,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영화는 예상 밖의 결말을 향해 치닫게 되요.
이 영화는 뾰로통하게 삐진 소녀를 보는 것 같습니다. 선희는 70년대 영화들이 만들어낸 불쌍한 아이가 아닙니다. 선희는 자신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있고 그것을 굳이 비관하지 않습니다. 어려운 처지 속에서도,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비싼 선물을 건낼 여유를 지닐 줄 아는 사람입니다. 물론 철이 없기도 해요. 그녀가 캠코더를 마련하는 동안, 집 안의 전기는 끊어지고 그것은 결국 선희의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하게 되니까요.
<소녀가 사라졌다>는 <세번째 시선>중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영화입니다. 선희에게 향하는 형식화된 친절과, 진실로 필요한 것들에 대한 외면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자동화된 동정심에 대한 회의를 불러옵니다. 선희는 동정이 없어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동정하는 모든 행위들은 기만이에요. 그것은 가장 동정처럼 보이지 않는 행위 속에서도 그렇습니다. 물론 야생곰의 포효로 이어지는 설화적인 결말은 조금 사족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드러나는 사람들의 허위는 통쾌하지만, 이 영화가 지닐 수 있었던 깔끔함을 상당부분 뭉개버렸거든요.
<험난한 인생>은 어느 꼬마아이의 생일파티에 생긴 에피소드를 다룹니다. 경수는 자신의 생일파티에 영어학원 선생님의 딸을 초대해요. 그런데, 문제는 이 아이가 흑인이라는 것. 영어학원의 선생님이 모두 백인이라는 말을 '믿고' 경수를 보냈던 경수 어머니는 혼란에 빠져들게 됩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불쾌해요. 그게 이 영화의 목적이겠지만요.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흑인에 대한 멸시와 편견은 너무 노골적이라 우리의 감상은 여기서 끝날 수 밖에 없습니다. 경수의 순진한 박애가 어떻든 상관없어요.
김곡,김선 감독의 <BomBomBoom>은 어느 고등학교의 호모 드러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진짜 호모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것은 동성애가 아닙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소수에게 가해지는 아이들의 폭력이 이 이 영화의 진짜 주제죠. 마지막 장면에 이르르면, 아이들의 폭력과 두 소년의 반항은 유쾌한 전도를 이루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식의 전도가 과연 얼마나 효과적이고 의미있는 시선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사실, 학교의 아이들이 가하는 '동물원'이라는 린치도 조금 의심이 가요. '따'를 당하는 아이를 교실 안에 홀로 가둬놓고 밖에서 아우성치며 야유하는 행위인데...
이 야비한 린치는 아이들이 생각해내기엔 너무 영리합니다. 언제부터 우리나라의 아이들이 주먹 대신, 고립의 폭력을 알아채기 시작한 건가요. 저는 이것이 어른이 고안해낸 시선이라 생각해요. 그게 아니라면 진짜 암울한거죠.
<당신과 나 사이>는 흔하디 흔한 부부싸움을 다룹니다. 물론 그 흔한 부부싸움 안에도 여러 단계의 억압과 폭력이 있다는 사실은 당연하겠죠. 마지막 농담이 재미있기는 하지만, 그리 호감이 느껴지지는 않는 작품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 어떡해>입니다. 정진영씨가 출연했네요. 물론 정진영씨의 연기는 울림이 크고, 주인공의 사정은 딱하지만. 정치적으로 노골적인 영화는 오히려 그 힘을 잃습니다.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지 너무 뻔히 보이거든요. 이 영화가 지향하고 있는 것은 정치적 선전과 신파의 조합입니다. 저는 주인공이 이렇게까지 일방적으로 폭력을 당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는 약자이지만, 그의 이야기는 지나친 약자를 다룹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사실, 그리 매력적이지 않아요. 얼마나 정치적으로 공정하느냐와는 별개로요.
하여간, <세번째 시선>은 볼 만한 영화입니다. 이 정도 퀄리티의 영화를 계속 만들어준다면, 바랄게 없겠어요. 요즘은 정말 힘들게 짬을 내서 영화관에 가는데, 한번 배신당하면 그 충격이 큽니다. 아무쪼록 <방문자>도 좋은 영화였으면 좋겠어요.
# by | 2006/11/28 10:50 | For movie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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