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자

 



호준은 모 대학 영화학과 강사입니다. 대학 시간강사라는 것이 다 그렇듯, 그는 불안한 고용현실에 걱정하고 있지요. 그를 둘러싼 현실은 결코 산뜻하지가 않습니다. 여기저기 이력서를 써보고 있는 것 같지만 교수임용은 힘들고, 아내와는 이혼했습니다. 그의 삶은 불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당당히 중간선거에서 승리한 조지 부시 미 대통령도 싫고, 800만 비정규직 노동자를 내팽개치고 있는 이 사회도 싫죠. 학생운동 좀 했노라고 하는 친구들이 동창회에서 주식 얘기나 꺼내고 있는 것도 싫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생일에 창녀를 사고 있는 자신도 싫습니다. 예. 그의 인생은 온통 싫은 것 투성이인듯 합니다.
계상은 (아마도) 여호아의 증인이라는 소수종파의 교인입니다. 대학원생으로 보이는 그는 1년동안 가르쳐온 고3 여자학생의 부모님에게 일방적으로 해고되었습니다. 자신의 종교를 숨기고 아이를 가르친게 비양심적이라는 이유죠. 하지만 얼굴부터 선해보이는 그는 도무지 화를 낼 줄 모릅니다. 그저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비뚜루 보는 세상이 조금 원망스러울 뿐인가 봅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러한 계상이 전도를 하러 호준의 집에 찾아가며 시작합니다. 두번째 방문에서, 호준은 자신의 욕실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죠. 목욕탕 손잡이가 고장나서 열리지 않고 있었거든요. 추운 겨울이니 체온은 내려가서 쓰러진 모양인데, 그러면 계속 온수 속에 몸을 담구고 있으면 되지 않나요? 하여간 여기는 잘 납득이 안 되었답니다.계상은 문 바깥으로 새어나오는 사람 살리라는 소리에 집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손잡이를 부셔 호준을 구해내지요. 그리고, 이 어울리지 않는 두 남자의 기묘한 우정은 시작됩니다.

<방문자>는 딱 386세대의 감독이 현재를 바라보며 만들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격렬한 학생운동시기를 거치고, 한편으로는 학업에 매진한, 이제 중년으로 들어선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보니, 뜻을 함께 했던 동지들은 죄다 소비자본주의의 당당한 신민으로 거듭나 있습니다. 세상을 뒤덮는 부조리는 무엇하나 해결된 것이 없고, 자신은 그 부조리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호준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막연한 애정은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노동자인 자신의 처지에서 우러나오는거죠. 대학강사야말로 고용불안을 떠안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던가요. 그리고 영화감독은요?

하지만 이 영화는 결코 자신 세대의 체험을 미화하지는 않습니다. 그러기에 호준은 지나치게 억울한 인물이지요. 깡마르고 불만이 가득해보이는 인상의 호준은, 결코 정의감으로 움직이는 인물이 아닙니다. 그를 움직이는 동인은 울분과 억울함이에요. 그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까닭모를 울분과 연민, 자존심에 의한 반발 사이에서 방황합니다. 아무 일도 아닌 것에 화를 내고 억지를 부리지요. 스스로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는거죠. 비참하거든요.

이러한 호준의 인생은 계상을 만나며 변화를 겪게 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시련을 그저 주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살아가는 계상은, 호준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입니다. 그의 선한 인간미에 반한 것이면서도, 호준은 계상의 모든 것이 답답하게 느껴지지요. "주님의 뜻" 때문에 두 사람은 만났지만, 두 사람은 참으로 안어울립니다. 계상의 말처럼 "너무 다른 사람"이에요. 투덜거리는 사람과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어울릴 수 있겠어요?
하지만 호준은 비정상적이리만큼 계상에게 집착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계상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어서만은 아닐꺼에요. 호준은 외로운 것입니다. 옛 친구들은 만나면 마음만 상할 뿐이고, 아내와는 이혼했죠. 자식에게는 비참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일부러 피하고 있습니다. 계상이라는 낯설고 생소한 인간은, 그에게 새로운 기회인거죠. 호준은 계상을 끌어당기고 그를 변화시키려 합니다. 그는 부조리를 용납하는 신에 대해 끊임없이 불만해요. 하지만 계상은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시도는 필연적으로 실패하게 되요. 변하는 것은 오히려 호준입니다. 마지막에 와서 호준은, 더 부드러운 사람이 됩니다. 자신의 뜻을 꺾지 않으면서도 세상과 웃으며 지내는 방법 한가지를 깨달은 거죠.

<방문자>는 기본적으로 코미디입니다. 호준의 일상에 대한 응시는 불편하지만, 또 꽤 웃겨요. 386세대의 일상에 대해 결코 호의적이지는 않은, 또한 냉소적이지만도 않은 시선은 불편하면서도 재미있는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이 영화의 힘은 호준이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울분과 억울함이 어정쩡한 거리에서 보여지는 것에 있습니다. 그 거리가 너무 가까워질 때, <방문자>는 지루해져요. 거의 연설이나 다름없는 몇몇 장면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참 보기 힘겨웠어요. <방문자>가 결코 정치적으로 순진한 영화가 아니라는 점은 잘 알겠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노골적일 필요는 없는거죠. 저는 이 영화가, 감독의 정치적 야심 때문에 많이 가난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방문자>는 목소리의 억양만 잘 조절했다면 훨씬 좋은 영화가 될 수 있었단 말이에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덧. 전 사실 <방문자>가 그리고 있는 소수종파의 신도들에 대한 묘사에 동조하기 힘들었어요. 저에게도 그 소수종파에 소속된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으음. 온갖 교묘한 방법으로, 성경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세상의 도락들을 즐기는 방법을 탐구하는 사람이었다구요. 계상을 보는 내내 그 사람이 오버랩 되어서 참 곤란했습니다(__)

by 이녘 | 2006/12/02 14:03 | For movi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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