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30일
숏버스

<숏버스>는 가슴 따뜻한 휴먼드라마입니다. 이미 악명이 퍼지기 시작한 셀프오랄이나 게이-쓰리썸 씬의 과격함이야 어찌되었건 이 영화가 아주 얌전한 이야기라는 점은 바뀌지 않습니다. 다소 과격한 소재를 다루고 있고 가끔 과하다 싶은 묘사를 해서 그렇지, 존 카메론 미첼의 세계는 60년대 히피문화에 향수를 가지고 있는 백인 남성의 휴머니즘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웃사이더에 대한 따뜻한 시선도 그렇고, 하여튼 섹스를 통해 무언가가 치유될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도 그렇구요.
<숏버스>는 섹스나 현대인에 대한 특별한 사유를 보여주는 영화는 아닙니다. 섹스를 통해 우리가 상처를 딛고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요즘 들어와서 너무 흔해졌죠. 어쩌면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로맨티시즘의 또 다른 변종일수도 있구요. 이것은 고해성사를 하면 어떻게든 우리의 죄가 씻겨질 것이라 생각했던 중세의 믿음과 크게 다르지 않은 허상입니다.
하지만 존 카메론 미첼이 심각한 철학자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장점입니다. 섹스를 가지고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종종 지루함이라는 함정에 빠져버리잖아요? 그것은 섹스에 관해 무언가 의미있는 말을 하고 싶은 나머지, 오히려 섹스에 얽매이게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숏버스>의 장점은 섹스에 대한 희망을 드러내고 있지만 자신의 '심각함'에 대해 의식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사실 섹스에 대한 심각한 이야기가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요? 어차피 프로이트식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극복이거나, 사드식의 위악 정도겠지요. 섹스에 대한 의미있는 사유야 어찌되었건 <숏버스>는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존 카메론 미쳴이 보여주는 뮤지컬적 감성도 그렇지만, 영화 자체만 보아도 대단히 매끈하게 잘 빠졌어요. 이 영화가 노출의 수위를 조금만 줄였다면 아카데미에 올라가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으음. 말이 나와서 말인데, <숏버스>는 거의 아카데미 영화에요. 섹스를 통해서 현대인의 상처를 더듬고 위로하며, 드문드문 정치적으로 올바르기 위해 애쓰죠. 사람들은 누구나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또 서로를 통해 상처를 극복해요. 이 가슴 따스한 이야기는 전형적인 미국식 휴머니즘 그대로입니다. X등급 아카데미 영화랄까요?
물론 아카데미 운운하며 <숏버스>가 가지고 있는 과격함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은 좋은 태도는 아닙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노출은 정말 어마어마하니까요. 거의 시원스럽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에로틱하다기보다는 충격적이에요. 이것은 모자이크 없이는 나체를 볼 수 없는 한국의 특수한 환경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존 카메론 미쳴이 애초에 노린 것은 애초에 성적인 긴장감이기보다는 일종의 과격함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숏버스>의 매력은 아카데미적인 주제와 이러한 과격함이 만나며 이루어지는 독특한 긴장감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하여튼, <숏버스>가 국내개봉이 어렵다는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운 좋게 심의를 통과한다고 하더라도... 극장에 걸리는 것은 여기저기 팔다리가 잘려나가 보기 흉해진 필름이겠지요. 비록 어제 30분 넘게 추위에 떨었지만, 충분히 그 값을 한 것 같아 만족스럽습니다.
ps. 전 서울아트시네마에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것은 처음 봤어요...
유트브에서 찾은 영상입니다. 저스틴 본드가 부른 엔딩 테마 "In the end"에요. "Sodashop"도 찾고 싶었는데 없네요... 흑흑. 혹시 찾으신 분들 있으면 살짝 연락주세요^^
# by | 2006/12/30 21:05 | For movie | 트랙백 | 덧글(3)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전 시험이 많아서 포기하고 어둠의 루트만 주구장장 보고있습니다. 물론 부산에서 봤지만 ...
무자막으로 보는것도 나름 재미있답니다. 보다보니 공부도 되구요...^^ 여튼 잘 읽고갑니다.
예매 끝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당일표를 구하겠다는 의지도 꺾어버렸어요.
덧.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녘님.
ArborDay님//인기가 대단하더라구요. 30분 전에 도착했는데 이미 줄이 길다랗게 서있었어요. 으흠. 서울아트시네마에 사람들이 줄을 선 것은 또 처음 보았어요.(__)
덧. Arborday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