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1월 08일
301, 302

<301, 302>는 '요리사와 단식가'라고 하는 장정일의 시를 영화로 번역한 것입니다. <301, 302>에서는 장정일에 관한 어떤 언급도 하고 있지 않지만요. 사실 장정일의 문학을 별로 읽어보지 않은 저로서는 이에 대해 큰 할 말이 없습니다. 제가 떳떳하게 이 사람의 문학을 읽어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에, 이미 장정일은 한참 지나간 유행이 되어버리고 말았거든요. 뭐, 그게 핑계는 안 되겠죠? 전 그냥 이 사람의 글을 볼 기회가 없었던 겁니다.
영화 이야기를 해볼까요? 아니... 그냥 장정일의 시를 그냥 인용하는 것이 좋을 것도 같은데... 뭐, 어쨋든 가볍게 이야기를 해보자면 302호에 사는 윤희는 거식증 환자입니다. 그녀는 음식을 혐오하고 사람을 혐오하고 사랑을 혐오하며 섹스를 혐오해요. 그녀가 삼킬 수 있는 것은 몇 알의 영양제와 물 뿐입니다. 주로 여성지에 섹스나 다이어트에 관한 글을 기고하며 살아가는 윤희는, 언젠가 정식으로 문예지에 등단하고 싶어하지요.
301호에 새로 이사온 송희는 요리 중독자입니다. 그녀는 매일매일 남편에게 음식을 먹여대다가 이혼을 당했어요. 그녀는 무엇이라도 만들어서 누군가에게 먹여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송희는 매일매일 옆집에 사는 윤희에게 음식을 만들어주다가, 그녀가 자신이 만든 음식을 모조리 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그리고 송희는 윤희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탐구하기 시작합니다. 매일매일. 그러다가, 결국은 포기해버려요. 이 세상에서 윤희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거죠. 그런 찰나에, 윤희가 제안을 해옵니다. 자신의 깡마른 몸으로 음식을 만들어달라는거에요. 동성애에 대한 수줍은 상징을 뿌려대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윤희는 벌거벗은 채 송희의 손을 자신의 목으로 가져가고, 송희는 윤희를 죽여 식탁에 올리죠. 네. <301, 302>는 이런 이야기입니다.
섬뜩한 이야기이지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영화는 그렇게 섬뜩한 편이 아닙니다. 물론 이 영화가 어떤 종류의 '쿨함'을 의식했다는 흔적은 여기저기 많이 보여요. 극단적으로 효과음을 과장한 요리 장면이나, 지나치게 깔끔하고 세련된 아파트 내부의 묘사, 의식적으로 이름 대신 '301' 과 '302'라는 익명을 강조하는 것 등. 그것들은 제법 효과적입니다. 제법 세련된 '예술영화'처럼 보이니까요. 이것은 현대인의 외로움을 쿨한 태도로 과시했던 장정일의 <요리사와 단식가>가 가지고 있었던 가능성을 그대로 번역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장정일이 마련해둔 내러티브 바깥으로 나가 버릴때 힘을 잃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윤희의 과거 이야기를 할 때에는 아주 지루해집니다. 이 세상에서 강간을 빼고나면 여성에게 트라우마란 없는 걸까요?
아마 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에, 가장 주목을 받았던 것은 스타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영상은 지금의 눈으로도 제법 세련되고 기괴한 구석이 있거든요. 하지만 그 스타일은 영화 전체를 지배하지 못하고 가끔씩 흔적을 감춥니다. 전 특히 배우들의 역할해석에 불만이 많아요. 방은희는 꽤 입체적인 캐릭터를 보여주었지만, 저는 송희가 그렇게까지 다양한 얼굴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더 극단적이고 위험해보이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윤희는 그렇게 수동적인 사람은 아닐꺼에요. 더 자기도취적이고, 마찬가지로 위험한 사람일 것입니다. 장정일의 시에서 윤희의 죽음은 절망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절망을 가장한 자기도취의 극단이거든요. 황신혜의 해석은 너무 힘이 없습니다. 드라마 속 비련의 여주인공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했달까요. 쿨한 '도시여성'의 외로움을 표현하기엔 너무 밋밋했어요. 이건 어쩌면, 박철수 감독 본인의 한계일 수도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장정일의 시를 인용하며 끝맺어볼까요? 영화에서 직접 인용한 부분은 거의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두 사람의 외로움이 모두 끝난 것일까?"
# by | 2007/01/08 15:59 | For movie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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