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 이야기

 
요즘 미국 교과서에 실린 한 편의 소설 때문에 시끌벅적합니다. 일본의 패전 이후, 조선을 빠져나가던 소녀가 겪었던 끔찍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라네요. 여기에는 조선인들이 행했던 갖가지 폭력들에 대한 묘사가 실려 있어, 미국인 아이들에게 한국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고 무엇보다도 일본을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기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이 글을 보고 "한국인은 왜 불쌍한 일본 사람들을 괴롭힌거야?"라고 물었다는 재미교포 아이에게는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사실, 이러한 이야기를 우리의 아이들이나 나아가 일본의 아이들, 그리고 다른 나라의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읽혀야 할 지 저는 짐작조차 가지 않습니다. 사실, 이건 <요코 이야기> 자체를 읽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요.

하지만 저는 우리가 행한 폭력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본인들이 반도에서 나갈 때 아무런 린치도 당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미군정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시점이지만, 치안이 그렇게 확실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본인들을 린치했던 사람들도 36년동안 일본인에게 억압당했던 설움의 기억 때문에 폭행을 저지른 것은 아니겠지요. 저항할 수 없는 약자가 나타났을 때,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지는 지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잖아요? 거기에 일본인들이 지니고 있는 재산은 탐스러웠을 터이고, 혼란의 시기에 여성의 안전은 아무도 보장하지 못하는 것이었을 겁니다.

물론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 폭력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우리가 폭력을 행했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기억입니다. 일제 36년의 기억이야 어찌되었건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운 것이며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36년동안 당했으니 그 잠깐의 소요는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유태인들은 수천년동안 핍박받았기 때문에 현재의 과격한 근본주의는 이해할만한 것이라는 주장은 어때요? 우리 민족은 고통받고 있으니, 테러를 통한 저항은 당연하다는 주장은요? 이 모두는 인정되어선 안되는 것들입니다. 폭력은 언제나 폭력이고, 그것은 근본적으로 악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에게도 '폭력성'이 있다는 사실을 잊으려고 해요. 우리는 단 한번도 침략전쟁을 일으킨 적이 없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고, 우리는 일본인에게 린치를 가한 적이 없으며 린치를 가했어도 이해할만한 것이라고 합니다. 독일인들은 나치의 광기가 순전히 히틀러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일본인들은 언제나 원폭 운운하며 진짜 전쟁의 피해자는 자신이라고 주장하지요. 모두가 자신은 결백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세상에 만연한 이 폭력은 대체 무어죠?

저는 미국에서 한인들이 행하고 있는 일련의 '요코' 이야기들을 반대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것은 역사의 점유권에 대한 투쟁이에요. 아무런 맥락없이, 피해자 일본의 얼굴이 들이밀어졌을 때 발생하는 기만에 대한 투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 가운데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그랬더라도 이해할 만한 것이다"라는 주장은 매우 위험합니다. 심지어 <요코 이야기>가 어떻게 출판될 수 있느냐는 비난은 두렵기까지해요. 사실 <요코 이야기>의 이야기들은 우리나라에서 나와야하는 것들입니다. 우리의 역사가 성숙하려면, 나는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어린아이처럼 생떼를 부릴 것이 아니라 우리의 흉한 모습까지 끌어안고 반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by 이녘 | 2007/01/21 23:50 | For society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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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레인 at 2007/01/24 02:23
........확실히 여러가지 면에서 생각할 거리를 주는 소설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과연 이 책에 등급을 붙인다면 몇세로 잡아야 할까나?
Commented by 토오사카린 at 2007/03/16 03:58
좋은 글이네요. 하지만 미국에서 요코이야기의 반대는 교과서 채택 반대이지 않았나요? 쌍방의 입장을 고려하는 글이 동시에 실리지 않고 한쪽의 일방적인 이야기만 나오는 위험함은 지적해도 나쁘지 않을까 합니다.
Commented by 이녘 at 2007/03/17 14:11
예. 미국의 한인 학부모들이 하는 운동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어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요코이야기' 이야기들은... 대부분 그냥 혐일론이죠. 그건 너무 영양가가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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