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1월 27일
천년 여우 여우비

여우비는 이제 백살이 된 어린 구미호입니다. 여우비는 백년전에 북한산 기슭에 불시착한 외계인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어느날 외계인들은 UFO를 다시 만들어 시험운전을 하게 되지만... 그만 뜻밖의 사고로 UFO는 다시 불시착하고, 외계인 하나는 근처로 극기훈련을 떠나와 있던 어린아이들에게 붙잡히게 됩니다. 네. 그리고 이 녀석을 구출하기 위한 여우비의 모험이 시작되요.
<천년여우 여우비>는 전형적인 한국 창작동화풍의 이야기에 지브리 풍의 묘사를 뒤섞은 애니메이션입니다. 물론 굵은 펜선이 강조되는 작화나 어딘지 모르게 70~80년대 소년만화를 연상케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한국적'인 냄새가 풍기지만요. '그림자 탐정'의 심장과 여우비의 아지트의 분위기는 노골적으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연상시키고, 숲의 묘사나 외계인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이웃집 토토로>를 닮았습니다. 물론 이것이 나쁠 것은 없습니다. <천년 여우 여우비>는 자신이 인용자라는 사실을 그리 숨기지 않고 있으니까요. 지브리 풍의 묘사는 노골적이며, 그 외에도 익숙한 패러디들이 상당히 여러번 등장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솔직히 밝히는 것은 흉이 아니에요. 비록 독자적인 스타일을 세웠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그것을 매끈하게 이어붙이고 쌓아올린 공도 분명 크다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천년여우 여우비>는 잘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입니다. 캐릭터들의 모습은 대단히 매력있고, 몇몇 장면들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분명 지브리 풍의 묘사이긴 하지만, 그것이 아름답다는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야기 자체에는 불만이 많습니다. 이 정도의 매끈한 퀄리티를 지닌 작품이 이 정도로 엉성한 이야기로 짜여져 있다는 사실은 아쉬움 그 자체에요. '그림자 탐정'은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황금이와의 우정도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구미호 사냥꾼은 악역으로서의 위엄을 부여받지 못했고, 극기훈련을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관심이 부족했어요. 여우비의 모험도 지나치게 피상적이어서, 이 아이가 인간세상에 느끼고 있는 경이와 두려움, 매력을 표현하기엔 역부족입니다. 여우비가 만나게 되는 어린이들이 '왕따 학생'들이라는 점도...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 설정을 통해 무언가 교훈을 의도한 것 같기도 합니다만, 그것이 온전히 전해지지 않음은 물론이고 설령 제 기능을 했다고 하더라도 만족스러웠을지는 의문이에요. 물론 이성강 감독의 전작인 <마리 이야기>나 <별별 이야기>를 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천년 여우 여우비>에서의 이성강 감독은 솜씨좋은 이야기꾼은 아니군요. <천년여우 여우비>는 적어도 두 개 이상으로 나뉠 수 있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데 섞어놓은 느낌의 작품입니다. 사실 그 편이 더 깔끔한 결과가 나왔을 거에요. 그림자 탐정과 구미호 사냥꾼 중 하나는 사라지는 편이 낫겠고, 여우비의 모험과 여우비의 사춘기도 따로 다루는 편이 나았을 것 같습니다. 첫번째 경우에는 이야기가 훨씬 압축될 것이며, 두번째 경우는 주제를 압축할 수 있겠죠. 여우비가 외계인을 구출하는 이야기는 문명과 자연에 대한 그럴듯한 우화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여우비의 사춘기 이야기는 말랑말랑한 소년만화 풍의 느낌을 살릴 수 있을 거에요. 이성강 감독은 목적은 이 두가지를 함께 펼쳐보이는 것이었겠지만... 결과는 좋지 않습니다.
으음...한가지 불만을 더 말해보자면, <천년여우 여우비>의 더빙도 썩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다들 전형적인 '어린이 만화' 성우 더빙을 하고 있어요. 노골적인 지브리 풍의 묘사에도 불구하고, <천년여우 여우비>가 풍기고 있는 은근한 80년대 분위기는 이 점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 딱히 매력적인 해석을 보여주는 목소리가 없어요. 차라리 자막을 읽는 외국인 관객들이 더 재미있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후우. 싫은 소리를 잔뜩 했지만, 그리 못난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극장을 가득 메우고 있던 어린이 친구들-_-도 퍽 만족해하는 분위기였고, 드문드문 대단히 아름다운 장면도 볼 수 있었으니까요.
# by | 2007/01/27 23:06 | For movie | 트랙백(2)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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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러면 가수가 연기한다고 나대는것과 다른게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