덱스터

 



<덱스터>는 아주 용감한 기획입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드라마에서 이렇게 과격한 주인공을 다루는 것은 처음이에요. <덱스터>의 주인공인 덱스터는 연쇄살인범입니다. <덱스터>는 연쇄살인범이 개인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드라마입니다. 대단하죠?

덱스터는 어렸을 적 모종의 사건에서 거대한 트라우마를 입었습니다. 덕분에 그의 내면은 텅 비었고, 유일한 충동은 오직 살인에 대한 욕구 뿐이에요. 덱스터의 살인 충동은 그의 양아버지에 의해 발견되고... 그의 심성이 절대 고칠 수 없는 것임을 판단한 양아버지는 차선의 방책을 시도하기 시작합니다. 덱스터의 살인 충동을 막을 수 없다면 적어도 사회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사용해야겠다는 거에요. 일종의 공리주의자인 셈이지요. 덱스터는 경찰이었던 아버지에게 온갖 살인기술과 자신을 숨기는 방법을 배웁니다. 실제로 그는 경찰에서 일하는 혈흔전문 법의학자가 됩니다. 그는 낮에는 공권력에서 일하고, 밤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도시의 정의를 지켜요. 바로 살인자들을 살인함으로써.

<덱스터>의 이야기는 매우 수상쩍으면서도 재미있습니다. 우선, 덱스터의 살인이 일종의 정의인것처럼 포장될 때마다 드라마는 매우 미심쩍어져요. 덱스터는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니고 있고, 실제로 우리는 어마어마한 살인자인 덱스터를 주인공으로써 응원하고 있지요. 이것은 살인자 주인공에 대한 최소한의 알리바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덱스터>의 각본은 이야기 속에 오이디푸스적인 서브텍스트를 잔뜩 깔아놨어요. 아니, 서브텍스트라고 할 것 까지도 없죠. 덱스터는 노골적인 부권금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심어준 계율은 덱스터가 쾌락을 느끼는 방식이자 덱스터의 쾌락을 제한하는 방식이에요. 덱스터는 순수하게 살인을 즐기고 싶지만, 그는 오직 사회의 정의를 실현한다는 아버지의 방식을 통해서만 살인할 수 있습니다. 덱스터는 언제나 공허함을 느끼고 있는데, 이것은 그의 쾌락추구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이렇게 전도되고 왜곡된 방식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덱스터는 그의 희생자들보다 훨씬 지루하고 행복하지 못한 것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덱스터>는 단순히 도덕적인 연쇄살인마의 이야기로 빠지지 않습니다. 덱스터는 자신의 욕망과 아버지의 계율 사이에서 번민하고 있고, 가끔씩 그것을 넘어서려 합니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의 욕망을 탐색하는 단계에 있습니다. 그것을 이끌어주는 것이 바로 '아이스 트럭 살인마'인 것인데...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스포일링이 될 테니 그만두기로 하겠습니다. 다만 연쇄살인마의 이 성장담이 매우 흥미진진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는 점만 이야기하고 싶네요.

<덱스터>의 주인공은 <식스 핏 언더>에서 데이빗 피셔 역을 맡았던 마이클 홀입니다. 그러고보면 이 두 인물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어요. 데이빗 피셔는 자신이 게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늘 힘겨움을 겪고 있는 남자였습니다. 그는 이것을 숨기기도 하고, 그것으로부터 고통받기도 하지만 결국 그것을 인정하고 당당히 내세우는 길을 찾아갑니다. 또한 데이빗은 대단히 이중적인 사내이기도 했지요. 그의 딱딱하고 사무적인 태도 이면에는 대단히 섬세하고 상처받기 쉬운 내성적인 영혼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균열이 가져오는 독특한 느낌은 데이빗 피셔라는 인물을 대단히 흥미롭게 만들어 주었었죠.
덱스터는 어떨까요? 그는 우선 살인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살인을 제외하고는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회의하고, 고통받지만, 결국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겨내려 하죠. 또한 그는 언제나 사교적인 웃음을 짓고 있지만 그 누구와도 친밀해지지 못하는 고독한 사내입니다. 그에게 웃음은 살인자의 얼굴을 감추기 위한 가면일 뿐입니다. 덱스터는 데이빗 피셔와 거의 같은 테크닉에 의해 연기되는 것 같네요.

하지만 역시... <덱스터>의 가장 놀라운 장점은 바로 연쇄살인마를 당당하게 앞으로 내세운 과감함이에요. 일종의 선정주의일수도 있겠고 사실 다른 드라마들이 딱히 더 도덕적이거나 덜 잔인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덱스터>가 전위적인 시도라는 점을 깎아내릴 수는 없습니다. 미국의 시청자들이 관대한건가요?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되는 것을 보니 그런 것 같지도 않고. 일본 만화 한번 수입할 때마다 별별 이유를 들어 반대하는 검열기구와 시민단체들이 조용한 것이 참 신기합니다.

by 이녘 | 2007/02/12 10:31 | For others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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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마르스 at 2007/02/12 10:44
미국에서는 유료채널에서 방송되었고, 원래 이런 사항에 대해 그다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몰몬교 다처주의자를 그린 [Big Love]가 방송되는 것만 해도 그렇죠. 뭐, 한국에서는 시민단체분들이 드라마를 잘 모르기 때문에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Commented by poxen at 2007/02/12 12:42
계절이 변하기 전 소설로는 봣었는데...
소설에서는 무진장 매력적인 남자인 것 처럼 묘사되었는데...영상에서는 과연(?!)
Commented by NewType at 2007/02/12 23:58
항상 CSI의 인물들이 범죄를 저지른다면 완전범죄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런 제 생각을 약간이나마 해소(?) 시켜준 드라마였습니다.

그리고 살인마 이야기를 보다가 왠지 멜랑꼴리한 감정까지 불러일으킬 줄이야...
Commented by 이녘 at 2007/02/14 02:36
마르스님//아마 HBO에서 제작했으면 훨씬 화끈했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poxen님// 개인적으로는 마이클 홀이 표현하는 덱스터, 참 마음에 들어요. 거기에...본래 날씬하고 잘생긴 사내라 그런지 썩 멋있더군요.^^

Newtype님// 그래도 설정상의 헛점은 몇몇 보이더라구요. 덱스터가 마지막에 끈으로 목을 졸랐는데도 아무도 타살가능성을 제기하지 않는다던가 하는 것들. 왜, 우리에겐 완전범죄의 화신. 아르센 뤼팽이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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