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2월 15일
요코 이야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바로 그 <요코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책과 상관 없는 이야기를 하며 시작하자면... 저는 <요코 이야기> 판매를 중단한 문학동네의 처사가 아주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것은 한 출판사의 편집방향을, 잠깐의 소요 때문에 수정한 것입니다. 그저 논란을 빗겨가기 위해서요. 물론 판매량도 얼마 되지 않는 책 때문에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의 논란은 있을 수 밖에 없는 책이라는 것은 번역할 당시에도 당연한 것이 아니었던가요? 이제야 이 책이 부딪혀야할 장애물에 도달했는데, 이렇게 쉽게 백기를 내리다니요? 거기에 완전히 백기를 들지 않는 그 어정쩡한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것은 정치의 제스쳐이지 문학의 제스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책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요코 이야기>는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라고 하는 일본계 미국인의 후일담 소설입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을 만주와 가까웠던 나남이라는 도시에서 보냈으며 1945년 일본의 패전과 함께 들이닥친 어마어마한 혼란을 뚫고 일본으로 돌아왔습니다. <요코 이야기>는 그녀가 '나남'에서 출발하여 일본 교토에 정착하기까지 겪은 무시무시한 경험을 끄집어낸 작품입니다.
약 보름여 동안 그녀는 단란했던 일상에 침입해온 총체적인 지옥과 맞닥뜨립니다. 만주국 고위간부의 딸로 모자람이 없이 자란 요코는, 생존을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며 남하합니다. 그 와중에 그녀는 아노미 상태의 조선인민군들에게 갖은 테러를 당해요. 요코와 그녀의 언니는 강간의 위험에 처하기도 하고 때로는 죽음의 위험에 처하기도 합니다. 원칙적으로 소련은 일본인의 안전한 인도를 보장하기로 했지만 이러한 혼란기에 폭력은 법보다 가까우며 매일매일 누군가는 죽어가고 강간당하고 울부짖습니다.
화자는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다소 뻐기듯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힘든 체험은 요코를 인간적으로 성장하게 만들고 무언가 강한 힘과 의지를 심어주었던 원체험으로 되살아납니다. 요코의 체험은 조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데, 소설의 후반부는 상당부분 요코 일가의 힘겨운 일본 정착기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전쟁 난민과 다름 없는 그녀의 일가는 일본에서도 갖은 고생을 겪어야만 합니다. 아버지와 오빠의 생사는 확인할 길이 없으며 어머니는 피난 도중 쇠약해진 건강 때문에 죽고 말았습니다. 일본의 친척들은 모두 폭격으로 사망했고, 새로이 다니게 된 학교의 급우들은 더럽고 가난한 자신을 깔보고 모욕합니다. 조선을 탈출하는 전반부의 소설이 생존에 관한 것이라면, 일본에서의 후반부는 존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피난민 출신의 고아인 요코는 어떻게든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려 합니다. 요코는 비록 가난하고 더럽지만 그녀를 괴롭히는 반 아이들보다 인간적으로 성숙하다는 자신감 같은 것이 있습니다. 조선에서의 경험은 그녀가 일본에서 기죽지 않게 해주는 든든한 상처입니다. 이 소설의 후반부가 어정쩡한 것은 작가가 결국 이러한 소년소녀가장수기의 흔한 패턴으로 빠져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책은 좋은 책일 까요?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언론의 이 거센 호들갑은 사실 부풀려진 바가 큽니다. 저자는 서문에서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공정성을 잔뜩 의식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등장하지도 않는 그녀의 아버지는 총독부의 식민지배에 관한 아주 경건한 코멘트를 남겼고, 요코의 어머니는 전쟁에 관한 매우 도덕적인 설교를 늘어놓습니다. 물론 이는 "우리 모두가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는 고전적인 변명이기도 합니다. 어쨋거나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가 악한 조선을 고발하기 위해 이런 책을 쓴 것은 아니란 거죠. 하지만 이 책은 매우 수상 쩍습니다. 작가는 순진하게도 우국충정물 속에나 나올 법한 클리셰 몇개를 답습하고 있습니다. 요코가 선물한 '조국의 승리'라는 글씨가 쓰여진 종이를 부적처럼 가지고 다닌다는 군인의 에피소드는 너무 노골적이어서 낯뜨겁기 까지 합니다. 사실 그때는 지금보다 투박한 방식으로 그러한 신화들이 만들어지던 시대이니까요. 보통 군인과 보통 아이가 영화에서나 나오던 장면을 한번 흉내내어 본다고 그것이 딱히 덜 현실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러한 장면이 주는 은근한 불쾌감을 무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답습한 것이겠지만, 그것은 분명히 일본 군국주의가 만들어낸 신화입니다. 요코 자신은 얼마나 의식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요.
이 책은 매우 얄팍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요코가 말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남았는지' 입니다. 전쟁의 끔찍함은 그녀를 성숙하게 만들었고, 요코는 그것을 자신의 자존심을 유지하는데 사용합니다. 여기에는 <태양의 제국>이 가지고 있었던 은근히 오리엔탈리즘적인 감상마저 없습니다. 그저 얕아요. 어린 요코는 전쟁에 대해 사유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그저 자신의 어린시절의 끔찍함을 떠올릴 뿐이지요. 사실 <요코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대목은 바로 여기입니다. 그녀가 가끔씩 겁먹은 듯 냉정하게 서술하고 있는 혼란기의 바로 그 지옥이요.
결국 이 이야기는 우리의 과거에 대해 무언가 의미심장한 것을 말해주는 문학은 아닙니다. 이것은 과거를 청산하는 문학이 아니라 과거를 떠올리는 문학이에요. 저자가 서문 어디에선가 말하고 있듯이 '만족할 줄 모르는 요즘 아이들'에게 무언가 어른으로서 한마디 하고 싶어서 쓴 고루한 옛날 이야기입니다. 옛 어른들이 반찬투정하는 아이들에게 보릿고개 이야기를 하는 것과 비슷해요. 이 사람이 노리고 있는 것은 딱 여기까지입니다.
저는 이 사람이 <요코 이야기>를 통해서 했던 말들이, 그리고 그녀의 강연을 통해서 했던 말들이, 최근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하는 말들이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일본의 아시아 지배를 자랑스럽게 여기지는 않을거에요. 일본도 사실은 피해자라고 주장할 생각은 다소 있겠지만 말이에요. 작가의 진짜 문제는 사람들의 성난 물음에 해줄 대답이 "나도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정도 밖에 없다는 것이 아닐까요? 그것도 책 자체와는 전혀 상관없는 코멘트를 통해서만요. 그녀는 <요코 이야기>에 그리 많은 것을 담지 못했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것은 누구이며, 피해자는 누구인지, 자신이 헤쳐온 지옥은 무엇이고, 왜 자신이 일본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는지에 대해 사유하지 않고 그저 동화풍의 후일담으로 자신의 에고를 부풀리고 있습니다. 그녀는 민감한 역사를 소재로 그저 어느 곱게 늙은 노파의 후일담을 하고 있는거에요. 이것이 문학적으로 틀린 태도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게 부유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요코 이야기>가 그렇게 의미있는 작품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요코 이야기>는 논쟁적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얄팍해요. 제가 의심스러운 것은 이 작품을 교과서에 싣는 미국의 교육계입니다. 저는 <요코 이야기>가 문학작품의 탁월한 모범이 되기 때문에 실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분명 이 작품을 선정한 정치적인 의도가 깔려 있겠지요. 재미있는 것은, 인터넷의 논쟁 중 대부분은 공격의 화살을 요코 가와시마를 향해 있다는 것입니다. 요코 '왓킨스'를 향하는 공격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네요. <요코 이야기>를 공격하는 언론의 입장을 빌어보자면 이 책은 미국의 학생들에게 잘못된 역사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위험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요코 이야기>일까요? 왜 재조일본인의 이야기였을까요? 여기에서 미국과 일본의 오랜 유대를 지적하는 것도 재미있는 해석일 것입니다. 일본의 우경화는 사실 미국이 부추기는 경향이 크고, '요코'는 패전 이후 '강간당한 일본'으로 표징되는 트라우마를 이름에서부터 표현하고 있으니까요.
사실 꼬투리를 잡다보면 끝이 없습니다. 문학작품이란 대부분 정치적 담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특히나 정치적으로 읽으려 작정한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벗어날 수 없죠. 하지만 <요코 이야기>를 욕하기 전에 몇몇가지는 생각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우선, <요코 이야기>와 일본을 욕하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더러움은 잊어버리려 하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해봐야합니다. 한창 꽤 유행했던 베트남 관련 서사들을 생각해보세요. 그 영화들, 드라마들, 소설들. 아마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한 다음 그 자료들을 찾아서 본다면 참 화를 낼 것입니다. 미국이 준다는 돈 때문에 자신들과는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나라에 와서 청년들을 쏘아죽이고 민간인을 학살하고 부녀자를 강간해서 사생아를 만든 주제에 자기들도 전쟁의 피해자인 것처럼 군다니요? 이것은 생각보다 골치 아픈 문제입니다. 그들이 불만을 터뜨린다면 우리로서는 변명할 거리가 마땅치 않습니다. 그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저는 베트남 사람들이 국립묘지에 안장된 베트남 참전군인들에 대해서 항의를 한다면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서는 아주 분명하게 말할 수 있지만요.)
또한 <요코 이야기>에는 그렇게 호들갑 떨면서 비슷한 식의 다른 이야기들에는 덜 민감하거나 생각조차 하지 않는 우리의 인식을 돌이켜볼 필요도 있겠습니다. 007시리즈와 같은 대단히 정치적으로 불공정한 이야기들은 별 생각없이 즐기면서 우리의 과거와 관련된 문제에서만 양보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대단히 편협한 태도죠. 차라리 "픽션은 픽션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훨씬 일관성은 있습니다. 옳은 태도는 물론 아니지만요.
얘기가 길었습니다. 어째, 책 이야기보다 그 밖의 잡설이 더 길었네요. 사실 얄팍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리뷰가 이런식이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요코 이야기>가 더 풍성한 이야기였다면 논쟁은 격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논리를 따르기보다는 주어진 논리를 따라갑니다. <요코 이야기>가 다루고 있는 몇몇 소재들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금세 넷은 달아오르고 사람들은 분노합니다. 하지만 그 분노가 과연 누구의 것인지 생각해봐야할 것 같네요. 그 분노는 과연 우리의 자연스러운 일부일까요? <요코 이야기>는 해주지 못했으니 우리라도 해야하지 않겠어요?
그럼...책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요코 이야기>는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라고 하는 일본계 미국인의 후일담 소설입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을 만주와 가까웠던 나남이라는 도시에서 보냈으며 1945년 일본의 패전과 함께 들이닥친 어마어마한 혼란을 뚫고 일본으로 돌아왔습니다. <요코 이야기>는 그녀가 '나남'에서 출발하여 일본 교토에 정착하기까지 겪은 무시무시한 경험을 끄집어낸 작품입니다.
약 보름여 동안 그녀는 단란했던 일상에 침입해온 총체적인 지옥과 맞닥뜨립니다. 만주국 고위간부의 딸로 모자람이 없이 자란 요코는, 생존을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며 남하합니다. 그 와중에 그녀는 아노미 상태의 조선인민군들에게 갖은 테러를 당해요. 요코와 그녀의 언니는 강간의 위험에 처하기도 하고 때로는 죽음의 위험에 처하기도 합니다. 원칙적으로 소련은 일본인의 안전한 인도를 보장하기로 했지만 이러한 혼란기에 폭력은 법보다 가까우며 매일매일 누군가는 죽어가고 강간당하고 울부짖습니다.
화자는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다소 뻐기듯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힘든 체험은 요코를 인간적으로 성장하게 만들고 무언가 강한 힘과 의지를 심어주었던 원체험으로 되살아납니다. 요코의 체험은 조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데, 소설의 후반부는 상당부분 요코 일가의 힘겨운 일본 정착기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전쟁 난민과 다름 없는 그녀의 일가는 일본에서도 갖은 고생을 겪어야만 합니다. 아버지와 오빠의 생사는 확인할 길이 없으며 어머니는 피난 도중 쇠약해진 건강 때문에 죽고 말았습니다. 일본의 친척들은 모두 폭격으로 사망했고, 새로이 다니게 된 학교의 급우들은 더럽고 가난한 자신을 깔보고 모욕합니다. 조선을 탈출하는 전반부의 소설이 생존에 관한 것이라면, 일본에서의 후반부는 존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피난민 출신의 고아인 요코는 어떻게든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려 합니다. 요코는 비록 가난하고 더럽지만 그녀를 괴롭히는 반 아이들보다 인간적으로 성숙하다는 자신감 같은 것이 있습니다. 조선에서의 경험은 그녀가 일본에서 기죽지 않게 해주는 든든한 상처입니다. 이 소설의 후반부가 어정쩡한 것은 작가가 결국 이러한 소년소녀가장수기의 흔한 패턴으로 빠져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책은 좋은 책일 까요?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언론의 이 거센 호들갑은 사실 부풀려진 바가 큽니다. 저자는 서문에서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공정성을 잔뜩 의식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등장하지도 않는 그녀의 아버지는 총독부의 식민지배에 관한 아주 경건한 코멘트를 남겼고, 요코의 어머니는 전쟁에 관한 매우 도덕적인 설교를 늘어놓습니다. 물론 이는 "우리 모두가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는 고전적인 변명이기도 합니다. 어쨋거나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가 악한 조선을 고발하기 위해 이런 책을 쓴 것은 아니란 거죠. 하지만 이 책은 매우 수상 쩍습니다. 작가는 순진하게도 우국충정물 속에나 나올 법한 클리셰 몇개를 답습하고 있습니다. 요코가 선물한 '조국의 승리'라는 글씨가 쓰여진 종이를 부적처럼 가지고 다닌다는 군인의 에피소드는 너무 노골적이어서 낯뜨겁기 까지 합니다. 사실 그때는 지금보다 투박한 방식으로 그러한 신화들이 만들어지던 시대이니까요. 보통 군인과 보통 아이가 영화에서나 나오던 장면을 한번 흉내내어 본다고 그것이 딱히 덜 현실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러한 장면이 주는 은근한 불쾌감을 무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답습한 것이겠지만, 그것은 분명히 일본 군국주의가 만들어낸 신화입니다. 요코 자신은 얼마나 의식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요.
이 책은 매우 얄팍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요코가 말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남았는지' 입니다. 전쟁의 끔찍함은 그녀를 성숙하게 만들었고, 요코는 그것을 자신의 자존심을 유지하는데 사용합니다. 여기에는 <태양의 제국>이 가지고 있었던 은근히 오리엔탈리즘적인 감상마저 없습니다. 그저 얕아요. 어린 요코는 전쟁에 대해 사유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그저 자신의 어린시절의 끔찍함을 떠올릴 뿐이지요. 사실 <요코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대목은 바로 여기입니다. 그녀가 가끔씩 겁먹은 듯 냉정하게 서술하고 있는 혼란기의 바로 그 지옥이요.
결국 이 이야기는 우리의 과거에 대해 무언가 의미심장한 것을 말해주는 문학은 아닙니다. 이것은 과거를 청산하는 문학이 아니라 과거를 떠올리는 문학이에요. 저자가 서문 어디에선가 말하고 있듯이 '만족할 줄 모르는 요즘 아이들'에게 무언가 어른으로서 한마디 하고 싶어서 쓴 고루한 옛날 이야기입니다. 옛 어른들이 반찬투정하는 아이들에게 보릿고개 이야기를 하는 것과 비슷해요. 이 사람이 노리고 있는 것은 딱 여기까지입니다.
저는 이 사람이 <요코 이야기>를 통해서 했던 말들이, 그리고 그녀의 강연을 통해서 했던 말들이, 최근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하는 말들이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일본의 아시아 지배를 자랑스럽게 여기지는 않을거에요. 일본도 사실은 피해자라고 주장할 생각은 다소 있겠지만 말이에요. 작가의 진짜 문제는 사람들의 성난 물음에 해줄 대답이 "나도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정도 밖에 없다는 것이 아닐까요? 그것도 책 자체와는 전혀 상관없는 코멘트를 통해서만요. 그녀는 <요코 이야기>에 그리 많은 것을 담지 못했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것은 누구이며, 피해자는 누구인지, 자신이 헤쳐온 지옥은 무엇이고, 왜 자신이 일본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는지에 대해 사유하지 않고 그저 동화풍의 후일담으로 자신의 에고를 부풀리고 있습니다. 그녀는 민감한 역사를 소재로 그저 어느 곱게 늙은 노파의 후일담을 하고 있는거에요. 이것이 문학적으로 틀린 태도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게 부유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요코 이야기>가 그렇게 의미있는 작품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요코 이야기>는 논쟁적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얄팍해요. 제가 의심스러운 것은 이 작품을 교과서에 싣는 미국의 교육계입니다. 저는 <요코 이야기>가 문학작품의 탁월한 모범이 되기 때문에 실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분명 이 작품을 선정한 정치적인 의도가 깔려 있겠지요. 재미있는 것은, 인터넷의 논쟁 중 대부분은 공격의 화살을 요코 가와시마를 향해 있다는 것입니다. 요코 '왓킨스'를 향하는 공격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네요. <요코 이야기>를 공격하는 언론의 입장을 빌어보자면 이 책은 미국의 학생들에게 잘못된 역사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위험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요코 이야기>일까요? 왜 재조일본인의 이야기였을까요? 여기에서 미국과 일본의 오랜 유대를 지적하는 것도 재미있는 해석일 것입니다. 일본의 우경화는 사실 미국이 부추기는 경향이 크고, '요코'는 패전 이후 '강간당한 일본'으로 표징되는 트라우마를 이름에서부터 표현하고 있으니까요.
사실 꼬투리를 잡다보면 끝이 없습니다. 문학작품이란 대부분 정치적 담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특히나 정치적으로 읽으려 작정한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벗어날 수 없죠. 하지만 <요코 이야기>를 욕하기 전에 몇몇가지는 생각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우선, <요코 이야기>와 일본을 욕하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더러움은 잊어버리려 하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해봐야합니다. 한창 꽤 유행했던 베트남 관련 서사들을 생각해보세요. 그 영화들, 드라마들, 소설들. 아마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한 다음 그 자료들을 찾아서 본다면 참 화를 낼 것입니다. 미국이 준다는 돈 때문에 자신들과는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나라에 와서 청년들을 쏘아죽이고 민간인을 학살하고 부녀자를 강간해서 사생아를 만든 주제에 자기들도 전쟁의 피해자인 것처럼 군다니요? 이것은 생각보다 골치 아픈 문제입니다. 그들이 불만을 터뜨린다면 우리로서는 변명할 거리가 마땅치 않습니다. 그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저는 베트남 사람들이 국립묘지에 안장된 베트남 참전군인들에 대해서 항의를 한다면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서는 아주 분명하게 말할 수 있지만요.)
또한 <요코 이야기>에는 그렇게 호들갑 떨면서 비슷한 식의 다른 이야기들에는 덜 민감하거나 생각조차 하지 않는 우리의 인식을 돌이켜볼 필요도 있겠습니다. 007시리즈와 같은 대단히 정치적으로 불공정한 이야기들은 별 생각없이 즐기면서 우리의 과거와 관련된 문제에서만 양보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대단히 편협한 태도죠. 차라리 "픽션은 픽션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훨씬 일관성은 있습니다. 옳은 태도는 물론 아니지만요.
얘기가 길었습니다. 어째, 책 이야기보다 그 밖의 잡설이 더 길었네요. 사실 얄팍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리뷰가 이런식이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요코 이야기>가 더 풍성한 이야기였다면 논쟁은 격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논리를 따르기보다는 주어진 논리를 따라갑니다. <요코 이야기>가 다루고 있는 몇몇 소재들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금세 넷은 달아오르고 사람들은 분노합니다. 하지만 그 분노가 과연 누구의 것인지 생각해봐야할 것 같네요. 그 분노는 과연 우리의 자연스러운 일부일까요? <요코 이야기>는 해주지 못했으니 우리라도 해야하지 않겠어요?
# by | 2007/02/15 22:29 | For fiction | 트랙백 | 덧글(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내가 읽은 <요코 이야기>는 옵저버로 남고 싶어하는 미국인들을 위한 "동화"였어.
파인로님// <요코이야기>는 정말 가십처럼 소비되는 것 같아요. 책 자체도 별로지만, 별로인 책도 읽지 않고 왈가왈부하는 논객들 때문에 넷이 지저분해지는 것 같습니다.
여관주인// 웬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