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3월 04일
좋지 아니한가

어딘지 모르게 몽상가 기질이 있는 용태는 어느날 자살을 시도합니다. "우주에서 제일 나쁜 년"인 짝사랑하는 여자아이가 원조교제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거든요. 물론 그 자살은, 마찬가지로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인해 포기하게 되지만요. 답답하고 무능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도덕적으로는 고지식한 아버지는 어느날 어울리지도 않는 원조교제 스캔들에 휘말렸습니다. 도서관에 있다는 딸을 노래방에서 찾아 뒤쫒던 어머니는 십자인대가 늘어져서 입원을 하게 되고...그 와중에 모종의 목적을 가지고 접근한 노래방 청년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지요. 그리고,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운명의 장난에 의하여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믿게 됩니다. 보일러 가게 경리였다가 무협작가로 데뷔한 이모는 집에서 무위도식하며 노처녀로 늙어가고 있어요. 게다가 얼마전에 '소설'로 전향한 자신의 남자친구를 '소설가'에게 뺏겼답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지켜보며 서술하고 있는 막내딸 용선은 자기 학교에 계약직 교원으로 취직한 선생님에게 반해 미스테리 서클에 가입했습니다. 학교 아이들이 수근거리며 자신을 따돌릴 때마다 학교 옥상의 미스테리 서클 장소로 도망가죠.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절대 좋지 않습니다. 원래부터 화목한 가정과는 거리가 멀었던 용선이네 집은, 영화가 다루고 있는 일주일 동안 정말이지 질척질척한 구렁텅이로 빠져들어가게 되요. 그리고는 아무래도 미심쩍은 화해를 하고는 묻습니다. 그래도 좋지 않냐구요. 어쨋거나 가족은 가족이란 거죠.
<좋지 아니한가>는 가족에 대해 무언가 의미심장한 화두를 던지는 영화는 아닙니다. 또한 그렇게 심각한 영화도 아니에요. 풍자와 웃음을 위해 그렇게까지 모험적인 무언가를 시도한 영화도 아닙니다. 몇몇 설정들은 너무나 뻔하고, 인위적입니다. 가령 '폰카' 라던가 'cancel' 은 건 낯이 뜨거울 정도에요. 어딘지 모르게 괴짜인 선생님에게 빠져드는 여학생이라는 클리셰도 좀 노골적이구요. 원조교제를 하는 소녀에게 반하여 도덕적인 설교를 늘어놓는 용태나 아들 또래의 젊은이에게 반한 어머니 희경, 무능한 노처녀인 미경의 묘사는 정말이지 강한 기시감을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던지는 코미디는 꽤 맛깔있어요. 노골적이기는 하지만 필요이상으로 과장하지 않고 비교적 쿨하게 서술해간 이들의 이야기는 꽤 재미있고, 또한 생각할 거리 몇몇개를 던져주기도 합니다. 물론 그것을 필요 이상으로 심각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겠지만요.
<좋지 아니한가>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입니다. 천호진은 너무 안전한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뚱한 얼굴로 헤쳐나가는 문희경이나, 생활 때문에 몸을 파는 아이의 절박함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철이 없는, 그래서 은근히 불쾌해지는 남고생을 연기한 유아인, 엉뚱하고 느릿느릿해 보이는 여고생 황보라, 그리고... 백수 노처녀 김혜수 까지. 모두 원래 배우 자신이 가지고 있는 페르소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멋진 그림을 만들어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김혜수를 두고 다른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저에겐 조금 어깨에 힘을 뺀 <신라의 달밤> 같은 느낌이랄까요. 물론 그것이 김혜수에게는 큰 변신이라는 것도 사실이지만요.
정윤철 감독의 연출은 그냥 안전하다는 느낌입니다. 배우들에게 무언가 색다른 모습을 주문하는 것도 아니고, '가족'이라는 주제에 대해 무언가 화끈한 이슈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죠. 그의 코미디는 썩 능수능란하지만 어떤 새로움이 보이는 것은 아니에요. 그의 전작인 <말아톤>도 그랬지만, 적당히 안전한 영화라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나쁠 것은 없어요. 그는 다음번에도 적당한 수준의 안전한 영화를 만들어내겠죠. 그리고 그 영화는 결코 표값이 아깝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록 <좋지 아니한가>는 흥행에서 별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적어도 저는 크게 저평가될 이유는 없는 영화라 생각해요.
조금만 덧붙이자면... 이 영화가 아버지 창수를 통해 보여주는 교권에 대한 묘한 옹호는 살짝 불쾌한 감이 있어요. 교사라는 자신의 직위를 통해 자존심을 회복하고 옛 제자의 도움을 받는 대목에 이르게 되면 더더욱 그렇죠. 이것은 <좋지 아니한가>의 전체적인 목소리톤과 이어지게 되는데... 아무리 상처받은 제도일 망정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 결국 이 영화의 주제거든요. 용태를 통해 던지는 농담들이 은근히 불쾌한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비록 희화화 되기는 했지만 용태의 이야기는 진심이에요. "난 널 용서하기로 했어" 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철없음은 물론 우습지만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진심은 어딘지 모르게 섬뜩합니다. 조금 쿨한 척하려고 하는 보수주의자의 시선이 느껴진달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이러한 가족, 이러한 제도를 반대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던지는 농담들이 어딘지 모르게 불편할 때가 있었어요. 이 모든 것은 <좋지 아니한가>가 안전한 영화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아직 사람들은 과거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고, 그것을 옹호하는 영화는 힘을 얻습니다. 뭐... 그래도 지나치게 깐깐하게 굴고 싶지는 않아요. 이만 글을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
대한극장은 정말이지 악취미를 가지고 있어요. 영화 시작하기 전에 틀어주는 극장 홍보화면 있잖아요? 대한극장은 유난히 마음의 준비를 필요로 하게 하는 편인데...
영상수준과 사운드를 과시하는 것은 좋은데 그렇게 큰 소리로 사람들을 놀라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 미리미리 귀를 막게 만드는군요. 쩌렁쩌렁 큰 소리가 더 좋은 소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겠고... 사실 여러모로 나쁘지 않은 극장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영화가 시작할 때 마다 살짝 불쾌해집니다.
# by | 2007/03/04 14:31 | For movie | 트랙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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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좋지 아니한가
영화 속의 가족은 완전하지 않다. 아니 온통 문제투성이다. 하지만 유대감 약한 이 콩가루집안의 모습은 분명 우리네 삶과 닿아있고, 그리 낯설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지구에서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듯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한다해도 상대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당연하겠지만). 다른 구성원을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행위 - 각각의 구성원 시점에서 다른 구성원을 비춰주던 식사장면은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 들은 필연적으로 문제들을 ......more
말씀하신대로 안전한 영화인 것 같은데, 캐릭터들이 주는 맛이 제법 괜찮더라구요.
나이가 들어 그런건지 저도 슬슬 상당히 보수적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海月님// 마지막 강변 소동은 시원하긴 하지만 그래도 사족 같은 느낌이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