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고기

 

아시다시피, 저는 호주의 고기공장에서 일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양을 도살하고, 내장을 쏟아내고, 가죽을 벗기고 뼈를 바르고 있지만, 저는 모드 공정이 끝나 박스에 담긴 고기를 나르고 있을 뿐이에요. 제가 담당하고 있는 곳은 수출용 고기를 취급하는 냉동고인데..하루에 300 팔렛, 1080 박스가 나와요. 한 박스에 대충, 200달러라고 생각한다면, 하루에 20만달러치 고기를 수출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엄청나죠. 하루에 도살되는 양의 숫자가 3000마리에 달하고, 또한 그만큼의 소도 매일매일 도살장으로 끌려갑니다. 이만한 고기공장이 이 호주에 몇개나 될 지 상상이 안 되네요.

저는 요즘, 매일매일 고기를 먹고 살고 있습니다. 이게 실로 엄청난 양이라... 한 주 동안 쌓인 영수증을 살펴보면, 3~4 킬로그램에 달하는 고기를 매주 혼자 먹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 보다 대체 몇배나 더 먹고 있는 것인지 생각조차 할 수 없네요.

그런데, 고기 1kg을 얻기 위해서는 그 열량의 몇 백배에 달하는 사료가 필요 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만큼의 열량을 만들어낼 식자원이라면 아프리카의 기아 문제를 상당량 경감시킬 수 있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저는, 한 주에 얼핏 잡아 수백명, 기천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기회비용을 가져가고 있는 거에요. 제가 슈퍼마켓에서 고기를 소비할 때 마다, 제가 공장에서 박스를 한 상자 한 상자 옮길 때 마다, 그러니까 저는 이 세계의 불합리하고도 불균형한 식량 문제에 일조하고 있는 겁니다.

이곳 호주는 남쪽 나라이지만, 어쨋거나 서구 세계에서 비만이란 가난한 사람들의 질병입니다. 이곳은 콜라가 물 보다 싸고, 사람들은 빅맥과 버터, 냉동식품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오직 있는 자들 만이 베지테리안이 되고, 식단을 조정하며 운동을 합니다. 지구 어디에선가는 몸에 기름기가 없어 젓가락 처럼 말라죽어가는 어린이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오직 가난한 자들만이 추해질 때 까지 살이 찝니다.

문득 저는 제가 먹는 고기가 부끄러워집니다. 하지만, 뭐 방법이 있나요. 채식은 있는 자들의 습관인 이 나라에서 고기를 끊어 봐야...

by 이녘 | 2007/09/17 02:08 | For me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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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여관주인 at 2007/09/17 04:43
소 한마리를 키우는데 드는 곡물의 양으로 제3세계의 난민 수십 수백 명을 먹여살릴 수 있다는 논리, 얼핏 듣기에는 그럴듯한데 말이지.
이념, 종교. 국가간의 갈등 등의 상부구조의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기아와 난민 문제의 책임을 식생활이라는 하부구조에 전가시키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뭐 결론은, 열심히 일해서 나중에 술이나 사라구ㅎㅎ
Commented by 海月 at 2007/09/17 18:58
요즘 그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더라구요. 사실 세세히 바라보면 합리적인 구석이 없는게 사람 사는 모습이라서... ㅎㅎ
Commented by paran at 2007/09/18 12:41
가장 효율적인 식생활은 콩과 풀을 먹고 사는 거라던가? 베지테리안이 되기를 강요(정말 그랬다. 도축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하는 비디오에서 봤어. 그러나 사람은 원래 타고나길 잡식성인걸. 우린 자연에 거스르면 안 돼 ㅎㅎㅎ 가리지 않고 있는 걸 필요한 만큼 먹는거지 뭐. 우리가 그쪽 생각하면서 가려먹어봐야, 실질적으로 기부활동을 하지 않는 한 남는 에너지가 그쪽으로 가진 않는다구.
Commented by Ryoung at 2007/09/20 23:09
안녕하세요.
저는 다음달에 호주 워홀가려고 하는데 카페 검색을 하다가 양고기 공장 구인글을 보고 이게 믿을만 한가~ 싶어서 네이버/구글 검색하다가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괜찮으시면 이것저것 여쭤봐도 될까요?
실례가 된다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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