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01일
모방
이오공감은 남의 나라. 굳이 논쟁의 한 켠에 제 글을 쌓아놓고 싶지는 않네요. 하고 싶은 얘기도 조금 다르고...
사실 표절이라는 주제는 제 졸업논문으로 쓰고 싶을 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 거리입니다. 표절이라는 단어는 저작권법이 활성화된 작금에나 그 효력을 떨치고 있는 것이지 실상 인용이라는 문제가 작가들의 도덕성과 능력에 직접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미학의 영역에서 독창성이라는 것이 주요한 미적특질로 취급되기 시작한 것은 아무리 기원을 멀리 잡아도 17세기를 넘어서지 못해요. 그 이전에, 미란, 오히려 훌륭한 옛것을 잘 모방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예술은 그리스를 잘 모방하는 것이었고, 오랫동안 동양의 역사편찬은 사마천의 사기를 모방하는 작업이었죠.
구체적인 작품으로 넘어가보자면...으음. 괴테의 <파우스트>는 단테의 <신곡>과 수 많은 그리스의 희비극들, 성경,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의 영향을 거리낌없이 노출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로 알려져 있는 금오신화는 바로 전 세대 중국에서 창작된 <전등신화>를 거의 주인공 이름만 바꾼 채 번안한, 그야말로 표절이죠. <요재지이>나 <수이전>의 관계도 그러하고... 사실 동아시아 비교문학론을 조금만 살펴보아도 시와 산문의 전영역에서 광범위한 표절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저자의 개성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시되는 근대에 이르러서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요. 우리나라 근대시는 김소월과 같은 민요시 계열의 경우를 제외하곤 일본을 통해 수입되는 서구시를 번안하며 시작합니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최남선의 경우에는 일본 잡지에 실린 문명론, 문화론 등을 토씨하나 안 바꾸고 그대로 번역해 그의 <개벽>에 실었다고 하며, 카프의 경향소설들 역시 일본의 나프와 러시아에서 영향을 받았죠. 사실 그 영향이란 것이, 사실상 외국의 문학들을 '번안'했다고 해야할 정도라고 합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로 넘어오며 이러한 표절의 양상은 더욱 노골적이 되고 빈번해집니다. 상호텍스트성이란 말썽많은 개념을 한 번 들이대면 이 세상에 저 혼자 잘난 물건이란 아무데도 없습니다. 모든 작품은 많건 적건, 다른 작품들에 자신의 일부를 빚지우고 있어요. 영화, 특히 장르 영화를 보세요. 그것들은 모두 전통의 재해석이거나 패러디입니다. 가까운 예로 <슈렉>이 있네요. 슈렉의 매력의 상당부분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제멋대로 차용해서 놀려대는 것에 있지 않았었나요.
실제로 많은 작품들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아이디어의 창조적인 재활용을 통해 그 가치를 드러냅니다. <드래곤 라자>가 성공한 것은 이영도가 우리에게 익숙한 AD&D의 룰과 <반지의 제왕>의 세계를 차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을 재미있게 재해석 해냈기 때문입니다. 지금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홍정훈의 경우에는... 애초에 D&D 팬의 취향이 폴폴 풍기는 작품을 만들어냈었죠. 그의 세계는 모두 조금씩 조금씩 달랐지만, 그것은 마스터의 재량에 따라 조금씩 성격이 바뀌는 TRPG의 세계 같은 느낌입니다.
조금 더 노골적인 경우는 SF일 거에요. 듀나같은 작가는 노골적으로 장르규칙을 가지고 장난을 치며 글을 쓰는데, 덕분에 그곳에는 걸면 걸릴 저작권적 함정으로 가득합니다. 가까운 예로 <대리전>이 있을텐데 '연합'이야 그렇다 치고 '앤시블'은 정말 어찌하나요. 하지만 그 이름들을 바꾸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란 말이에요. 왜냐하면, 장르장치들을 발견하고 그것이 어떻게 조작되는지를 살피는 것은 장르소설을 즐기는 큰 포인트 중 하나이기 때문이에요.
물론, 그 재미야 어찌되었건 법이 안 된다고 하면 바꿔야 합니다. 눈 가리고 아웅 식이라고 해도 바꾸긴 바꿔야죠. 저작권료를 내든, 이름을 수정해서 표절시비를 빗겨가든. 하지만, <반지의 제왕>의 세계나 AD&D룰이 이렇게 까지 힘을 떨치는 것도 수많은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이 마구 도용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장르라는 일종의 유전자 풀 속에 던져진 저 세계들이 자유로이 이종교배하며 수많은 괴물을 낳았던거죠. 이제 저작권이라는 제도는 저 유전자풀에 강한 제한을 가하려고 합니다. 어찌보면 이것은 예술의 자연스러운 속성에 채워지는 자본의 족쇄같은 거에요.
저작권법은 점점 엄격해지고 있고 그 효과도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이오공감에 오른 글에 의하면 <드래곤 라자>는 몇몇 설정들을 수정할 것이라하고 홍정훈씨는 저작권이 애매한 몇몇 작품들을 그냥 묻어버릴 거라고 하네요. 이것은 생각보다 흥미로운 결과입니다. 패스티쉬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적자와도 같았어요. 많은 이론가들이 고도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예술의 자연스러운 속성으로 혼성모방을 들었죠. 그런데,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는 저작권을 강화하고, 저작권은 모방을 금지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다시 저자의 독창적인 세계와 개성이 강조되는 세상이 올까요? 아니면 예술작품의 출신성분이, 마치 통조림의 성분표 마냥 표기되는 날이 오게 되는 걸까요?
사실 표절이라는 주제는 제 졸업논문으로 쓰고 싶을 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 거리입니다. 표절이라는 단어는 저작권법이 활성화된 작금에나 그 효력을 떨치고 있는 것이지 실상 인용이라는 문제가 작가들의 도덕성과 능력에 직접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미학의 영역에서 독창성이라는 것이 주요한 미적특질로 취급되기 시작한 것은 아무리 기원을 멀리 잡아도 17세기를 넘어서지 못해요. 그 이전에, 미란, 오히려 훌륭한 옛것을 잘 모방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예술은 그리스를 잘 모방하는 것이었고, 오랫동안 동양의 역사편찬은 사마천의 사기를 모방하는 작업이었죠.
구체적인 작품으로 넘어가보자면...으음. 괴테의 <파우스트>는 단테의 <신곡>과 수 많은 그리스의 희비극들, 성경,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의 영향을 거리낌없이 노출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로 알려져 있는 금오신화는 바로 전 세대 중국에서 창작된 <전등신화>를 거의 주인공 이름만 바꾼 채 번안한, 그야말로 표절이죠. <요재지이>나 <수이전>의 관계도 그러하고... 사실 동아시아 비교문학론을 조금만 살펴보아도 시와 산문의 전영역에서 광범위한 표절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저자의 개성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시되는 근대에 이르러서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요. 우리나라 근대시는 김소월과 같은 민요시 계열의 경우를 제외하곤 일본을 통해 수입되는 서구시를 번안하며 시작합니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최남선의 경우에는 일본 잡지에 실린 문명론, 문화론 등을 토씨하나 안 바꾸고 그대로 번역해 그의 <개벽>에 실었다고 하며, 카프의 경향소설들 역시 일본의 나프와 러시아에서 영향을 받았죠. 사실 그 영향이란 것이, 사실상 외국의 문학들을 '번안'했다고 해야할 정도라고 합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로 넘어오며 이러한 표절의 양상은 더욱 노골적이 되고 빈번해집니다. 상호텍스트성이란 말썽많은 개념을 한 번 들이대면 이 세상에 저 혼자 잘난 물건이란 아무데도 없습니다. 모든 작품은 많건 적건, 다른 작품들에 자신의 일부를 빚지우고 있어요. 영화, 특히 장르 영화를 보세요. 그것들은 모두 전통의 재해석이거나 패러디입니다. 가까운 예로 <슈렉>이 있네요. 슈렉의 매력의 상당부분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제멋대로 차용해서 놀려대는 것에 있지 않았었나요.
실제로 많은 작품들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아이디어의 창조적인 재활용을 통해 그 가치를 드러냅니다. <드래곤 라자>가 성공한 것은 이영도가 우리에게 익숙한 AD&D의 룰과 <반지의 제왕>의 세계를 차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을 재미있게 재해석 해냈기 때문입니다. 지금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홍정훈의 경우에는... 애초에 D&D 팬의 취향이 폴폴 풍기는 작품을 만들어냈었죠. 그의 세계는 모두 조금씩 조금씩 달랐지만, 그것은 마스터의 재량에 따라 조금씩 성격이 바뀌는 TRPG의 세계 같은 느낌입니다.
조금 더 노골적인 경우는 SF일 거에요. 듀나같은 작가는 노골적으로 장르규칙을 가지고 장난을 치며 글을 쓰는데, 덕분에 그곳에는 걸면 걸릴 저작권적 함정으로 가득합니다. 가까운 예로 <대리전>이 있을텐데 '연합'이야 그렇다 치고 '앤시블'은 정말 어찌하나요. 하지만 그 이름들을 바꾸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란 말이에요. 왜냐하면, 장르장치들을 발견하고 그것이 어떻게 조작되는지를 살피는 것은 장르소설을 즐기는 큰 포인트 중 하나이기 때문이에요.
물론, 그 재미야 어찌되었건 법이 안 된다고 하면 바꿔야 합니다. 눈 가리고 아웅 식이라고 해도 바꾸긴 바꿔야죠. 저작권료를 내든, 이름을 수정해서 표절시비를 빗겨가든. 하지만, <반지의 제왕>의 세계나 AD&D룰이 이렇게 까지 힘을 떨치는 것도 수많은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이 마구 도용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장르라는 일종의 유전자 풀 속에 던져진 저 세계들이 자유로이 이종교배하며 수많은 괴물을 낳았던거죠. 이제 저작권이라는 제도는 저 유전자풀에 강한 제한을 가하려고 합니다. 어찌보면 이것은 예술의 자연스러운 속성에 채워지는 자본의 족쇄같은 거에요.
저작권법은 점점 엄격해지고 있고 그 효과도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이오공감에 오른 글에 의하면 <드래곤 라자>는 몇몇 설정들을 수정할 것이라하고 홍정훈씨는 저작권이 애매한 몇몇 작품들을 그냥 묻어버릴 거라고 하네요. 이것은 생각보다 흥미로운 결과입니다. 패스티쉬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적자와도 같았어요. 많은 이론가들이 고도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예술의 자연스러운 속성으로 혼성모방을 들었죠. 그런데,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는 저작권을 강화하고, 저작권은 모방을 금지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다시 저자의 독창적인 세계와 개성이 강조되는 세상이 올까요? 아니면 예술작품의 출신성분이, 마치 통조림의 성분표 마냥 표기되는 날이 오게 되는 걸까요?
# by | 2007/12/01 15:37 | For others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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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르로 인정받은 텍스트는 저작권법의 적용범위에서 면제받는 식으로.
다만 그 장르의 형성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어.
독자(또는 소비자)가 결정하게 될지, 아니면 제도가 규정해주는 형식이 될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