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계

 


<색, 계>는 제가 호주에서 본 마지막 영화입니다. 감상한 지 제법 시간이 흐른 영화인데 이제야 이렇게 리뷰를 올리는 것은 얼마전 <색, 계>에 대한 기사를 하나 읽어서입니다. <색, 계>의 주인공 역을 맡았던 탕웨이가 중국에서 활동금지 처분을 받았다는 거에요. 그 이유는 <색, 계>가 일본에 대항했던 세력들을 부당하게 묘사하고 있고 역사왜곡의 가능성이 있어서라고 합니다. 예, 앞으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 점에 관한 것들이에요.

<색, 계>는 정치적으로 공정한 영화는 아닙니다. 정치적인 영화라고 부르기도 힘들지요. 이안 감독의 필모그래피만 보아도 그 점은 명백해요. <센스 앤 센서블리티>나 <헐크>, <브로크백 마운틴> 등등의 영화들은 이안 감독을 둘러싸고 있는 역사적 맥락들과 그리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있지 않습니다. 무협영화의 새로운 장을 연 <와호장룡>같은 영화도 마찬가지에요. 대륙의 감독이긴 하지만 장예모의 <영웅>과 같은 작품을 보세요. 화려한 미쟝센과 뻔뻔할 만치 노골적인 선전영화의 공식을 결합시킨 <영웅>에 비교하면 이안이 서 있는 곳이 어디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색, 계>는 <와호장룡>보다 조금 더 위험합니다. <와호장룡>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시기는 청대로 이미 제법 시간이 흘렀을 뿐더러, 수 많은 무협영화들에 의해 다시 칠해진 일종의 상상적 공간입니다. 그곳에서는 중국 내셔널리즘에 의한 간섭이 비교적 간편하게 무마될 수 있어요. 하지만 <색, 계>를 살펴보자면 조금 복잡하지요. 20세기 초의 상해라는 공간은 아직도 치열한 이데올로기적 싸움이 벌어질 수 있는 곳입니다. 지금도 중국과 일본은 썩 사이좋은 나라라고는 볼 수 없고, 여기에 국민당 세력과 공산당의 미묘한 알력도 있을 수 있겠지요. 일본과 대만과의 과거사 정리가 깔끔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에서, <색, 계>와 같은 작품이 이안과 같은 감독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은 애매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색, 계>의 미묘한 탈정치성입니다. <색, 계>가 1940년대의 상해의 격변의 시대를 가로지르는 도구로 사용한 것은 섹스입니다. 이 점은 이 분야에서의 괴작이자 명작인 <감각의 제국>과도 비교할 수 있겠네요. 험난한 시대를 섹스로 가로지르며 묘사하는 영화는 많았습니다. 언젠가 논란이 되었던 장선우의 <거짓말>같은 작품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아요. 정치적 상황은 복잡하고 더럽고, 목숨은 언제나 위태롭습니다. 주인공인 이장관이 자신이 살아있다는 자각을 하는 것은 섹스를 하는 그 순간에 있습니다. 조금 더 복잡한 것은 탕웨이가 연기한 왕가지의 캐릭터에요. 이 사람은 작품 전체를 걸쳐 조금도 속을 짐작할 수 없는 일종의 유령같은 존재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레지스탕스의 이념에 그리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와 광위민이 함께한 청년 연극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은 젊은이의 치기와 영웅심이 테러리즘과 결합한 형태에 불가하지요. 그녀는 그 치기와 영웅심으로 치장한 집단의 정체를 어느정도 꿰뚫어 보면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배역을 연기하고 있는 프로입니다. 그녀는 능숙하고, 또한 재능이 넘칩니다. 연기를 하고 있을 때 그녀는 오히려 빛나고 진짜같아 보일 지경입니다.

이러한 묘사는 왕가지가 목숨을 건 '애국적 연기'를 시작한 순간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그녀는 매순간 최선을 다합니다. 그녀는 거의 이장관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녀의 진심을 구분할 수 없거니와 짐작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는 사이 드라마는 점점 복잡해집니다. 왕가지가 몸담고 있는 레지스탕스는 이장관이 일하고 있는 특무기관 만큼이나 몰인정하고 비인간적인 기구입니다. 왕가지는 자신이 장기말 하나에 불과함을 잘 알고 있구요. 이선생은 이선생 나름대로 그리 간단한 매국노가 아니어서 심판하기가 힘들어요. 그는 단지 현실감각이 뛰어나고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는 프로이거든요. 이 둘이 충돌하는 이야기는 더 이상 일본에 대한 당연한 심판과 극복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두 몰인정하고 비인간적인 두 세력이 가장 인간적이고 삶의 중심에 있는 섹스를 무기로 삼아 서로를 견제하고 파멸시키려 하는 이야기입니다. 왕가지는 연기를 하는 순간에야 가장 삶의 불꽃을 밝게 피워올리지만, 그 불꽃은 죽음의 가장 중심부에서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자신이 그 불꽃을 진짜처럼 피우지 못한다면 죽을 것이고, 자신의 진심을 말해도 죽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이차 세계대전 당시의 아시아를 바라보는 일반적 시각에서 벗어나 있음은 자명합니다. 이른바 정치적 공정성에서 반발짝 정도 물러난 듯 해요. 듀나의 경우에는 <색, 계>의 이야기가 1940년대를 배경으로한 헐리웃 영화에 대한 향수의 결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 설명합니다. 이안 감독의 스타일을 생각한다면 그럴듯 하지요. 하지만 <색, 계>는 조금 더 복잡한 텍스트입니다. 그것은 <색, 계>가 여자 스파이를 다룬 헐리우드 영화보다 딱히 복잡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이 조금 더 복잡하기 때문이에요. 우리의 과거사 문제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우리는 일본에 관하여 말할 때 굉장히 민감해집니다. <색, 계>보다 훨씬 조심스러운 작품이었던 <청연>이 당했던 수난을 생각해보세요. 이 지점에서 <색, 계>는 정치적으로도 굉장히 의미 있어집니다. 그것은 교조적이고 다른 해석을 용납치 않은 꽉막힌 체제에 대한 야유가 될 수 있어요. 특히 중국에 의해 강제적으로 주변화되고 있는 대만 출신의 감독이라면 더욱 그렇지요. 

아무튼, 이번 탕웨이의 일은 많이 아쉽습니다. 아마도 장쯔이처럼 해외에서 활동하는 중국배우가 될 가능성이 큰 것 같네요. 사실 중국의 장쯔이에 대한 혐오는 이상스러운 것이어서, 제가 만났던 중국 친구들은 대부분 이 여배우를 혐오하더라구요. 이러한 분위기가 중국의 예술과 문화를 어떤식으로 끌고 갈지 전 알 수 없습니다. 굉장히 배타적이고, 또한 노골적으로 정치적이기도 한. 전 <영웅>의 그 액션과 아름다운 색채를 좋아하지만 두번 다시 그런 영화를 보고 싶지는 않아요. 제가 <색, 계>에 느끼는 우호적인 감정은 바로 그래서일 꺼에요. 꼰대스러운 예술만큼 심심한 것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덧.

<색, 계>는 제가 호주에서 본 마지막 영화입니다. 아아, 영자막이 있다는 것이 너무도 행복했던 기억이 나네요. ;ㅁ;

by 이녘 | 2008/03/11 14:28 | For movie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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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여관주인 at 2008/03/17 01:48
흠, 보고싶다. 멀미실에 디비디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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