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 14일
극사적에로스
저는 과격한 영화를 좋아합니다. 눈이 질끈 감겨지도록 적나라하고 과격한 영상을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사지절단의 강도에 열광하는 호러 팬의 감수성일 수도 있겠어요. 하여튼 저는 <데드 얼라이브>의 하드고어나 <감각의 제국>과 같은 포르노그래피를 즐겁게 감상하는 사람이에요. 그런 저에게도 <극사적에로스>는 다소 힘이 들었습니다.
일단 영화 이야기를 해볼까요? <극사적에로스>는 모호한 작품입니다. 이것은 인간 하라 카즈오의 조금은 의뭉스러운 고백인 것처럼도 보이고, 살짝 시치미를 뗀 채 오키나와라고 하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지역을 보여주는것 처럼도 보입니다. 사실 둘 다 아닐 수도 있어요. 어느 쪽으로 생각하든 <극사적에로스>는 성공한 다큐멘터리는 아니거든요. 미유키를 바라보고 있는 하라 카즈오의 시선은 대단히 조심스럽고도 솔직하지 못하고 때때로 지나칠 정도로 자학적이고 자기연민적입니다. 이것은 위악적인 자기현시를 스타일로 했던 일본 사소설 이래의 전통일 수도 있고, 어느 소심하고 못난 예술가의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의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예전의 여자친구, 그리고 지금의 여자친구가 출산을 하고 있는데 하라 카즈오가 하는 일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정확히 렌즈 너머에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오히려 '하라 카즈오'의 부재를 강하게 암시합니다. 거기에는 인간이 없습니다. 그는 궁상스럽게 훌쩍이는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기도 하고, 자신에 대한 미유키의 악담으로 다큐멘터리의 상당 부분을 채우지만 그것은 솔직함이기보다는 하나의 위악적인 포즈처럼 느껴져요. 그렇다고 그 이면의 진심이 느껴지지도 않고...
그의 카메라가 잡아내고 있는 오키나와의 모습도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잡아내고 있는 것은 대개 오키나와의 여성들입니다. 모두 미군을 상대로한 유흥업소의 여성들이에요. 그녀들은 모두 섹스를 하고 아이를 갖고, 낳거나 지웁니다. 하라 카즈오의 옛 여자친구인 미유키도 어느 미군과 관계를 가지고 혼혈아를 출산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자신의 '여자'를 승전국-미국에게 빼앗긴 일본 남성의 소심한 정치적 고백인걸까요? 일본 영토인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과 그 주둔군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오키나와의 경제, 유흥가의 모습에 대한 묘사가 진짜 이 영화의 주제인걸까요? 뭐, 그럴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해석으로 이어지기에 <극사적에로스>의 힘은 조금 약합니다. 정치적인 다큐멘터리가 가질 수 있는 솔직함이라는 미덕이 없거든요. 하라 카즈오의 태도는 너무 조심스럽고, 또한 의뭉스럽습니다.
<극사적에로스>가 힘이 들었던 이유는, 후반부에 연이어서 나오는 두 차례의 출산 장면 때문입니다. 방바닥에 비닐과 신문지를 깔고 배를 손으로 꾹꾹 눌러대면서 홀로 아이를 낳는 미유키의 모습은 정말이지 보기 힘들어요. 힘을 주기 좋은 자세를 찾기 위해 누워도 보고, 앉아도보는 미유키. 카메라는 그저 냉정하게 그녀의 국부를 주시하고 있고 시간이 흐르자 거기에서 아이의 머리가 튀어나오고, 으으으, 조금 더 있자 몸도 마저 빠져나오고, 으으으, 태반을 꺼내야 한다며 마지막으로 미유키는 힘을 주고, 아아악. 그 장면이 주는 힘은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생명 탄생의 엄숙함 같은게 아니에요. 지나칠 정도로 적나라한 이 장면은 거의 폭력과 같습니다. 뒤통수를 있는 힘껏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어쩌면 그것은 부모님의 섹스를 우연하게 목격한 아이의 트라우마와 비슷할 수도 있겠어요. 정 반대의 상황이지만...
하여튼 저는 이 영화를 즐기지는 못했어요. <극사적 에로스>는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데 너무 인색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심지어 저 과격한 출산의 장면이 나올때도 마찬가지에요. 그 과격함에는 솔직함이 없습니다. 이 감독의 속내를 알려면 다른 작품들도 한 번 봐야할 것 같은데... 지금으로서는 <천황군대는 진군한다>를 놓친게 아쉽네요. 아니, 딱 한 번 밖에 상영을 안 할게 뭐에요. 제일 관심이 가던 작품이었는데.
# by | 2008/05/14 22:18 | For movie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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