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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BAD TAST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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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상상력이 화를 낸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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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1 Jun 2008 07:11:52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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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BAD TAST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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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상상력이 화를 낸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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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광우병 불안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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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광우병에 대한 불안은 정확히 히스테리적입니다. 미국의 소가 실제로 위험하냐는 사실판단과는 상관없이 광우병에 대한 불안은 증가됩니다. 듣고 있자면 변형 프리온은 거의 악마가 살포한&nbsp;&nbsp;최종병기 같지 않나요?&nbsp;<br>광우병이라는 카니발리즘의 사생아와 같은 질병은 모든 인간이 자연에 대해 지고 있는 부채의식을 건드립니다. 광우병이 가지고 있는 원래의 징벌적인 성격과(그것은 자연의 섭리를 어긴 결과이다)&nbsp;거대한 자본-깡패인 미국에 대한 불만, 이명박을 수뇌로한 실용정부에 대한 불신은 마치 삼위일체처럼 이 불안의 삼각형을 완성합니다. 여기에 의해 촉발된 공포는 마치 관동이나 아우슈비츠처럼 비이성적으로 확산됩니다.<br>이렇게 과잉한 불안과 분노의 단계에서 미국의 소가 위험하냐는 것은 실로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그것은 관동이나 아우슈비츠의 광기가 실재의 '조선인'과 '유태인'과는 무관하게 일어났다는 점과 일치합니다. 의처증을 가진 남편이 실제로 아내의 부정의 증거를 발견한다고 해도 그의 의심이 강박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의처증의 본질은&nbsp;실질적인 부정의 유무가 아니라 정확히 그가 가지고 있는 과잉한 불안에 있습니다. 의처증 환자에게 아무리 논리적으로 아내의 무죄를 설명해도 쓸모가 없는 것처럼, 이렇게 전염병처럼 창궐한 괴담에 과학적인 설명은 사실 쓸모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확인했다시피, 이러한 설명은 아주 쉽게 그 과녁을 비켜갑니다. "그래도 혹시 알아?", 혹은 "미국놈들을 어떻게 믿겠어." 등등.<br><br>저는 이러한 불안이 히스테리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과잉한 불안은 외상에 의해 촉발된 불안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즉 우리의 이익(생명)추구는&nbsp;실용정부에 포섭당했습니다. 우리는 어느정도 스스로의 욕망을 희생하는데, 바로 그 희생(비정규직에 대한 양보, 노동조건의 악화 등)이 고용이라고 하는 비실업의 상태를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이명박이 제시하는 환상은 매우 억압적인데, 그것은 네 이익을 (자본에게) 양보하라는 명령을 숨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겁을 주는 방식입니다. 기업이, 자본이 안 되면 너희도, 노동도 있을 수 없다. 이러한 희생의 강요는 FTA, 그리고 소고기 협상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이명박 정부가 가지고 있는 청사진. 우리의 농업시장을 개방(희생)함으로써 삼성, 현대 등이 가전제품과 자동차를 좀 더 잘 팔 수 있게 만들겠다는. 이것은 희생을 전제로 하는&nbsp;미래입니다. 이번 소고기협상의 경우&nbsp;실용정부는 희생의 카드를 국민의 (가능한) 위험으로 내민 것인데, 바로 여기에서 우리의 이익(생명) 추구는 포섭당함을 거부한 것입니다.&nbsp;&nbsp;이 외상적인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이명박 실용주의의 냉정한 실체를 경험합니다. 우리의 히스테리적인 반응은, 바로 거기에 대한 결과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정확히 프로이트 식으로 억압된 것의 귀환입니다.<br><br>사실 더 흥미로운 분석은 아마 광우병 자체가 아닐까요. 광우병은 그야말로 자연의 폭동입니다.&nbsp;그 자체의 법칙이 아니라 자본주의에&nbsp;의해 왜곡된 '자연'이 우리에게 복수를 한다는거죠. 여기에서 우리는 더 본질적인 억압된 것의 귀환을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말 변형 프리온이 그토록 위험하고, 우리의 종말은 단지 시간문제에 불과하고, 그것이 제 3세계의 극단적인 빈곤과 무관한 몇몇 부국들의 치사스러운 식습관 때문이라면, 아아. 이는 얼마나 또 통쾌하고도 무시무시합니까. 정말 이것을 소재로 호러영화가 하나 나와도 될 것 같아요.<br><a href="http://pds9.egloos.com/pds/200806/11/05/1.hwp">1.hwp</a></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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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For society</category>
		<pubDate>Wed, 14 May 2008 16:03:15 GMT</pubDate>
		<dc:creator>이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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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극사적에로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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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저는 과격한 영화를 좋아합니다.&nbsp; 눈이 질끈 감겨지도록 적나라하고 과격한 영상을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사지절단의 강도에 열광하는 호러 팬의 감수성일 수도 있겠어요. 하여튼 저는 &lt;데드 얼라이브&gt;의 하드고어나 &lt;감각의 제국&gt;과 같은 포르노그래피를 즐겁게 감상하는 사람이에요. 그런 저에게도 &lt;극사적에로스&gt;는 다소 힘이 들었습니다.&nbsp;<br><br>일단 영화 이야기를 해볼까요? &lt;극사적에로스&gt;는&nbsp;모호한 작품입니다. 이것은 인간 하라 카즈오의 조금은 의뭉스러운 고백인 것처럼도 보이고, 살짝 시치미를 뗀 채 오키나와라고 하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지역을 보여주는것&nbsp;처럼도 보입니다. 사실 둘 다 아닐 수도 있어요. 어느 쪽으로 생각하든 &lt;극사적에로스&gt;는 성공한 다큐멘터리는 아니거든요. 미유키를&nbsp;바라보고 있는 하라 카즈오의 시선은 대단히 조심스럽고도 솔직하지 못하고 때때로 지나칠 정도로 자학적이고 자기연민적입니다.&nbsp;이것은 위악적인 자기현시를 스타일로 했던 일본&nbsp;사소설 이래의 전통일 수도 있고,&nbsp;어느 소심하고 못난 예술가의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의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예전의 여자친구, 그리고 지금의 여자친구가 출산을 하고 있는데&nbsp;하라 카즈오가 하는 일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정확히 렌즈 너머에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오히려 '하라 카즈오'의 부재를 강하게 암시합니다. 거기에는 인간이 없습니다. 그는 궁상스럽게 훌쩍이는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기도 하고, 자신에 대한 미유키의 악담으로 다큐멘터리의 상당 부분을 채우지만 그것은 솔직함이기보다는 하나의 위악적인 포즈처럼 느껴져요. 그렇다고 그 이면의 진심이 느껴지지도 않고...<br>그의 카메라가 잡아내고 있는 오키나와의 모습도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잡아내고 있는 것은 대개 오키나와의 여성들입니다.&nbsp;모두 미군을 상대로한 유흥업소의 여성들이에요. 그녀들은 모두 섹스를 하고 아이를 갖고, 낳거나 지웁니다. 하라 카즈오의 옛 여자친구인 미유키도 어느 미군과 관계를 가지고 혼혈아를 출산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자신의 '여자'를 승전국-미국에게 빼앗긴 일본 남성의 소심한 정치적 고백인걸까요? 일본 영토인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과 그 주둔군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오키나와의 경제, 유흥가의 모습에 대한 묘사가 진짜 이 영화의 주제인걸까요? 뭐, 그럴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해석으로 이어지기에 &lt;극사적에로스&gt;의 &nbsp;힘은 조금 약합니다. 정치적인 다큐멘터리가 가질 수 있는 솔직함이라는 미덕이 없거든요. 하라 카즈오의 태도는 너무 조심스럽고, 또한 의뭉스럽습니다. <br>&lt;극사적에로스&gt;가 힘이 들었던 이유는, 후반부에 연이어서 나오는 두 차례의 출산 장면 때문입니다. 방바닥에 비닐과 신문지를 깔고 배를 손으로 꾹꾹 눌러대면서 홀로 아이를 낳는 미유키의 모습은&nbsp;정말이지 보기 힘들어요. 힘을 주기 좋은 자세를 찾기 위해 누워도 보고, 앉아도보는 미유키. 카메라는 그저 냉정하게 그녀의 국부를 주시하고 있고 시간이 흐르자 거기에서 아이의 머리가 튀어나오고, 으으으, 조금 더 있자 몸도 마저 빠져나오고, 으으으, 태반을 꺼내야 한다며 마지막으로 미유키는 힘을 주고, 아아악.&nbsp;그 장면이 주는 힘은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생명 탄생의 엄숙함 같은게 아니에요.&nbsp;지나칠 정도로 적나라한 이 장면은 거의 폭력과 같습니다. 뒤통수를 있는 힘껏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nbsp;어쩌면 그것은 부모님의 섹스를 우연하게 목격한 아이의 트라우마와 비슷할 수도 있겠어요. 정 반대의 상황이지만...<br>&nbsp;<br>하여튼 저는 이 영화를 즐기지는 못했어요.&nbsp;&lt;극사적 에로스&gt;는&nbsp;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데 너무 인색하기도&nbsp;합니다. 그것은 심지어 저 과격한 출산의 장면이 나올때도 마찬가지에요. 그 과격함에는 솔직함이 없습니다. &nbsp;이 감독의 속내를 알려면 다른 작품들도 한 번 봐야할 것 같은데... 지금으로서는 &lt;천황군대는 진군한다&gt;를 놓친게 아쉽네요. 아니, 딱 한 번 밖에 상영을 안 할게 뭐에요. 제일 관심이 가던 작품이었는데.</p>			 ]]> 
		</description>
		<category>For movie</category>
		<pubDate>Wed, 14 May 2008 13:18:03 GMT</pubDate>
		<dc:creator>이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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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대학로 도어즈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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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9.egloos.com/pds/200803/27/05/c0069705_47eb85c0c2f06.jpg" width="500" height="666.66666666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9.egloos.com/pds/200803/27/05/c0069705_47eb85c0c2f06.jpg');" /></div><br>성대 가는 쪽 골목에 위치한 도어즈. 저 문을 열면 계단이 나옵니다. 좁고 가파른 계단.<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8.egloos.com/pds/200803/27/05/c0069705_47eb85b58902b.jpg" width="500" height="37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8.egloos.com/pds/200803/27/05/c0069705_47eb85b58902b.jpg');" /></div><br>안은 이렇게 생겼어요. 종이조각에 신청곡을 써서 주인 아저씨에게&nbsp;주면 틀어준답니다. 어느날, LP노래가 듣고 싶을 때 찾아가보세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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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For me</category>
		<pubDate>Thu, 27 Mar 2008 11:38:43 GMT</pubDate>
		<dc:creator>이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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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나른한 일요일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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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아아, 나른해요. 오늘은 원래 명동에 갈 계획이었지만, 함께하기로 했던 동행이 가족들과 오리고기를 먹으러 가겠다며 저를 바람맞혔어요. 바람맞은 것 보다 오늘 저녁에 먹을 것이 계란 후라이 밖엔 없다는 사실이 더 서러워요. 나도 오리고기 먹고 싶은데...<br>할 일 없이 침대에 누워 보르헤스를 읽고 있는데, 이 아저씨 글이 또 사람을 나른하게 만든단 말씀. 끝 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다가도 어쩐지 장엄하고 쓸쓸한 결말들을 읽고 있노라면 세상이 다 덧없게 느껴져요. <br><br>기운을 차려보려 일어서보아도 무슨 뾰족한 수가 나는게 아니네요. 할 일 없이 즐겨찾기를 오가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물론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우선 학교 멀티미디어실에 &lt;인랜드 엠파이어&gt;가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재빨리 신청해주었습니다. 오래전에 &lt;트윈픽스&gt; 시즌 1도 신청한 것 같은데 없네요. 아마 심사에서 잘렸나봐요. 또 제 시간표로는 공강시간에&nbsp;&lt;데어 윌 비 블러드&gt;를 보러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후우. 학교 가까이 대한극장 같은 곳에서 걸어주면 좀 좋으련만. 압구정 까지 갔다가 되돌아와 수업에 들어가기에는 시간이 무척 애매하네요. <br><br>티켓링크를 뒤지다 발견한 건데, &lt;중경삼림&gt; 압구정에서 상영되고 있군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왕가위 영화는 &lt;동사서독&gt;이지만 &lt;중경삼림&gt;도 좋아해요. 왕비가 무척 예쁘게 나오거든요. 비슷한 이유로 &lt;2046&gt;도 좋아하죠. 왕가위 영화 중에서는 제일 재미없는 영화였지만...-_-<br><br>마찬가지로 시간이 안 맞아요. 이 영화도. 학교 멀티미디어실에 신청하고는 봐야겠어요, 아무도 없는 작은 영사실에서 혼자 영화를 보는 호젓함을 즐기고 싶습니다. 가끔 낮잠을 자러 오는 학생이나 어두운 곳에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커플 때문에 방해 받기도 하지만. 음흠.<br><br>아아, 시간은 줄기차게 흘러가는데 의욕은 생겨날 여지가 안 보이네요. 뭐 재미있는 일 없으려나요.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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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For me</category>
		<pubDate>Sun, 16 Mar 2008 08:59:42 GMT</pubDate>
		<dc:creator>이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말타의 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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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7.egloos.com/pds/200803/16/05/c0069705_47dc8edd31bed.jpg" width="314" height="45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7.egloos.com/pds/200803/16/05/c0069705_47dc8edd31bed.jpg');" /></div><br>사립탐정인 샘 스페이드는 동료인 마일스 아쳐와 함께 사립탐정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작과 함께 브리짓이라는 여자가 그의 사무실을 찾아오고, 그녀는 서스비 라는 사내와 함께 사라진 자신의 동생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합니다. 그 날 서스비의 미행에 나선 마일스는 총격을 당해 사망하고, 그가 미행하던 서스비도 사망합니다. 경찰들은 샘 스페이드가 마일스의 아내인 이바와 내연의 관계였다는 제보를 받고는 그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br><br>자, 이렇게 &lt;말타의 매&gt;는 시작합니다. &lt;말타의 매&gt;는 누아르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습니다. 쿨하고 시니컬한 주인공, 팜므 파탈, 무능한 경찰, 속임수, 돈. 이 모든 클리셰들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lt;말타의 매&gt;는 굉장히 생생하고 힘있는 영화가 됩니다. 저는 이 점을 샘 스페이드를 연기한 험프리 보가트에게 돌리고 싶어요. 그의 샘은 정말이지 기가 막힙니다. 그는 저 모든 약호들을 홀로 가로지릅니다. 그는 동료의 죽음에 슬퍼하지도 않으며 경찰을 무작정 혐오하지도 않고 돈을 밝히면서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홀연히 사랑에 빠졌다가도 냉담하게 발을 뺍니다. 그는 어떠한 순간에도 자신의 속내를 열어보이지 않아요. 브리짓이나 캐스퍼 거트먼의 입을 빌려 말하자면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그가 발 담구고 있는 속고 속이는 장르 세계에서 크나큰 장점입니다. 샘 스페이드는 모두가 모두를 속이는 이 세계에서 단연 빛나고 있습니다. 그는 굉장히 능숙한 전문가입니다. 쉴 새 없이 지껄이고 연기하고 사람들을 속여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이 자는 언뜻 이 뻔해보이는 이야기에 생생한 힘을 불어넣어요. 그는 쓸데없이 정의감에 넘치지도 않고 순진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완전히 속이 닳은 것도 아닌 인물입니다. 재미있어요.<br><br>조연들의 연기도 재미있습니다. 브리짓과 카이로, 거트맨 등의 악당들은 적당히 스테레오타입입니다만, 굉장히 능숙하고 천연덕스럽게 연기되고 있습니다. 특히 카이로의 장난스럽고 거트맨의 거창한 몸짓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계속 웃음을 실어줍니다. 카이로의 게이농담 같은 경우엔... 이 시기에도 이런 종류의 농담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나요? 너무 천연덕스럽게 나와서 오히려 어리둥절 했어요.<br><br>하여튼 1941년도에 만들어진 이 작품은 놀랄만큼 능숙하고 장르적으로 세련되어 있습니다. 이러니 거장이요, 명작인 것이겠지요. 이 영화는 존 휴스턴 특별전이 하고 있는 서울 아트시네마에서 보았습니다. 앞으로도 몇몇 영화를 더 보러가야겠어요. 비교적 초기작인 이 영화의 수준이 이 정도이니 작가로서 완성되어가는 시기의 영화를 한 번 보고 싶습니다.<b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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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For movie</category>
		<pubDate>Sun, 16 Mar 2008 03:08:22 GMT</pubDate>
		<dc:creator>이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그가 돌아온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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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영구의 귀환인가요. 심형래는 그 자신이 감독하고 주연하는 &lt;라스트 갓파더&gt;로 다시 돌아온다고 합니다. 한국수출보험공사의 보험대상 1호로 지정되어서요. 기사에 따르면 &lt;라스트 갓파더&gt;는 비록 수익분기점을 넘지 못하더라도 투자금의 70퍼센트를 보험으로 복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굉장하죠?<br><br>심형래는 나름 용단을 내린 것 같습니다. 그는 영화감독으로 전향한 이래 크고 화려한 영화에 집착해왔습니다. 영화에서 개그의 채도를 점점 낮추고 헐리웃처럼 보이는 모양새를 획득하는 것이 그 목표였죠. &lt;D-WAR&gt;는 그 정점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필모그래피의 정점에 있는 &lt;영구와 땡칠이&gt;나 &lt;우뢰매&gt;가 어디 모양새가 그럴싸해서 인기를 끌었던 것은 아닙니다. 영구라는 걸출한 캐릭터가 있었고 심형래의 단련된 슬랩스틱 연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죠. 그 눈에 띠게 엉성한 연출은 구수한 키치냄새를 팍팍 풍겼습니다. 무엇보다, 어린이들이 참 좋아했지요.<br><br>대충 얘기를 들어보니 &lt;라스트 갓파더&gt;는 '영구, 미국에 가다'쯤 되는 모양입니다. 심형래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작품은 바로 '미스터 빈', 나쁠 것 없습니다. 물론 '미스터 빈'은 영어문화권의 영국에서 크게 성공한 캐릭터였고 애초에 굉장히 친숙한 문화경험이며, 또한 그러한 모델이&nbsp;계속 나와 생산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심형래의 영어연기 또한 굉장한 리스크이지만... 뭐 이거야 아무도 확신을 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요. 걱정은 되지만 응원을 할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br><br>제가 가장 아리송한 부분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되살린 말론 브란도입니다. 아니. 미스터빈 식 영화에 컴퓨터 그래픽 말론 브란도가 나와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lt;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gt;라도 만들고 싶은건가요. 영구식 영화들, &lt;미스터 빈&gt; 시리즈가 재미있는 것은 그들의 영화가 기술적으로 세련되고 어마어마한 컴퓨터 그래픽을 과시해서가 아닙니다. 독특한 캐릭터에 기반하여 일상의 사건들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는 그 뻔뻔한 일탈에 있죠. 사실 저런 영화에는 정말 대단한 배우가 참가하는 것이 좋은 일만도 아닙니다. 아릿한 싸구려향, 키치적인 분위기가 제거되는 순간 영화는 힘을 잃고 말 거에요.<br><br>심형래가 굳이 '컴퓨터 그래픽 말론 브란도'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사실 영화 외적인 이야기입니다. 그의 '영구아트무비'는 헐리웃 수준의 특수효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만들어진 곳입니다. 그에게는 '영구아트무비'의 기술력을 계속해서 사용해야하는 사업가적 책임이 있지요. 그런 이유로, 심형래는 자신의 영화에 맞건 맞지 않건 CG작업을 통해 돈을 쏟아붇고 회수할 아이템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건 무척 기형적이에요. 그가 기획하는 영화는 로맨스건 코미디건, 다큐멘터리건 일단 컴퓨터 그래픽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구아트무비'라는 수백억원이 투자된 인력집단이 놀게 되거든요. <br><br>심형래도 바보가 아닌 이상 지난 &lt;D-WAR&gt;의 실패로 무엇인가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제 생각에 그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란 영구아트무비를 외주를 받는 회사로 바꾸어 그 대단한 컴퓨터 그래픽이 필요한 곳과 같이 일하는 것이고 그는 그가 만들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겠습니다만... 스스로&nbsp;왕따를 자처하고 언론플레이를 통해 충무로와의 사이를 일부러 더욱 벌려놓은 그는 어찌되었든 영구아트무비를 자급자족적인 영화기계로 만들어야 하는 거에요. &lt;라스트 갓파더&gt;는 그 딜레마가 모두 모여 전시되는 기획입니다. <br><br>뭐, 심형래도 바보가 아닌 이상(2) 이 영화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도배할 생각은 없을 것입니다. 애초에 그럴 수 있는 기획도 아니구요. 하지만 그가 바보가 아닌 이상 그 우스꽝스럽고&nbsp;불필요한&nbsp; '컴퓨터 그래픽 말론 브란도'를 넣지 않을 수도 없을 거에요. 이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입니다. 심형래의 입장에서는요.<br><br></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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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For movie</category>
		<pubDate>Sat, 15 Mar 2008 02:05:06 GMT</pubDate>
		<dc:creator>이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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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색, 계 ]]> </title>
		<link>http://damul83.egloos.com/4215166</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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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8.egloos.com/pds/200803/11/05/c0069705_47d6184e39bee.jpg" width="500" height="684.803001876"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8.egloos.com/pds/200803/11/05/c0069705_47d6184e39bee.jpg');" /></div><br><br>&lt;색, 계&gt;는 제가 호주에서 본 마지막 영화입니다. 감상한 지 제법 시간이 흐른 영화인데 이제야 이렇게 리뷰를 올리는 것은 얼마전 &lt;색, 계&gt;에 대한 기사를 하나 읽어서입니다. &lt;색, 계&gt;의 주인공 역을 맡았던 탕웨이가 중국에서 활동금지 처분을 받았다는 거에요. 그 이유는 &lt;색, 계&gt;가 일본에 대항했던 세력들을 부당하게 묘사하고 있고 역사왜곡의 가능성이 있어서라고 합니다. 예, 앞으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 점에 관한 것들이에요.<br><br>&lt;색, 계&gt;는 정치적으로 공정한 영화는 아닙니다. 정치적인 영화라고 부르기도 힘들지요. 이안 감독의 필모그래피만 보아도 그 점은 명백해요. &lt;센스 앤 센서블리티&gt;나 &lt;헐크&gt;, &lt;브로크백 마운틴&gt; 등등의 영화들은 이안 감독을 둘러싸고 있는&nbsp;역사적 맥락들과 그리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있지 않습니다.&nbsp;무협영화의 새로운 장을 연 &lt;와호장룡&gt;같은 영화도 마찬가지에요.&nbsp;대륙의 감독이긴 하지만 장예모의 &lt;영웅&gt;과 같은 작품을 보세요. 화려한 미쟝센과 뻔뻔할 만치 노골적인 선전영화의 공식을 결합시킨 &lt;영웅&gt;에 비교하면 이안이 서 있는 곳이 어디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br><br>하지만 &lt;색, 계&gt;는 &lt;와호장룡&gt;보다 조금 더 위험합니다. &lt;와호장룡&gt;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시기는 청대로 이미 제법 시간이 흘렀을 뿐더러, 수 많은 무협영화들에 의해 다시 칠해진 일종의 상상적 공간입니다. 그곳에서는 중국 내셔널리즘에 의한 간섭이 비교적 간편하게 무마될 수 있어요. 하지만 &lt;색, 계&gt;를 살펴보자면 조금 복잡하지요. 20세기 초의 상해라는 공간은 아직도 치열한 이데올로기적 싸움이 벌어질 수 있는 곳입니다. 지금도 중국과 일본은 썩 사이좋은 나라라고는 볼 수 없고, 여기에 국민당 세력과 공산당의 미묘한 알력도 있을 수 있겠지요. 일본과 대만과의 과거사 정리가 깔끔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에서, &lt;색, 계&gt;와 같은 작품이 이안과 같은 감독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은 애매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br><br>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lt;색, 계&gt;의 미묘한 탈정치성입니다.&nbsp;&lt;색, 계&gt;가&nbsp;1940년대의 상해의 격변의 시대를 가로지르는 도구로 사용한 것은 섹스입니다. 이 점은 이 분야에서의 괴작이자 명작인 &lt;감각의 제국&gt;과도 비교할 수 있겠네요. 험난한 시대를 섹스로 가로지르며 묘사하는 영화는 많았습니다. 언젠가 논란이 되었던 장선우의 &lt;거짓말&gt;같은 작품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아요. 정치적 상황은 복잡하고 더럽고, 목숨은 언제나 위태롭습니다. 주인공인 이장관이 자신이 살아있다는 자각을 하는 것은 섹스를 하는 그 순간에 있습니다. 조금 더 복잡한 것은 탕웨이가 연기한 왕가지의 캐릭터에요. 이 사람은 작품 전체를 걸쳐 조금도 속을 짐작할 수 없는 일종의 유령같은 존재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레지스탕스의 이념에 그리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와 광위민이 함께한 청년 연극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은 젊은이의 치기와 영웅심이 테러리즘과 결합한 형태에 불가하지요.&nbsp;그녀는 그 치기와 영웅심으로 치장한 집단의 정체를 어느정도 꿰뚫어 보면서도&nbsp;가장 적극적으로 배역을 연기하고 있는 프로입니다. 그녀는 능숙하고, 또한 재능이 넘칩니다. 연기를 하고 있을 때 그녀는 오히려 빛나고 진짜같아 보일 지경입니다. <br><br>이러한 묘사는 왕가지가 목숨을 건 '애국적 연기'를 시작한 순간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그녀는 매순간 최선을 다합니다. 그녀는 거의 이장관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녀의 진심을 구분할 수 없거니와 짐작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는 사이 드라마는 점점 복잡해집니다. 왕가지가 몸담고 있는 레지스탕스는 이장관이 일하고 있는 특무기관 만큼이나 몰인정하고 비인간적인 기구입니다. 왕가지는 자신이 장기말 하나에 불과함을 잘 알고 있구요. 이선생은 이선생 나름대로 그리 간단한 매국노가 아니어서 심판하기가 힘들어요. 그는 단지 현실감각이 뛰어나고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는 프로이거든요. 이 둘이 충돌하는 이야기는 더 이상 일본에 대한 당연한 심판과 극복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두 몰인정하고 비인간적인 두 세력이 가장 인간적이고 삶의 중심에 있는 섹스를 무기로 삼아 서로를 견제하고&nbsp;파멸시키려 하는 이야기입니다. 왕가지는 연기를 하는 순간에야 가장 삶의 불꽃을 밝게 피워올리지만, 그 불꽃은 죽음의 가장 중심부에서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자신이 그 불꽃을 진짜처럼 피우지 못한다면 죽을 것이고, 자신의 진심을 말해도 죽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br><br>이러한 이야기가 이차 세계대전 당시의 아시아를 바라보는 일반적 시각에서 벗어나 있음은 자명합니다. 이른바 정치적 공정성에서 반발짝 정도 물러난 듯 해요. 듀나의 경우에는 &lt;색, 계&gt;의 이야기가 1940년대를 배경으로한 헐리웃 영화에 대한 향수의 결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 설명합니다. 이안 감독의 스타일을 생각한다면 그럴듯 하지요. 하지만 &lt;색, 계&gt;는 조금 더 복잡한 텍스트입니다. 그것은 &lt;색, 계&gt;가 여자 스파이를 다룬 헐리우드 영화보다 딱히 복잡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이&nbsp;조금 더 복잡하기 때문이에요. 우리의 과거사 문제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입니다.&nbsp;우리는 일본에 관하여 말할 때 굉장히 민감해집니다. &lt;색, 계&gt;보다 훨씬 조심스러운 작품이었던 &lt;청연&gt;이 당했던 수난을 생각해보세요. 이 지점에서 &lt;색, 계&gt;는 정치적으로도 굉장히 의미 있어집니다. 그것은 교조적이고 다른 해석을 용납치 않은 꽉막힌 체제에 대한 야유가 될 수 있어요. 특히 중국에 의해 강제적으로 주변화되고 있는 대만 출신의 감독이라면&nbsp;더욱 그렇지요.&nbsp;<br><br>아무튼, 이번 탕웨이의 일은 많이 아쉽습니다. 아마도 장쯔이처럼 해외에서 활동하는 중국배우가 될 가능성이 큰 것 같네요. 사실 중국의 장쯔이에 대한 혐오는 이상스러운 것이어서, 제가 만났던 중국 친구들은 대부분 이 여배우를 혐오하더라구요. 이러한 분위기가 중국의 예술과 문화를 어떤식으로 끌고 갈지 전 알 수 없습니다. 굉장히 배타적이고, 또한 노골적으로 정치적이기도 한. 전 &lt;영웅&gt;의 그 액션과 아름다운 색채를 좋아하지만 두번 다시 그런 영화를 보고 싶지는 않아요. 제가 &lt;색, 계&gt;에 느끼는 우호적인 감정은 바로 그래서일 꺼에요. 꼰대스러운 예술만큼 심심한 것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br><br>덧.<br><br>&lt;색, 계&gt;는 제가 호주에서 본 마지막 영화입니다. 아아, 영자막이 있다는 것이 너무도 행복했던 기억이 나네요. ;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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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For movie</category>
		<pubDate>Tue, 11 Mar 2008 05:28:33 GMT</pubDate>
		<dc:creator>이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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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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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7.egloos.com/pds/200803/03/05/c0069705_47cba505cd63c.jpg" width="500" height="720.560747664"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7.egloos.com/pds/200803/03/05/c0069705_47cba505cd63c.jpg');" /></div><br>영화가 끝났을 때, 사람들은 많이 당황해 하는 눈치였습니다. 사실 그 엔딩이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사각에서 날아온 총알과도 같았죠. 코엔 영화에 익숙한 제 동행은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이었지만 저에게 코엔 형제는 낯선 이름이기 때문에...<br><br>영화 이야기를 할까요? 베트남 참전 군인이자 전직 용접공인 르웰린 모스는 사냥을 하던 와중에 일련의 시체들을 발견합니다. 마약 거래중에 서로를 죽이고 또한 죽어버린 거죠. 르웰린은 그들의 돈가방을 챙기고, 그 돈가방을 회수하기 위해 기묘한 헤어스타일의 사이코패스 킬러인 안톤 시거가 나섭니다. 여기에는 안톤의 살인과 모스의 행방을 쫓고 있는 보안관 에드도 있어요.<br><br>영화는 무척이나 괴이하면서도 집중을 요구합니다. 배경음악이 조금도 없지만 그 침묵은 긴장으로 꽉 차 있어요. 안톤 시거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죽음의 문답을 하는 장면은 정말이지&nbsp;활시위처럼 긴장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지요.&nbsp;사냥꾼의 법칙을 잘 알고 있는 르웰린의 도주는 무척이나&nbsp;능숙하지만, 그만큼이나 능숙하고 또한 강력한 추적자와의 게임은 쉽지 않습니다. <br><br>이 영화의 인물, 사건, 이야기는 어딘지 모르게 기이하지만 정말이지 꽉 통제되어 있습니다. 가장 예측할 수 없는 사이코패스인 안톤은 불가해하지만 확실한 원칙 아래 움직이는 사내에요. 그는 단호하고 예외를 용납하지 않으며 그로인해 생기는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는 사내입니다. 그것은 르웰린도 마찬가지이지요. 코엔형제는 르웰린의 아내의 입을 빌어 그들의 유사함을 지적합니다. "내 남편도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에요."<br><br>에드의 경우에는 노회한 전문가의 모습입니다. 대를 이어오는 보안관인 에드는, 마찬가지로 자신의 원칙과 직업의식을 가진 사내입니다. 하지만 그는 세상이 자신의 원칙으로 재단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어요. 그는 혼란하고, 또한 피로합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도 결국 르웰린을 죽음으로 부터 도피시키지 못하자, 그는 불현듯 은퇴를 결심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만큼이나 불현듯 끝나버립니다.<br><br>영화의 메시지는 그 꽉 짜인 형식이나 인물과는 달리 묘하게 단조롭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이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것. 세상은, 이제 노인이 감당하기엔 너무 빨리 혹독하게 변해간다는 것. &lt;다이하드 4.0&gt;에서 존 맥클래인은 자신의 구식 액션으로 시대의 흐름을 정면으로 횡단했지요. 하지만 에드는 바로 그 자리에서 멈춰서고 물러섭니다. <br><br>이 영화의 결말이 그렇게나 갑작스러웠던 것은 여러모로 현명한 결정입니다. 적당히 장르의 공식을 비트는 결말이기도 하고...&nbsp;아마 원작 소설 속의 결말은 그렇게 까지 느닷없지는 않았을 거에요. 하지만 스크린 위에서 조금은 과격한 편집으로 결말이 주어지자 그 맛이 굉장히 좋습니다. 사실 이야기를 늘이거나 조금이라도 더 감상적이 되었다면 굉장히 지루한 변명처럼 보일 수도 있을 거에요.<b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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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For movie</category>
		<pubDate>Mon, 03 Mar 2008 07:13:47 GMT</pubDate>
		<dc:creator>이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스위니 토드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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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9.egloos.com/pds/200802/24/05/c0069705_47c10c3d07d8b.jpg" width="500" height="721.92513369"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9.egloos.com/pds/200802/24/05/c0069705_47c10c3d07d8b.jpg');" /></div><br>&lt;스위니 토드&gt;는 몽테크리스토 백작 식의 복수담에 으스스한 도시전설을 뒤섞어 놓은 듯한 영화입니다. 15년 전, 자신의 아내를 탐하는 터핀 판사에게 모함을 당하여 억울하게 감금당한 '스위니 토드'는 마침내 런던으로 돌아와 복수를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토드는&nbsp;초심자의 행운과 함께 거의 터핀을 잡았지만 순간의 불운이 그 기회를 앗아가지요. 그 상심에, 토드는 거리의 모든 사람들을 죽여 없앨 생각을 하게 됩니다. 썩고 더러운 런던에서, 사람들은 모두 죽어 마땅하다는 거에요. 그는 연고가 없는 손님의 목을 베어 죽이고, 아랫층의 러벳 부인은 그 고기로 미트 파이를 구웁니다.&nbsp;사람들은 죽어가고 그들의 가게는 번창하고 러벳 부인은 토드와의 달콤한 미래를 꿈꿉니다. 행복하지 않은 자는 오직 스위니 토드 뿐입니다. 그는 복수밖에 남지 않은 유령이기 때문이지요.&nbsp;<br><br>몽테크리스토 백작이 귀족적이고, 거창하며, 과시적인 복수자였다면 스위니 토드는 소시민적이고, 기괴하며, 우울합니다.&nbsp;그는 자신의 복수심을 잘 통제하지를 못해요.&nbsp;첫사랑에 실패한 바람둥이가 여자를 갈아치우듯, 스위니 토드는 터핀을 잊지 못해 죽이고 죽이고 계속 죽입니다.&nbsp;그리고 복수에 대한 가장 진부한 시나리오대로, 그는 복수와 함께 그 자신을 파멸시킵니다. &lt;스위니 토드&gt;는 제가 본 팀 버튼 영화중에 가장 우울한 이야기예요. &lt;배트맨&gt;은 언제나 속편에 대한 희망이나마 남겨두었었으며, &lt;비틀 쥬스&gt;나 &lt;유령 신부&gt;는 기괴함과 유쾌함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지요. 조니 뎁이 출연했던 &lt;가위손&gt;은 음울할 지언정 동화와 같은 이야기였구요. &lt;스위니 토드&gt;는 우울한 신경증 환자의 거친 악몽과도 같은 느낌입니다. 그는 충족될 수 없으며 스스로를 안온함에 두려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복수를 마치는 순간, 자신 곁의 거의 모든 것을 파괴하거나 파괴당합니다.<br><br>팀 버튼 특유의 음울하고도 기괴한 테크닉은 영화의 전체를 지배합니다. 원작 &lt;스위니 토드&gt;를 보지 못해 어느 정도 까지가 팀 버튼의 것인지는&nbsp;모르겠지만요. 이렇게 까지 팀버튼 영화임을 주장하는 듯한 팀버튼 영화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요. 어두운 도시와, 기괴한 사람들. 복수와 오해...<br>&nbsp;<br>음악들도 좋습니다. 스위니 토드가 런던에 도착하여 부르는 노래와, 러벳 부인이 맛없는 파이를 푸념하며 부르는 노래, 앤서니가 조안나를 생각하며 부르는 노래 등은 분위기 있고 멋집니다. 노래를 부르며 툭툭 터져나오는 배우들의 감정연기도 볼만 하구요. 무척 만족스러운 영화였습니다.<br><br>덧.<br><br>시네콰논에서 본 첫번째 영화였는데... 자막이 위아래로 번지는 바람에 계속 신경쓰여서 영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늘 이런가요? 아니면 제가 오늘 운이 나빴던걸까요. -_-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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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For movie</category>
		<pubDate>Sun, 24 Feb 2008 06:19:26 GMT</pubDate>
		<dc:creator>이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 </title>
		<link>http://damul83.egloos.com/4169733</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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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우리나라에는 영화의 이름을 따서 &lt;블레이드 러너&gt;라는 이름으로 책이 나와있지요? 사실 소설 속에는 "블레이드 러너"라는 단어가 언급되지도 않는답니다. <br><br>줄거리를 이야기해야 할까요? 신형 안드로이드 "넥서스-6" 여섯이 화성으로부터 탈출합니다. 그들을 잡기 위해 바운티 헌터 릭 데커드가 고용되구요. 그는 하루 동안 넥서스-6 여섯을 모두 은퇴시키며, 그의 삶과 그의 인간성과 그의 정체성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게 됩니다.&nbsp;<br><br>소설 속의 릭 데커드는&nbsp;자신의 직업에 충실한 중년 백인 남성입니다. 그는 전문가이고,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숱한 안드로이드를 은퇴시키면서도 스스로의 인간성에 의심을 품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에게 안드로이드를 은퇴시킨다는 것은 망가진 기계를 해체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것이어서&nbsp;인간적 윤리의식의 한계에서 벗어나는 일 없이 거리낌 없이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릭 데커드는, 어느 여자 안드로이드를 은퇴시키는 과정에서 자신이 일종의 감정이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nbsp;한 번의 예외는&nbsp;데커드를 거대한 물음표 속으로 잡아 당깁니다. 그는 살인자가 될 수 없는 보통의 인간일 뿐인데, 일단 안드로이드를 감정이입이 가능한 인간적 존재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그의 단단한 세계는 순식간에 허물어지게 되는 거에요. 릭 데커드는 그 혼란 와중에 안드로이드로 오해받기도 하고,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nbsp;결론에 도달합니다. 그에게 일어난 이 변화는, 어쩌면&nbsp;자신으로 하여금 다시는 안드로이드를 은퇴시킬 수 없도록 만들거라구요. <br><br>물론 데커드는 시련을 이겨냅니다. 그는 모든 탈출한 넥서스-6를 은퇴시키고,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바운티 헌터가 됩니다. 그는&nbsp;자신과의&nbsp;모든 승부에서 지고 말지만, 뜻밖의 구원을 받고&nbsp;존엄을 회복해요. 그의 '진짜' 애완동물을 향한 열망은 자신의 인간성을 확인하고 마주하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는 레이첼과 섹스를 하고 은퇴시킴으로써,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안드로이드에 대한 일말의 공감을 제거하려 하지요. 하지만 데커드는 레이첼을 은퇴시키지도 못하고 마지막에 이르기 까지 진짜 동물을 손에 넣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는 구원받아요. 인공신으로부터 인공 두꺼비를 받고는 그 분간할 수 없는 모조품으로부터 위안을 얻으며, 데커드는 별안간 진짜 구원을 획득합니다. 그것은 필립 K.딕이 마련한 정말로 불가해한 클라이막스입니다. 그는&nbsp;안드로이드를 은퇴시키는 것이 사실은 살인이고 잘못된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지만, 어쨋거나 그 일을 계속해나가기로 합니다. 계시를 통해, 데커드는 어쨋거나 자신의 직업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새로운 직업윤리를 부여받습니다. &lt;안드로이드는...&gt;의 이야기는 결국 모든 갈등을 해결하고 자신의 일터로 돌아가는 중년 남성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어요. 아내는 반대하고, 자신도 윤리적인 질문에 맞닥뜨리게 되지만, 어쨋거나 그 모든 요소들과 화해하고 일에 있어서도 성공하지 않습니까? 이런 이야기를 안드로이드나 가짜 기억과 같은 몇몇 SF의 소재들과 필립 K.딕 특유의 음울하고도 과시적인 문체가 결합되면 짜잔, 하고 &lt;안드로이드는...&gt;이 나오는 거에요.<br><br>&lt;안드로이드는...&gt;는 제가 처음으로 읽는 필립 K.딕의 장편이기도 합니다. 아마 한동안은 필립 K. 딕의 퍼스널 베스트로 남아있을 거에요. 일단 명성이 자자한 &lt;높은 성의 사나이&gt;를 읽어 보기 전까지는 이 목록을 수정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br><br></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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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For fiction</category>
		<pubDate>Wed, 20 Feb 2008 13:33:58 GMT</pubDate>
		<dc:creator>이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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